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라는 기척, 그리고 열림
창밖에서 빗방울이 떨어진다. 봄이 오는 소리와 파동을 감각한다. 하늘과 땅이 열리는 기척. 당신의 정원에서는 무엇이 싹 트고 있을까. 무엇이 어디로 열리고 있을까. 열림을 향한 순간의 기척에 주의를 기울인다.
침대와 책상
아이 방 절반의 공간을 차지하던 이층 침대를 처분했다. 어느 날 딸아이가 낮은 싱글 침대와 책꽂이가 달린 책상이 갖고 싶다고 했기 때문이다. 평소 이층 침대 때문에 공간이 좁다고 느끼던 터였고 4학년이 되는 아이에게 학업에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로 방을 바꿔주고 싶다고도 생각했다.
아이가 원하는 스타일의 책상과 침대를 인터넷으로 함께 찾아보았다. 비용이 만만치 않아 당근으로 알아볼까 했지만 아이는 자신이 고른 책상과 침대를 원했다. 비용 때문에 망설이는 내게 자신의 용돈을 보태겠다고 제안했다. 고등학교 때까지 쓰자고 약속하고 새 가구를 주문했다. 일주일 후 책상과 침대가 배송되었다. 이 단 짜리 책꽂이가 달린, 그중 한 단에는 덮개가 붙은 흰 책상과 톤 다운된 민트색 침대가 도착했다.
새 가구는 비어있던 방에 맞춤처럼 놓였다. 딸아이는 남기고 싶은 물건을 추려 방을 정리했고 새 단장을 마친 방을 무척 마음에 들어 했다. 거실의 큰 테이블 주변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던 아이가 새 가구가 들어온 오후에는 자신의 방에만 머물렀다. 방문은 닫힌 상태였다. 저녁이 되자 자신의 방에서 혼자 자고 싶다고 말했다.
그날 밤 아이가 잠들 때까지 곁에 머물다 아이가 잠든 걸 확인한 뒤 토끼 모양의 수면 등을 끄고 살며시 방을 빠져나왔다.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깬 아이는 한 번도 깨지 않고 푹 잤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올해로 아이가 태어난 지 딱 십 년이 된다. 한 사람의 내면에 독립성의 싹이 트는데 십 년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 걸까. 아이의 가슴에 작고 여린 싹 하나가 돋아났는지도 모르겠다. 어린아이의 여린 가슴에서 독립성은 더디게 싹을 틔우지만, 한번 돋아나면 단번에 쑤욱 뻗어 나나보다. 그런데 내 가슴은 작고 여린 싹 하나를 도려낸 듯 아렸다. 아이가 잘 잤다던 밤, 아이를 떠나보낸 우리 부부의 잠자리는 어찌나 허전하고 춥던지 나는 한참을 뒤척거리다 간신히 잠들었다.
탁구와 농구
지난겨울 우리 가족은 거실에서 탁구를 했다. 날씨가 추워 밖에서 뛰어놀기 어려운데 방학이라는 길고 긴 시간이 우리(특히 나와 딸아이) 앞에 펼쳐져 있었다. 점심을 먹고 나면 아이와 같이 탁구채를 들고 살구색으로 동그란 공을 주거니 받거니 했다. 핑퐁, 핑퐁, 핑퐁. 겨울이지만 그 시간대에는 한낮의 볕이 거실 창문 앞으로 환하게 떨어졌다. 창문의 그림자가 그려내는 네모난 사각형은 탁구장이 되었고 탁구공이 규칙적으로 테이블에 부딪히며 내는 경쾌한 소리가 리듬을 형성했다.
한 번은 탁구공을 치며 열중하던 사이 공을 줍다 보았는지 아이가 창밖의 나뭇가지를 가리켰다. 작고 귀여운 박새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박새는 참새처럼 몸집이 작은데 머리 부분이 까맣다. 잠시 뒤 또 한 마리가 날아와 그 옆의 나무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새들을 주시하느라 우리는 잠시 탁구 치던 것도 잊은 채였다. 그러다 아이가 탁구채로 창문을 두드렸고 "통"하는 소리가 가볍게 울리는 동시에 새들이 날아올랐다. 몇 번을 아래서 위로, 이쪽에서 저쪽으로 움직이다 우리 시야에서 벗어났다.
