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자라는 엄마
아이를 향한 길은 늘 내게로 이어진다. 아이에 대한 걱정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속에 웅크리고 있는 건 나에 대한 불안이나 두려움인 경우가 많다. 내게 불편하고 거북한 상황이 아이에게 펼쳐질까 봐 지레 겁을 먹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아이의 반응은 생각과 달랐다. 걱정과 달리 애초에 문제라고 인식하지 않거나 의외의 용기와 대범함으로 이겨냈다. 어른이 되고 세상살이를 더 알게 될수록 두려움은 작아지는 게 아니라 커지는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더 사랑받길 원할 때
가정의 달 5월엔 가족 모임이 연이어 있었다. 한 번은 친정 식구들이 다 같이 모였고, 다른 날엔 시댁 식구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두 번의 모임에서 사람들의 관심이 우리 아이가 아니라 다른 아이에게 쏠린다는 걸 느꼈다. 그런 상황이 눈에 보였다는 건 거기에 마음이 쓰였다는 뜻일 테다. 그렇다고 속상하거나 아쉬울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아무렇지 않은 아이를 괜히 끌어안아 말을 걸고, 토닥거리게 되었던 건 왜 일까? 나 혼자 괜스레 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 어색한 침묵을 견딜 때와 비슷한 심정이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친정 모임에서는 아이보다 더 어린 세 살배기 사촌 동생에게, 시댁 모임에서는 나이가 더 많은 초등학교 5학년 언니에게 관심이 집중되었다. 세 살 배기 사촌 동생은 말문이 트이면서 가족들의 예쁨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처음 말을 배울 때 아이가 혀 짧은 소리로 말하는 모습이 워낙 귀엽기도 하고 특히나 말을 잘해 친정 엄마의 칭찬이 자자하다. 엄마의 유난스러운 칭찬 때문에 그 상황이 더 도드라지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우리 아이보다 조카를 만나는 빈도가 잦으니 그만큼 애착이 클 수도 있고. 내 눈에도 작은 아이가 상황에 맞는 말을 착착 뱉어낼 때마다 신기하고 예뻤다.
시댁에서의 상황도 비슷했다. 아이의 사촌 언니는 초등학교 들어갈 때까지 시부모님 손에 키워졌다. 그러니 당연히 부모님께서 갖는 애착이 더 클 수밖에 없다. 5학년이 되면서 부쩍 성숙한 느낌이 들고 외모도 눈에 띄게 예뻐졌다. 학원 다니고 공부한다고 바빠 얼굴도 자주 못 보니 아쉬운 마음에 더 관심이 가셨을 테다. 아이의 외모에서부터 혼자서 해내고 있는 일들에 대한 칭찬이 이어졌다. 우리 아이는 한쪽에서 저 혼자 장난을 치느라 아무 생각도 없어 보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드는 건 앞서 나가는 ‘엄마 마음’ 때문이다. 그 마음은 내 아이가 소외감을 느끼지는 않을까 걱정부터 했다. 아이가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낄까 봐 불안했던 것 같다. 그런데 사실 아이는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아이는 조부모나 친척들의 사랑을 받으며 주목받기를 전혀 바라지 않았다. 걱정과 불안도, 더 사랑받고, 관심을 끌고 싶었던 것도 모두 다 내 마음이었다. 이러나저러나 아이가 찾는 건 엄마였고, 엄마만 바라봤으니까.
그러니 괜한 엄마의 마음을 아이에게 투영하는 것만큼 위험한 일이 또 있을까? 엄마의 걱정과 욕심으로 아이를 의기소침하게 만들고 주눅 들게 할 수 있다. 부모가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는 것도 피해야 하지만 좋은 영향을 끼치려는 것도 피해야 한다던 어느 작가의 말이 떠오른다. 그만큼 어떤 영향도 주지 않는 게 가장 바람직한 부모의 태도일 수 있다. 아이가 원하는 건 언제나 엄마의 사랑이다. 그러니 아이가 사랑받길 바라는 만큼 내가 더 아이를 사랑해주면 되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바라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걸 해주는 게 엄마의 일이다.
사랑은 어떻게 채워질까
타인에게 사랑받고 싶어 하는 마음에는 자신에 대한 사랑의 열망이 숨어 있다.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충만할 때 우리는 타인의 사랑을 갈구하지 않는다. 내 안의 사랑으로도 부족함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온전히 사랑할 수 없을 때, 사랑에 대한 열망은 밖을 향한다.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어 진다. 내가 나를 인정하고 사랑할 수 없으니까 밖에서 그걸 얻으려 한다. 하지만 자신에 대한 인정과 사랑 없이 타인의 마음으로 나를 채울 수 있을까. 내 마음에 구멍이 있는데 타인의 마음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내게 스스로가 한없이 모자란 사람으로 여겨질 때, 타인을 통해 그걸 채우려 하면 상대가 그런 나를 부담스러워 하기도 한다. 때론 못난 나를 사랑하는 타인의 마음마저 온전히 바라보지 못하고 의심하고 왜곡하기도 한다. 사랑은 쉽게 효력을 잃는다.
