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서 찾은 마음

비우고 바라보기

by 춤추는바람



우리는 평소와 다른 시간을 경험하고 싶어 낯선 곳으로 떠난다. 생소한 장소, 사람, 사물 사이에서 감각은 새롭게 설정된다. 나라는 정체성은 세계와 맺는 관계로 형성되기에 낯선 세계를 접하는 여행은 새로운 나를 만날 기회다.


딸아이와 1박 2일로 여행을 다녀왔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성북동, 고즈넉한 한옥에서 하루를 보냈다. 짧은 여행 끝에 반짝이는 마음을 얻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목적으로 한 여행이다. 우연한 계기, 선물처럼 마련된 일정이라 무엇을 하겠다는 욕심은 처음부터 없었다. 손만 뻗으면 익숙한 생활 도구에 닿는 환경에서 벗어나 나와 아이가 잘 지낼 수 있을지 궁금했다. 그럴 때 우리의 모습은 어떨까, 우리는 그런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겪어보고 싶었다.


우리가 묵은 곳은 아담한 한옥으로 두 평 남짓의 네모난 마당을 기역(ㄱ) 형태로 둘러싼 집이다. 새로 다듬어진 실내는 깨끗하고 세련된 인상을 풍겼다. 실내에는 방 하나, 부엌 딸린 거실이 하나, 화장실 하나가 전부였지만 둘이 지내기엔 충분했다. 내부에 놓인 가구와 물건이 적어 공간이 넓게 다가왔다.


집에는 최소한의 물건이 놓였다. 두 사람을 위한 숙소라 식탁 하나에 의자가 둘, 그릇과 접시, 커피잔과 물컵도 둘씩이다. 거실에는 이 인용 소파와 커피 테이블이 하나 있다. 꼭 필요한 물건만 두니 작은 집인데도 빈 곳이 많다. 지나치게 비었다면 휑해 보였을 텐데 적절히 비어 편안하면서 아름다웠다. 좋은 취향과 안목으로 엄선한 가구와 물건이 더 돋보인 건 여백 덕분이다. 그것들이 빛나도록 정성껏 닦고 쓸고 가꾼 손길도 빼놓을 수 없겠다.


제각각 빼어난 미감을 지닌 물건들이 흰 벽과 여백 사이에 놓이자 전시장의 작품처럼 은은한 아우라가 주변에 감돌았다. 이 집에 이름을 붙인다면 ‘사물이 정물(화)이 되는 곳’이 좋겠다. 그곳에서 가장 적절한 행위란 작품처럼 놓인 가구와 물건을 가만히 바라보는 일이다. 머묾이 감상이 되고 휴식이 되는 공간이다. 감상소로서의 집, 집에 대한 또 하나의 가능성을 발견하면서 나만의 전시장에 머물 듯 시간을 보냈다.


공간은 모르는 사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 단아한 공간에서 나의 몸가짐도 그처럼 단정하고 간결해졌다. 아이와 식탁에 마주 앉아 종이 만들기를 하고, 음악을 듣다 가벼운 식사를 했다. 우리 사이로 도란도란 이야기가 오갔다. 침대가 아닌 온돌바닥에 깔린 도톰한 매트에 누워 책을 읽었다.





안방에 누워 마루의 천정을 바라보는 게 또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바닥에 누워 올려보니 바닥부터 천정까지의 높이가 고스란히 시야에 잡혔다. 높지 않은 벽과 벽에서 천정으로 이어진 나무 기둥, 그리고 천정에 노출된 서까래가 교차하며 그려내는 공간이 웅장하게 다가왔다. 나의 위치를 낮추었을 뿐인데 공간의 인상이 확연히 바뀌었다. 동시에 나의 내면도 달라졌다. 확장되고 드높아지는 대상을 바라보는 사이 나의 내면에도 그와 유사한 공간이 지어졌다. 공간의 크기는 응시하는 이의 위치에 달렸고 내 마음의 크기는 시선에 담는 대상에 따라 변모한다. 마주 보는 것들은 그처럼 서로를 닮는다.


