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의 화과자 만들기, 좋아서 하는 일의 기쁨
한 분야에서 전문가라 불리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읽은 적이 있다. 그 자리에 오기까지 어떤 노력을 했는지, 무엇을 추구했는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의미보다 재미를 좇으라는 답이 공통적으로 언급되었다. 의미는 나중에 생기기 마련이라며 의미를 찾으려 애쓰기보다 우선 재미있는 걸 계속하라고 권했다.
예전에는 어떤 일을 시도하기 앞서 의미나 가치를 따졌다. 실패가 두렵고 헛수고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시간과 노력을 들였는데 의미가 없다면 좌절할 테니까. 결과를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도 영향을 미쳤다. 그러다 보니 시작이 어려웠다. 하고 싶지만 시도조차 못한 일이 몇 가지 있다.
어떤 시점을 지나자 해보지 않은 일들이 후회되었다. 그때 해 볼 걸. 그걸 계속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의미 따위 없어도 무언가를 하고 싶었던 마음이 내 안에 가득 차 올랐다는 사실이 중요하게 다가왔다. 나이 들수록 열정과 에너지가 가뭇없이 사라진다는 걸 알게 되어서다.
그냥 해보고 싶어, 그저 좋아, 같은 마음이 서서히 작아진다. 그러니 어떤 대상을 이유 없이 좋아하고, 한번 해보고 싶어 두 눈을 반짝이는 건 그 자체로 소중하다. 호기심과 흥미는 삶을 키우는 씨앗 같은 것. 거기서부터 싹이 트고 키가 자라고 살이 붙는다.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한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때 그걸 계속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초등학교 3학년인 딸아이는 손으로 만드는 걸 좋아한다. 슬라임, 비즈 공예, 점토나 찰흙 만들기, 요리 등 손으로 조물조물 만드는 일이라면 가리지 않고 흥미를 보인다. 그런 아이가 어느 날 화과자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베이킹을 즐겨하는 나지만 화과자는 시도해 본 적이 없어 엄마는 못한다고 털어놓으니 아이가 자신 있게 말했다.
"괜찮아, 어떻게 만드는지 다 알아. 재료만 사주면 안 돼?"
동영상으로 모든 걸 검색하는 요즘 아이들답게 영상으로 이미 만드는 법을 터득한 모양이다. 필요한 준비물까지 훤히 꿰고 있는 걸 보니 아이에게 맡겨도 될 것 같았다.
재료를 주문하고 함께 만들고 싶은 친구들을 초대했다. 약속대로 화과자를 위한 기본 반죽은 딸아이가 스스로 준비했다. 찹쌀가루와 앙금을 섞어 전자레인지에 데우고 식용 색소를 넣어 알록달록 색을 내었다. 초대한 친구 두 명 것까지 세 사람이 만들 수 있게 반죽을 나누어 놓았다.
친구들이 도착한 뒤 아이들끼리 알아서 화과자를 만들고 뒷정리까지 말끔하게 마쳤다. 좋아서 하는 일이라서, 무엇보다 재미있어서 시키지 않아도 적극적이었고 내내 즐거운 분위기였다. 재미를 좇아 하는 일은 크게 애쓰지 않아도 물 흐르듯 진행되기 마련이다.
내게도 재미만 생각하며 배우는 게 하나 생겼다. 그건 바로 발레.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배워보고 싶었는데 의미와 가치를 따지느라 시도조차 못하고 포기했다. 긴 시간 망설이고 아쉬워하다 작년에야 ‘뭐 어때, 하고 싶으면 해 보는 거지!’ 하는 용기가 생겼다. 마흔 중반이 넘어 유연성 제로에 근력마저 소멸해 가는 몸으로 발레 스튜디오의 문을 두드렸다.
처음엔 클래스에서 제일 못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에 주눅 들었다. 혼자서만 다른 동작을 하고 있을 때면 얼굴이 달아올랐고 순서를 헷갈리지 않고 따라갈 날이 요원해 한숨이 나왔다. 그런데도 음악을 들으며 몸을 움직이는 게 좋아 수업에 계속 나갔다.