안에서 솟아나지 않는다면 밖에서도 구하기 어려운 게 사랑이다. 사랑의 샘은 보이지 않게 안으로 깊숙이 파였는지 그 안이 채워지지 않는다면 밖에서 더해주는 물로는 절대 차오르지 않는다. 아이에게도 그럴 것이다. 자신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 타인에게 사랑을 줄 수도, 받을 수도 있다. 아이는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처음 받았던 사랑의 경험에서 배우지 않을까. 첫 눈맞춤을 하고 생애 초기를 보살펴주는 부모로부터 말이다. 조건 없이 무한하게 자라는 부모의 사랑을 경험하면서 사랑의 존재를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자신이 사랑받고 있음을, 사랑받을 가치가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아이가 스스로를 사랑하는 마음의 씨앗은 부모에게 받은 사랑에서 잉태된다.
내게도 한 때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길 바랐던 때가 있었다. 사람들의 마음을 얻고 싶어, 타인의 마음에 맞추고, 그들이 좋아하는 누군가가 되려고 애썼다. 많은 이들이 좋아해 주는 사람이 되기도 했었다. 그런데 지나서 생각해보니, 그때 나는 내게 가장 나쁜 사람이었다. 내 마음보다 다른 이의 마음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으니까.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에 더 몰두했으니까. 그러는 사이 내 마음은 위축되고 약해졌다. 쉽게 상처 받았고, 부당한 것도 참기만 했다. 어렵게 마음을 얻었던 사람들이 내 곁에 오래 남아있었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무리에서 떠나자 연락은 쉽게 끊어졌다. 지나치게 애를 써야 했던 관계는 내가 연락하지 않으면서 저절로 사라졌다. 지금 곁에 남은 이들은 있는 그대로 편안하게 나를 보여주었던 사람들이다.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으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중요한 것은 사랑의 양이 아니라 마음의 농도와 깊이다. 그래서 아이에게 친구가 많길 바라지 않는다. 아이가 친구를 만들기 위해 지나치게 애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친구에게 마음을 쏟기보다 자신을 아끼고 보살피는데 정성을 들이면 좋겠다.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기보다 소수의 사람들과 깊이 있는 사랑을 나누길 바란다. 사람들이 들끓어 요란하고 떠들썩한 삶보다 손가락에 꼽는 이들과 가만한 삶 속에서 풍요롭길 바란다.
마찬가지로 많은 것을 가지려 하기보다 적은 것에서 충분함을 느끼길 바란다. 하나를 갖더라도 그 안에서 풍족할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품길 바란다. 내가 아이에게 주는 사랑이 그 마음의 바탕이 될 것 같다. 아낌없이 아이를 사랑해주고 싶다. 자신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존재인지, 의심 없이 믿을 수 있게. 자신을 채우는 사랑을 밖에서 찾지 않고 스스로의 가슴속에서 늘 느낄 수 있게. 다른 이의 사랑을 갈구하기 전에 자기 안의 가득 찬 사랑을 믿을 수 있게 아이의 가슴을 엄마의 사랑으로 채워주고 싶다. 하나로도 충분하고 넘치는 사랑을 경험한 마음은 많은 것에 욕심내지 않아도 된다는 걸 저절로 알게 될 것 같으니까.
나는 나를 더 사랑하기로 했다
"조건없이 사랑해주는 엄마를 가진다는 것.
그것은 세상 무엇과도 싸울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_박연준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 달 출판사
자기 안에 단단한 마음이 있다면, 스스로 자신을 보듬을 수 있다면, 밖에서 오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아이에게 더 큰 사랑을 내어주고 싶어 하는 내 마음은 과연 단단할까? 내 마음의 샘에는 가없는 사랑이 있을까? 타인의 사랑에 흔들리지 않고 스스로를 지킬 만큼 올찬 마음이 있을까? 아이는 매일 넘치는 사랑을 내게 건넨다. 어쩌면 아이에겐 이미 가득 찬 사랑의 샘이 마음속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채워야 할 건 내 마음일 테다. 아이를 걱정했던 시선 너머에 나의 불안과 욕심이 있었듯. 나는 나를 더 사랑해야겠다. 나를 채운 사랑이 소리 없이 아이에게로 흐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