다음 날 아침, 잠든 아이 곁에서 빠져나와 거실 식탁에 앉았는데 창밖에서 새소리가 건너 들었다. 마당에 면한 네모난 하늘이 바깥의 소리를 여과없이 전달했다. 도심이지만 집 안에 작은 하늘을 품으면 수시로 자연과 연결될 수 있음을 알렸다. 이런 집에서는 거실에 앉아서도 눈송이와 빗방울이 태어나는 장면을 볼 수 있으리라. 날이 맑은 밤에는 쏟아지는 별을 만나게 될까. 안에 머물면서도 바깥을 겪을 수 있을 것이다. 손바닥만 하더라도 집 안에 하늘을 품고 사는 건 얼마나 드넓어지는 일일까. 한 자리에서도 무한하게 확장되는 문 하나를 갖는 일은. 마당 위 네모난 하늘에 먹지처럼 내 마음을 대고 문 하나를 따라 그렸다. 마음에라도 무궁한 문 하나를 간직하고 싶었다.


느지막이 일어난 아이와 샌드위치를 먹고 집에 놓인 다구(茶具)로 차를 우렸다. 유리로 정교하게 세공된 찻주전자와 찻잔은 손만 닿아도 깨질 듯 아스라했다. 그런 물건을 만지고 보는 일은 순간에 우리의 영혼을 고양한다. 그걸 만든 이가 물건에 불어 넣었을 정성과 정신성이 손에 만져진다. 아스라한 물건을 귀히 다루는 사이 나 자신을 그처럼 대하는 기분이다. 찻주전자에 찻잎을 넣고 뜨거운 물을 부었다. 차를 음미하다 보니 찻주전자를 그리고 싶어졌다. 아름다운 장면 앞에선 시간을 멈추고 싶기 때문이다. 그럴 때 사진을 찍거나 그림을 그린다. 가만히 글로 옮겨보는 것도 좋다. 시간을 느리게 하는 일들이다.



'사월한옥'의 아름다운 다구세트



한 대상을 그림으로 옮기려면 오래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러느라 시간은 정지와 가까운 상태로 움직인다. 느린 응시는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이끈다. 투명하다고 여겼던 유리 주전자가 투명하지만은 않다는 걸 알아챘다. 표면의 굴곡과 빛이 닿는 각도에 따라 어딘가는 짙게 투명하고 어딘가는 금속성의 빛을 띠어 검게 보였다. 주전자의 윤곽도 첫인상과는 달랐다. 볼록하다고 여긴 곡선이 기묘한 방식으로 오목한 동시에 볼록했다. 바라볼수록 유리가 숨긴 다양한 빛깔과 선의 형태가 눈에 들어왔다. 한 대상을 오래 들여다보면 우리가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다. 우리는 대체로 생각대로 보고 그걸 제대로 보았다고 믿는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많은 대상을 스치듯 바라보는 사이 우리는 얼마나 많은 비밀을 놓치고 있을까.


빈 곳에 가득한 아름다움에 눈 맞추다 내 안에 쌓인 불안과 조바심의 근원을 마주하기도 했다. 더 많은 글, 더 많은 책, 더 많은 경험과 인정에 안달하는 내가 거기 있었다. 하지만 차를 마시며 하나의 주전자를 길게 응시한 뒤엔 작은 경험 하나에 만족하는 나를 새로이 만났다. 그러니 많은 것보다 깊고 진한 하나, 다시 또다시 사랑을 되살아나게 하는 하나의 대상이면 족할 것이다. 작은 집이 품은 손바닥만 한 하늘이 온 하늘을 품어 우주에 닿듯 내 손에 쥔 것을 골똘히 들여다보다 무궁한 세계로 들어설 수도 있을 것이다. 나의 자리로 돌아가 할 일이 무언지 알겠다.



'사월한옥'의 여백



적지만 아름다운 물건을 지닌 한옥. 빈 자리로 빛과 그림자, 새소리와 고요를 초대하는 공간. 그곳에서 머물며 삶에 무엇을 들이고 뺄지 생각했다. 적은 것에 둘러싸여 있을 때 머묾은 온전한 휴식이 된다. 적은 소유가 긴 응시로 이어진다. 긴 응시는 대상이 숨긴 비밀을 찾는 열쇠다. 예술가가 되고 싶은 당신이라면 적은 것을 더 오래 바라봐야 한다. 당신만의 발견을 원한다면 좁은 길을 촘촘하게 살펴야 한다. 긴 응시와 기다림 끝에 미지의 장소에 닿을 것이다.


새해가 시작되고도 어느덧 보름이 지났다. 여전히 길을 잃은 것 같다면 비우기부터 시작하면 어떨까. 덜어내고 남은 적은 것을 오래 응시하며 그림을 그리듯 시간을 들이자. 일상에 숨은 비범한 아름다움이든, 당신이 찾고자 하는 평온이든, 혹은 문제의 실마리든, 진득한 응시 끝에 홀연히 떠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