아이가 다시 창문을 두드리자 "통"하는 소리와 함께 창문의 오른편에 직박구리 한 마리가 나타났다. 또 한 번의 “통” 소리에 또 한 마리의 직박구리가 등장했다. 그러니 “통”하는 소리와 파동이 새들을 부른 게 아닐까 하는 호기심이 동했다. 창문을 울리는 "통" 소리 이전에 일찍이 우리가 집안에서 탁구공을 튕기며 내던 “팅- 통-, 팅- 통-” 소리와 파동이 새들을 유인했을지도 모른다. 그 소리와 파동에 새들도 호기심이 동해 창문 안을 들여다보았을까.
“팅- 통-, 팅- 통-”하는 리드미컬한 소리는 새의 날갯짓이나 울음소리와 닮았다. 포물선을 그리는 공의 움직임이 생성하는 가볍고 경쾌한 리듬. 닮은 것들은 서로를 알아채고 서로를 부른다. 탁구와 박새, 창문 두드림과 직박구리의 출현. 그런 순간엔 기다림도 두려움도 없다. 우리의 마음은 무엇을 향하지도 않으면서 바라는 것으로부터 자유롭다.
우수를 지나자 한낮의 볕은 봄기운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낮에는 이미 봄이다. 공기 중에는 이미 술렁거림이 가득하다. 봄이 우리를 부른 걸까. 며칠 전부터 우리는 탁구채를 드는 대신 농구공을 들고 공원으로 나간다. 나와 딸아이와 딸아이의 친구와 그 아이의 동생. 농구에 서툴기만 한 사람들이 키다리 골대 아래 쪼르륵 서서 번갈아 공을 던진다. 대체로 우리의 공은 골대 가까이 올라가지도 못하고 맥없이 떨어진다. 그러다가도 슉, 골대의 그물망 속으로 공이 미끄러지듯 들어가는 순간이 탄생한다. “야호!” 기다렸다는 듯 우리의 함성이 터진다.
탁구공의 가벼움과 달리 묵직한 농구공이 바닥에 닿을 때면 “텅, 탱, 탱, 텅!”하는 둔탁한 소리가 울린다. 순간적으로 공간이 흔들리거나 금이 가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두터운 소리와 울림. 이 소리와 파동은 무엇을 향하고 있을까.
소설의 마음
‘글이 형편없어졌다’와 ‘글이 가벼워졌다’라는 생각이 내 안에서 엎치락뒤치락한다. 더 나은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하던 때엔 그 마음이 과해 문장이 무거웠다. 나은 글을 쓰고 싶다는 바람은 여전하지만, 절절한 간절함은 사라졌다. 무언가를 미친 듯이 파고드는 열정이란 한때에만 가능하다. 열정이란 그걸 품은 대상도 함께 태워버리기 때문이다. 열정과 더불어 나의 일부는 소실되었다. 소실을 면한 일부는 열정보다 무심한 성실함과 내구력을 원한다.
내 삶에 별다른 일이 없듯 나의 글도 평이한 문장의 나열이다. 그런데 평이한 문장의 나열, 그건 황보름 작가가 소설의 요소라고 말했던 부분 아닌가. 한순간을 잘게 쪼개 슴슴한 문장에 담아내는 일. 인내심을 갖고 문장으로 순간을 재현하는 일. 명료한 의미를 끌어내기보다 희미한 낌새를 그려내는 일. 쉽게 결론 내리지 않고 모호한 채로 남겨 두는 일. 문장을 벽돌처럼 쌓아 공간을 짓는 일이 소설이라면, 나의 문장을 모아 소설을 지을 수도 있을까. 시시하고 가벼운 문장으로 소리와 파동이 이는 순간을 채집한다면.
안팎으로 변화의 기척을 감지한다. 어딘가로 열리는 낌새로 어수선하다. 가슴에서는 여린 싹 하나를 떼어 저쪽 방으로 옮겨 심었다. 탁구공을 튕기던 손으로는 농구공을 던진다. 기적처럼 그물망을 통과하는 한순간을 향해. 문장을 적는 나의 마음도 유사하다. 백번을 던져 한 번의 골인에 성공하는 마음으로 백 개의 문장을 적는다. 적확하게 닿을 하나의 문장을 얻기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