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자라는 엄마
요즘 <슈퍼밴드 II>를 챙겨보고 있는데 내 감상평과 심사위원의 평이 엇갈릴 때가 있다. 귀에 착 감겨 편안하게 즐겼던 노래, 익숙한 패턴의 음악을 훌륭한 합으로 연주한 팀에게 심사위원들은 아쉬움을 토로하고, 이게 뭐지, 싶게 충격적인 사운드를 만든 팀에게 호평일색인 경우가 있다. 오디션이라는 프로그램 특성상 기존에 없던 음악을 만들어내려는 시도를 높이 평가하기 때문일 테지만, 전자에 속한 팀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 심사위원들의 야박한 점수에 아쉬워지기도 했다. 하지만 여러 팀의 신선한 시도를 접하다 보면 심사위원의 의중에 동의하게 된다. 다른 팀도 할 수 있는 음악, 익히 알고 있는 스타일의 연주는 편안하게 즐겁긴 하지만, 두드러질 만큼의 감흥을 주진 못했다. 대체 가능한 즐거움이었고, 그만큼 여운이 짧았다.
주말에 아빠를 모셔 둔 추모원에 가져갈 꽃을 사려 시장에 다녀왔다. 아이와 같이 꽃다발을 만들기로 했다. 시장에 가기 전부터 아이는 자기가 꽃을 고르겠다고 아우성이었다. 꽃 시장에 가는 것도 처음, 꽃을 직접 고르는 것도 처음이니 아이에겐 꽤나 설레는 일이었을 테다. 전철을 타느라 계단을 오르내리고, 시장까지 걸어가느라 지쳤는지 아이는 얼마나 더 가야 하냐고 투덜거렸다. 하지만 꽃 시장에 들어서자마자 아이의 한숨은 감탄으로 바뀌었고 눈이 휘둥그레져서 돌아다녔다.
꽃 시장에 가면 여러 가지 꽃들을 만난다. 한 가지 꽃들도 다양한 색으로 늘어서 있고, 시중에서 흔히 볼 수 없는 특이한 소재도 많다. 처음 한 바퀴를 휘 둘러보면서는 모든 꽃을 있는 그대로 순수히 감상한다. 꽃들 하나하나는 저마다의 모양과 특유의 색으로 아름답다. 자연이 빚어낸 오묘한 색감과 독특한 무늬는 일반적인 미의 기준을 뛰어넘어 각자의 아름다움을 품고 있으니까. 처음 보는 어떤 꽃은 그 이색적인 느낌 자체로 감탄을 자아내기도 한다.
하지만 두 번째 시장을 돌 때부터는 마음이 달라진다. 내게 적당한 꽃과 그렇지 않은 꽃으로 분류하기 시작한다. 꽃들이 지닌 유니크한 아름다움은 잊히고 내 기준에 맞는지 안 맞는지에 몰두하게 된다. 만들고자 하는 꽃다발의 전체적인 톤을 정했거나, 그날따라 유난히 예뻐 보이는 꽃을 택했다면, 지금부터는 그걸 중심으로 어울린 만한 꽃을 찾는다. 잣대를 들이대면 어떤 건 색이 안 맞고, 어떤 건 너무 튀거나 형태가 이상해 시야에서 지워진다. 꽃을 보는 즐거움은 사라지고, 조합에 맞는 꽃을 찾아야 한다는 압박감이 생긴다.
아이에게 꽃을 고르라고 선택권을 주었지만, 아이가 단번에 고른 꽃은 예상을 뛰어넘는 것들이라 나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아이는 푸른빛 장미를 가리키며 감탄했고, 자칫 촌스러워 보일 수 있는 쨍한 자줏빛의 동그란 꽃을 예쁘다고 했다. 연노랑의 얼굴이 커다란 달리아를 집자, 옆에 있는 살구빛이 더 예쁘지 않냐고 아이에게 속삭였다. 그렇게 내 의견을 들으면서 아이의 선택이 어떤 방향으로 이끌렸는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에 아이가 고른 꽃은 하얗고 얼굴이 작은 국화와 연분홍빛 리시안셔스, 그리고 연한 살구색에 연둣빛이 감도는 장미였다. 그 정도면 하나의 부케 속에서 무난하게 섞일만했다. 내심 예상했던 꽃의 범위를 넘어서지 않아 안도했다. 거기에 초록의 싱그러움을 더하기 위해 잎이 작은 유칼립투스 한 단을 추가해 사들고 왔다.
집으로 돌아와 부케를 만들다 보니 이상하게 아쉬웠다. 골라온 꽃들은 자연스레 어우러지고 나름대로 여성스러운 느낌으로 예뻤지만, 조금 밋밋했다. 흔한 꽃을 선택한 것도 그렇고, 색감조차 연해 존재감이 부족했다. 흔히 보았던 뻔한 꽃다발이었다. 문득 아이가 처음 골랐던 푸른빛 장미나 자줏빛 꽃을 골랐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의외의 조합과 색으로 신선한 부케가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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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이 쌓일수록 실패를 줄이는 감도 절로 생긴다. 무언가를 사거나 선택할 때 무의식적으로 실패하지 않을 방향으로 이끌린다. 결과를 예상할 수 없는 선택은 의도적으로 피하면서. 그러다 보니 어느새 그게 그것 같은 선택을 반복하게 된다. 새로운 걸 접해도 예전만큼 신기하고 놀랍거나 즐겁지 않은 건, 새롭다고 하지만 나도 모르게 익숙한 것, 예측 불가능한 옵션을 제외한 것으로 선택했기 때문이 아닐까. 어느새 무난함과 안전함이라는 강력한 루프 안에 갇혀 버린 건 아닐까. 실패 없는, 손해보지 않는, 예상할 수 있는 선택을 하는 사이 삶의 기쁨은 줄어들고 있는지도.
파란색 장미를 가리키며, 이거 너무 예쁘다, 하던 아이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파란색 장미라니, 하며 속으로 뜨악했던 나와 달리, 아이의 목소리엔 미세한 떨림까지 있었다. 마치 겨울왕국의 엘사 그림이 그려진 무언가를 발견했을 때처럼. 그런 아이의 마음을 따라 파란색 장미를 택하고, 연노랑 달리아와 자줏빛 꽃을 사 왔다면 예측을 뛰어넘는 신선한 꽃다발이 만들어졌을 것 같다. 알록달록한 사탕을 꽂아 놓은 것처럼, 선명하고 독특한 색감이 어우러져 재미난 세상이 꽃다발 안에 피어올랐을 것 같다. 왜 모험하지 않았을까. 그래 봤자 몇만 원 잃는 일이었는데 말이다.
우리의 핑크빛 부케도 물론 예쁘다. 은은하고 튀지 않아 조화롭다. 하지만 역시 재미는 없다. 단번에 생기를 부여하는 쨍한 기운은 부족하다. 그러니 자꾸 존재감을 드러내는 무언가가 하나 더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뻔한 선택은 안전하지만 탁월하긴 어려운 거다. 모험을 해야 예상 밖의 즐거움도 만날 수 있는 걸 테고. 다음번엔 머리로 계산하지 않고 마음으로 느끼면서 눈에 띄는 대로, 손길 가는 대로 꽃을 골라 와 보고 싶다. 의외의 것들이 만나 빚어낼 뜻밖의 하모니가 벌써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