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로 가는 산책
근처 라멘집에서 오징어 다리 튀김을 먹었다. 바삭하게 튀겨진 얇은 튀김옷이 입안에서 경쾌하게 부서졌다. 안에 든 오징어 살은 잘 익어 보드라웠다. 짭조름한 튀김을 마요네즈에 찍어 먹었다. 맥주랑 먹으면 딱인데, 하는 생각과 동시에 뜨거운 태양이 쏟아지던 여름의 바닷가가 떠올랐다. 하지만 현실은, 에어컨 바람의 냉기가 실내를 가득 채우고 있어 으슬 으슬 몸이 떨릴 지경. 그러고 보니 올여름엔 바다 구경도 못했네……. 유별나게 바다를 좋아하는 건 아닌데도 맘대로 갈 수 없게 되자 바다 생각이 자주 났다. 해수욕도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여름이라니, 앙꼬 없는 찐빵이 따로 없다.
5년 전 이탈리아에서 리오마조레라는 섬마을 바닷가로 해수욕을 갔었다. 아침과 저녁, 하루 두 번 피렌체에서 리오마조레를 직행으로 오가는 기차가 있었다. 기차가 정차할 때마다 수영복 위에 끈 달린 원피스를 걸치거나 쇼트 팬츠 차림의 사람들이 올라탔다. 돗자리에 파라솔까지 주렁주렁 물놀이 장비를 챙긴 가족들로 기차는 서서히 만원이 되었다. 여름의 바다는 관광객만을 위한 게 아니었다. 현지인들도 즐겨 찾는 곳이었다.
리오마조레는 해변가를 따라 알록달록 색칠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작은 섬이다. 친퀘테레라 불리는 다섯 개의 섬 중 첫 번째 섬인 리오마조레는 한 시간이면 마을을 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작다. 당시 친퀘테레는 주요 도시를 중심으로 이동하는 이탈리아 여행에서 잠깐 들르는 정도의 여행지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파란 바다와 하늘을 배경으로 작은 집들이 모여 있는 사진 한 장에 마음을 빼앗긴 나는 하룻밤을 머물기로 했다.
산을 등지고 바다를 향해 놓인 집들이 해변을 따라 층층이 자리 잡고 있었다. 좁다란 오르막길을 따라 천천히 산책하면 바다로 확장되는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그때 묵었던 숙소의 홈페이지에는 이런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호스트의 아버지는 말없이 배를 타고 나가 몇 시간 씩 사라지곤 했다고. 바다와 같이 매일을 살며 언제든 훌쩍 바다로 숨어버리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었다. 산 중턱에 있는 성당에서 때를 알리는 종이 울렸다. 마침 저녁해가 하늘을 물들이며 장엄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뎅, 뎅, 뎅. 푸훗-,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얄팍한 양철을 두드리듯 가벼운 소리가 공기로 번지기도 전에 뚝 뚝 끊어져버렸으니. 성당에서 울려 퍼지는 종소리에 대한 나의 선입견은 순식간에 깨져버렸지만 장난감 두드리는 소리 같던 양철 종소리가 이 마을과는 퍽 잘 어울렸다.
하룻밤이었지만 그때의 인상이 기분 좋아 다시 거길 찾았다. 이번엔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곧장 바다로 갔다. 피렌체에 머물고 있었는데 더위에 지쳐가고 있었다. 도시는 식을 새 없이 달구어져 이글거렸다. 차가운 물속으로 뛰어들고 싶었다. 리오마조레에 도착한 날도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을 만큼 강렬하게 햇빛이 쏟아졌다.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날, 바다에서 하늘까지 온통 파랬다. 짙고 깊고 끝없는 파랑.
우리는 서둘러 바다로 뛰어들었다. 차가운 물속에 몸을 담그고 나자 여름의 흥이 솟아났다. 발밑에 밟히는 자갈은 해초에 덮여 미끌미끌했다. 바닷속에 얼굴을 넣으면 발 밑으로, 눈앞으로 바삐 헤엄쳐가는 작은 물고기들이 보였다. 밖에서 보면 짙은 에메랄드 빛 바다는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일 정도로 맑았다. 눈에는 더없이 투명한 물이 입술에 닿으면 소름이 돋을 만큼 짰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여름이 거기 녹아있었다.
물에서 헤엄을 치다, 지치면 밖으로 나와 자갈밭 위에 펼쳐 놓은 커다란 타월 위에 누워 낮잠을 잤다. 그러다 몸이 달궈지면 다시 물에 들어가길 반복했다. 해수욕을 즐기는 사이 살갗은 붉게 달아올랐다. 그래도 해를 피하려 그늘을 찾거나 얼굴과 몸을 타월로 가리지 않았다. 구릿빛으로 건강하게 그을린 현지인들의 피부가 멋있어 보였다. 내 몸에도 그 건강한 색을 입히고 싶었다.
바닷가 초입에 있는 작은 가게에서 해산물 튀김을 팔았다. 종이를 둘둘 말아 만든 커다란 고깔 모양의 컵에 조갯살, 홍합살, 오징어, 새우 등 여러 가지 튀김을 가득 담아 레몬 조각을 얹어 주었는데 3유로였다. 푸짐한 양에 먹기 전부터 신이 났다. 맥주 두 병을 사서 해변으로 돌아왔다. 뜨거운 자갈 위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차가운 비라 모레티를 한 모금 들이 켰다. 갓 튀겨내 뜨거운 김이 나는 튀김 위에 레몬즙을 주욱 짠 후 바닷물이 묻어 짭조름한 손가락으로 집어 먹었다. 신맛과 짠맛이 오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바삭한 껍질과 보드라운 속살이 입안에서 뒤엉켰다. 호, 호, 입으로 뜨거운 김을 내뱉으며 튀김을 먹고 뒤이어 마시는 차가운 맥주의 맛이란. 입안에서 여름이 춤을 췄다.
이글 거리는 태양 아래, 깊고 투명한 푸른색으로 넘실거리는 바다를 바라보며 튀김과 맥주를 먹었다. 그리고 여름의 뜨거움을 즐기는 법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피하지 않고 온 몸으로 뜨거움을 받아들여야 만끽할 수 있는 짜고 후끈한 맛. 진짜 여름의 맛은 이런 거라고. 커다랗게 쉼표를 찍고, 느리게 머물 때에만 보이는 게 있다. 나만의 여름의 맛을 발견했다. 바닷가에서 먹었던 뜨거운 튀김과 차가운 맥주, 소스라치게 짰던 그 바닷물. 여름은 짜다.
그때 익힌 여름을 즐기는 기술이 몇 년째 발휘되지 못하고 있다. 한동안은 출산과 육아로 운신의 자유가 허용되지 않았고, 작년에 이어 올해까지 ‘코로나 19 감염병'으로 발목이 묶였다. 바다가 그립다. 늘 바다보단 산이라고 생각했는데, 올여름은 유난히 바다를 꿈꾼다. 지나가는 여름이 싱거워서 그럴까. 그 바다의 쨍쨍한 짠맛을 기억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