유사한 동작을 반복 연습하는 수업이라 수강생들이 지루해 할까 봐 수시로 음악을 바꿔 주시는 선생님 덕분일 테다. 우연히 좋아하는 음악이 흘러나오면 구름이 걷히고 해가 나듯 시야가 환해져 내가 못한다는 사실도 잊혔다. 가슴에 기쁨이라는 샘물이 있다면 한순간에 샘물이 가득 차올라 내 밖으로 흘러 넘쳤다.
어려서부터 밖에서 뛰놀기 좋아하고 몸으로 하는 걸 즐겨 발레에서도 몸을 쓰는 데 매력을 느끼나 보다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발레 수업이 좋은 건 음악 때문이라는 걸 알아챘다. 박자에 맞춰 몸을 움직이려면 온전히 음악에 집중해야 한다. 선율에 따라 음악의 인상을 살려 동작을 취하는 순간엔 나도 음악의 일부가 된다.
무념무상의 상태로 오직 음악 안에 머물 때 내 안에서 기쁨이 춤췄다. 한 시간 동안 음악과 몸의 움직임에 집중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면 몸과 마음이 한결 가뿐했다. 온갖 잡념과 스트레스가 지워져 정신이 맑아졌다.
시간이 쌓이면서 낯설고 어렵던 동작이 더디게 몸에 익었다. 어느 정도 순서를 익히자 조금씩 동작을 다듬어 갈 여유도 생겼다. 음악에 귀 기울이다 보면 나도 모르게 팔과 다리가 부드럽게 팔랑거렸다. 조금 더 우아하게, 조금 더 아름답게 움직이려고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신경 쓰다 보니 실력도 늘었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났다. 잘해야 한다는 부담이 없어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고 따로 더 연습한다고 힘을 들인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재미있어 계속 하다 보니 야금야금 실력이 쌓였다. 무엇보다 즐겁다. 좋아서 계속하는 일이 있고 그래서 내일이 기다려진다. 그런 나와 내 삶이 좋아졌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발레를 배운다고? 그런 걸 왜 해? 이제 해서 늘겠어?"
발레를 배운다고 하면 이런 물음이 돌아올까 봐 어디 가서 말도 잘 못했다. 가까운 사람들에게만 말했는데 오히려 멋지다는 답이 돌아왔다. 거기에 이런 말을 덧붙일 수 있게 되었다.
"잘하려고 하는 게 아니에요, 그냥 좋아서 해요. 음악을 들으며 몸을 움직이는 게 저를 기쁘게 해요. 그 순간엔 세상이 저를 사랑하는 것 같아요. 제게 그런 기쁨을 보여주는 세상을 사랑하게 되어요."
여전히 무언가를 좋아하며 두 눈을 밝히는 내가 좋다. 그건 오래전부터 좋아했던 내 모습이기도 하다. 의미나 가치와 상관없이 재미를 좇을 때 내 안에서 기쁨이라는 선하고 다정한 기운이 새어 나온다. 다른 나는 별로일 때가 많지만, 그런 순간의 나는 근사하다. 우리는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사랑한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알기 위해 재미와 즐거움을 찾는지도 모른다.
제대로 화과자를 완성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딸아이는 처음 주문한 앙금을 한 번에 다 써버리곤 재미있다며 또 사 달라고 두 눈을 반짝였다. 그럼, 재미있다면 얼마든지 사줄 수 있지. 마음껏 네 안의 즐거움을 탐험해 보렴. 그 기분을 충만하게 누리고 기억하길 바라. 자신을 즐겁게 해주는 것, 그게 바로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란다.
* [글 굽는 오븐]은 격주로 연재됩니다.
다음 연재일은 8월 25일입니다.
읽고 응원해주시는 작가님들, 독자님들,
고맙습니다 :)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