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리에 있다는 것

밤하늘의 별을 봐요

by 춤추는바람




아이를 위해 집안의 온도를 평소보다 1도 올렸을 뿐인데도 내겐 답답함이 느껴졌다. 신선한 공기가 필요했다. 겨울바람 안에서 온몸의 세포를 깨우고 싶었다. 오랜만에 달리기를 하러 나갔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면 몸이 개방된 세계에 놓인다. 몸과 정신은 한집에 살아 정신의 창문도 그처럼 열린다. 찬 기운에 둔해진 감각이 살아나듯 암전 상태였던 정신에 불이 켜진다.


공원을 달리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몇 개의 별이 밝게 빛났다. 오리온자리를 찾고, 작은개자리의 프로키온과 큰개자리의 시리우스, 오리온자리의 베텔게우스를 연결해 겨울철 대 삼각형을 그렸다. 같은 자리에서 빛을 보내주는 별들이 반갑고 고마웠다.


제자리에 있다는 게 멈춤 같아 의기소침했는데. 한 자리에서 맴도는 게 퇴보 같아 자신을 꾸짖었는데 별들이 자리를 지키는 일의 가치를 속삭였다. 오리온자리가 거기 있어 작은개와 큰개자리를 찾을 수 있다. 내가 여기 있어 누군가는 자신의 자리를 찾는다. 당신이 거기 있어 나의 자리를 알아챈다. 제자리에 있음으로 서로를 확인하는 존재들에게, 서로는 서로에게 빛이 된다. 밤하늘의 별처럼.




*



A형 독감에 걸렸던 아이가 연이어 B형 독감에 걸렸다. 한 달 사이 독감에 두 번 걸리는 일도 생긴다. 언제든 예측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 게 인생. 겪을수록 이런 일에 대해 내구성 같은 것도 생기기 마련이다. 지난번엔 덜컥 겁이 났지만 이번엔 담담했다.


A형 독감 확진을 받았을 때는 학기 중이라 서둘러 항바이러스제 수액을 맞췄다. 아이의 열이 드라마틱하게 떨어져 수월하게 넘겼다. 이번엔 순전히 앓기로 결정했다. 아이의 열이 치솟지 않았고, 기침이나 콧물 증상이 심각하지 않았다는 것도 그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방학이라 집에서 놀며 충분히 쉬면 되는데 앓는 일에서조차 속도를 내는 것 같아서다. '드라마틱'이라는 단어와 현상이 무언가를 은폐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어쩌면 제대로 앓지 않았기에 회복 또한 어설펐던 게 아닐까. 오래 앓고 난 이의 말간 얼굴엔 어딘가 먼 곳을 다녀온 듯한 아스라한 기운이 스며있고, 앓고 난 뒤의 아이는 나도 모르게 훌쩍 자란 듯했던 이전 경험을 떠올려보면, 제대로 앓는 일도 우리에게 필요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면역력이라는 게 생긴다. 충분히 앓아야 튼튼한 회복에 닿는다.


다행히 열은 38.5도를 넘지 않고 하루에 한 번 해열제를 먹으면 괜찮은 컨디션이다. 독감 때문에 외출과 친구 금지인 아이는 심심한 시간을 책 보며 뒹굴거리다 스스로 물감과 색연필을 꺼내 그림을 그렸다. 그런 순간엔 바라던 방학의 모습이 자연스레 연출되었다. 긴 긴 방학을 어떻게 보내나 걱정했는데 걱정과 달리 예상 밖으로 흐르는 시간을 바라보다 안도했다. 아이가 아픈 시간이 선물처럼 느림과 고요를 선사했다. 이런 삶을 어떻게 경이롭다고 하지 않을 수 있을까.


바깥은 춥고 집안은 고요하고 따듯하다. 겨울 해는 차가운 바람을 뚫고 거실 바닥으로 귀한 볕을 뿌려준다. 간소하게 차린 끼니를 아이는 맛나게 먹어 주고 내겐 적당한 수준의 일감과 쓰고 싶은 글과 써야 할 글, 퇴고해야 할 글이 산적했다. 읽었던 책, 읽는 책, 읽을 책을 쌓아둘 책상과 엉덩이 따숩게 해주는 전기장판 깔린 의자도 있고. 아이에겐 파란색이 회오리치듯 감긴 머랭 쿠키가 내겐 고소한 넛츠 쿠키도 있다. 그것들 헤아리다 나의 하루에 볕처럼 드리운 느림과 고요을 알아챈다. 이 평온에 감사한다. 내게 없는 것, 할 수 없는 일에 집착하며 울퉁불퉁해지는 대신 손에 잡히는 것들 쓰다듬다 잠잠해진다.




*




공원을 달리던 때, 내 곁에 빈 가지로 늘어선 나무들이 함께였다. 평생 한자리에서 머무는 나무들은 멈춤이 일상이다. 멈춰 있으니 겨울의 나무들은 퇴보의 시간 속일까? 나무는 제자리에서도 봄을 향해 나아간다. 나무의 묵묵함 너머를 상상하면 금세 다가올 계절의 푸름이 그려진다. 나무는 봄을 꿈꾸게 해준다.


밤하늘의 별과 그 아래 헐벗은 나무를 보며 삶의 자세를 가다듬는다. 제자리에서 잠연한 대상과 눈 맞추며 삶의 기본을 챙긴다. 자리를 지키는 일, 멈춤을 지속하는 자세의 고됨을 생각한다. 그 어려움을 다스리며 자신의 자리에 머무는 것으로도 족할 것이다.


내가 머무는 세계는 아주 작고 작지만, 작은 세계에서라도 빛을 짓고 싶다. 자리를 지킴으로 누군가에게 자리를 알려주고 마련해 주면서. 우리는 그런 식으로 서로에게 빛이 되는 중이다.


한자리에서 무궁해지는 나무 한 그루를 우리 안에 심어 볼 수도 있겠다. 내 안에서 봄을 키우는 일에 집중해 보면 어떨까. 멈춘 채로 빛과 꿈을 짓는 존재가 되어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