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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춤추는바람 Sep 14. 2023

'글'이 만든 인연

'오지윤 작가'와의 만남



상대를 알아갈수록 생각했던 것과 달라 신선할 때도 있지만 알면 알수록 상상했던 그대로라 반가울 때도 있다. 내가 바라보는 모습이 상대의 전부는 아닐 테지만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거듭된 만남에도 일관성이 느껴질 때 신뢰와 애정이 깊어진다.



얼마 전 운 좋게 오지윤 작가(제9회 브런치 대상 수상작가, <작고 기특한 불행>(알에이치코리아)의 저자)를 직접 만났다. 그녀의 책을 읽고 팬이 되어 SNS 팔로워가 되었는데, 작가도 내가 쓴 <작고 기특한 불행> 북리뷰(https://omn.kr/20lcf)를 보고 나를 팔로우했다. 그렇게 인친이 된 지 1년. 작가의 소소한 일상을 사진과 이야기로 접하며 친근함을 느꼈는데 실제 만남에서도 평소 지니고 있던 그녀에 대한 이미지가 크게 흐트러지지 않았다. 생각했던 모습 그대로라 오지윤 작가의 진솔함을 알 수 있었고 덕분에 작가가 더 좋아졌다.



내가 활동하고 있는 글쓰기 모임은 도서관 동아리로 등록되어 있어 도서관으로부터 지원금을 받는다. 지원금은 도서 구입이나 강사 초빙의 용도로 사용 가능한데 독서보다 글쓰기에 집중한 모임의 성격상 작가를 초빙하여 강의를 듣는 방향으로 멤버들과 논의를 마쳤다. 어떤 작가를 초대할지 물색하던 중 ‘오지윤’ 작가로 의견이 모아졌다. 내게는 그녀가 이 모임을 계속하게 해 준 오작교 같은 존재인데. 글친구들과 오지윤 작가를 함께 만난다니, 특별한 선물 같았다.



“사람들에게 나의 글이란, 그들이 접하는 수많은 텍스트 중 하나일 뿐이다. 물론 누군가의 시선은 내 문장에 더 오래 머물러 준다. 답장을 보내주기도 한다. 그럼 그 사람 앞에서 나는 이미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다. 그는 오히려 내게 글을 계속 써도 된다는 용기를 주는 사람이다.”

<작고 기특한 불행> 오지윤



작년 여름 글쓰기가 슬럼프에 빠졌을 때 우연히 공지를 보고 도서관 글쓰기 수업에 찾아갔다. 거기서 나의 보잘것없는 글에 귀를 기울여 주고 공감해 주는 사람들과 인연을 맺었다. 그들은 "내게 글을 계속 써도 된다고 용기를 주는" 사람들이었기에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었다. 오지윤 작가의 <작고 기특한 불행>을 읽었기에 이 사람들의 의미를 더 또렷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 그런 사람들을 잃고 싶지 않았다. 도서관 수업이 끝난 후 뒤풀이 자리에서 모임을 이어가자는 의견이 나왔을 때 적극적으로 동참할 수 있었던 건 그 때문이다.



오지윤 작가의 선명한 문장 덕분에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가볍게 여기지 않을 수 있었다. 인용한 문장을 글친구들과 나누었고 <작고 기특한 불행>이라는 책도 열성적으로 추천했다. 오지윤 작가의 글은 재미있으면서도 일상적으로 알고 있던 단어의 의미를 작가만의 방식으로 재정의하고 다른 시각을 제시해 줘서 신선했다. 개인이 경험한 사건에 고유한 사유를 더해 풀어낸다는 점에서 ‘에세이의 정의’에 딱 들어맞는 글이었고.



인생에는 수없이 우연한 만남이 오가지만 그걸 인연으로 만드는 일은 흔치 않다. 평소와 조금 다른 관심과 행동이 더해져야 우연이 인연으로 바뀌는 법. 글친구들과의 모임을 위해 한 번 더 용기를 내었고, 오지윤 작가의 책이 좋아 시간과 공을 들여 책에 대한 리뷰를 작성해 인터넷 매체에 기고했다. 아주 조금 달랐던 그때의 나의 행동과 태도는 상당한 결과를 가져왔다. 작년 여름 도서관 수업에서 글친구들을 만난 건 글쓰기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고 오지윤 작가와는 각별한 사이가 되었으니까.



작가를 초빙하는 문제도 마찬가지였다. 혼자였다면 망설이다 덮어버렸을 텐데 친구들과 의견이 맞아떨어진 게 든든한 백 같았으니까. 작가가 불편해하거나 거절할까 걱정되어 연락하는 것조차 어려웠는데 마침 모임에서 친구들의 응원과 격려에 힘입어 SNS로 쪽지를 보냈다. 머리를 모아 섭외 요청 글을 작성하고 전송 버튼을 눌렀을 때, 저절로 터져 나오던 친구들의 함성 소리, "끼악~!" 멤버 중 누구도 한 번도 현역 작가에게 초청 연락을 해 본 경험은 없었으니까 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작가에게 수락의 답장이 왔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OK'라는 식의 엄청난 반응. 더군다나 작가는 나를 ‘최애 독자님’이라고 칭해 주었다. 내가 보냈던 응원의 마음에 작가가 이토록 호의적으로 응답해 줄 줄이야. 작가의 긍정적인 반응에 모임의 분위기도 들썩거렸다. 강의를 위한 실질적인 준비를 하면서 예상치 못한 난관을 마주하기도 했지만 작가의 전적인 호의로 무사히 넘겼다.



드디어 애정하는 작가와 대면하는 날. 체크무늬 스커트에 장화를 신고 (비가 오는 날이었다) 백팩을 멘 작가님의 첫인상은 발랄한 소녀 같았다. 내성적인 작가가 우리의 환호에 부끄러워 어쩔 줄 몰라했는데 그 모습마저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웠고. SNS로 계속 소식을 접해 와서 그런 걸까. 알고 지내던 친구를 만난 듯 익숙했는데 글과 사진을 통해 내게 심어진 이미지와 실제 모습이 일치했기 때문이다. 참 진솔한 사람이구나 생각했다.





오지윤 작가






강의를 진행하는 내내 작가는 자신을 꾸미지 않고 솔직하게 임했다. 중간중간 말을 멈추고 잠시 고민하는 한이 있더라도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 단어를 골랐다. 자신을 드러내면서도 적확한 단어를 사용해 품위를 훼손하지 않는 모습. 소녀처럼 발랄한 외양과 달리 글과 글쓰기에 있어서는 프로페셔널한 면모가 드러나 더 인상적이었다.  


 

작가 스스로 그런 말을 해주었다. 본인은 생각이 많은 편인데 흐릿한 생각을 언어로 정확하게 풀어내고 싶은 욕구가 있다고. 그러기 위해 굉장히 고민을 많이 한다고 했다. 생각을 계속 굴리고 불려서 머릿속이 그 생각으로 가득 차올랐을 때에야 글로 풀어낸다고. 노력한 만큼 좋은 글, 개성 있는 글이 탄생한다는 뻔한 말이 품고 있는 진실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았다. 얼마나 많이 고민하고 언어 선택에 공을 들이는지, 결국 시간과 정성이 글쓰기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걸. 



이미지로만 알던 사람을 만났을 때, 생각보다 더 좋은 경우도 있지만 실망하는 경우도 많다. 오지윤 작가가 상상했던 그 모습 그대로라 더 좋았다. 그러한 면모가 어떻게 만들어진지 이번 기회에 잘 알게 되어 그런지도 모르겠다. 긴 시간 자신과 자신의 생각을 관찰하고, 끈질기게 고민했던 사람, 여전히 그런 태도로 살고 있는 사람이라는 걸.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자연스러운 자신과 어긋나지 않도록 자아와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남다른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 그 흔적을 발견했기 때문에 오지윤 작가를 더 애정하게 되었다. 나도 그런 사람일 수 있을까. 글로 나를 알아왔던 상대에게 생각했던 모습 그대로라고 느껴지는 사람일 수 있을까.



높지 않은 강의료에도 흔쾌히 응해준 작가의 선의와 열렬히 애정을 표현해 준 멤버들 덕분에 그날의 모임은 빛났다. 호의가 호의로 되돌아오는 기쁨을 발견하고, 호의와 호의가 쌓여 드넓어지는 세계를 경험하면서. 서로에 대한 선의와 응원의 마음으로 도서관 4층 작은 스튜디오가 기쁘게 출렁였다.



멤버들과의 만남도 오지윤 작가와의 인연도 모두 우연이었다. 우연에 작은 의지가 더해져 필연이 되고 운명으로 나아간다. 글이 우리를 연결해 주었다. '글'이라는 보이지 않는 선으로 연결되어 우리는 서로에게 이유 없는 다정을 한없이 내어준다. 조건 없는 선의를 보낸다. 나라는 점에 글친구들을 연결해 원이 되었다. 여기에 ‘오지윤 작가’라는 점 하나를 더해 본다. 또 어떤 점들을 이어가게 될까. 우연한 만남과 연결, 어울림 안에서 화음이 만들어지고 있을지 모른다. 그렇게 만나고 뒤섞이는 방식으로 창조되는 멋진 순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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