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엔 매일 피는 꽃이 있다

아이와 함께 자라는 엄마

by 춤추는바람


올해 초 공원에서 놀다 넘어진 아이는 팔꿈치에 금이 가는 바람에 깁스를 하게 되었다. 유난히 추운 날씨 탓에 밖에 나가 노는 것도 힘들었는데 깁스까지 하는 바람에 집에 꽁꽁 묶여 막바지 겨울을 났다. 깁스를 하고도 아이의 명랑함에는 변함이 없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인데, 엄마에겐 그게 또 불안의 요소였다. 방에서 달려 나오다 넘어져 다친 팔이 바닥에 부딪히기도 했으니. 그럴 때마다 가슴을 졸였다. 수술 한 팔을 부딪혀 다시 수술했던 아이가 있었다는 의사의 말도 들었으니 더 신경이 쓰였다. 내 입에서는 “뛰지 마~”, “조심조심~”, “천천히~”라는 말이 떠날 새가 없었다.


불안한 마음에 외출도 거의 못했다. 하지만 구정이 지나고 봄기운이 들이닥치자 마음이 들썩거렸다. 하루는 창으로 들이치는 햇살의 유혹에 못 이겨 점심을 먹고 동네 슈퍼 마켓으로 마실을 다녀왔다.


집 앞에 나가는 거지만 다친 팔 때문에 일주일 내내 같은 티셔츠만 입고 있던 아이에게 진달래빛 원피스를 입혀주었다. 다가오는 봄에 입히려고 세일할 때 미리 사둔 옷이라 품이나 길이가 넉넉했다. 그 덕에 깁스를 한 퉁퉁한 팔도 쑤욱 들어갔다. 길고 풍성한 드레스를 입고 아이의 입은 귀에 걸렸다. 원피스 위로 알록달록 색색의 꽃이 한가득 달린 살구빛 카디건을 걸쳐 주니 봄 속에 피어난 꽃처럼 해사했다.


아파트 현관을 나선 아이가 짐짓 어른 스런 말투로 내뱉었다. “날씨 좋네!” 그 말을 듣고 엘리베이터를 함께 타고 내려온 젊은 부부가 소리 내어 웃었다. 한결 온화해진 공기 속으로 발을 내디뎠다. 소식도 없이 무심히 당도한 계절의 변화가 반가웠다. 길에서 마주친 사람들의 옷차림도 가벼워져 있었다. 햇볕이 들이치는 길에선 절로 감탄사가 새어 나왔다. 온몸의 세포가 빛을 향해 아우성쳤다. ‘이거야, 이거, 이런 볕을 기다렸다고!’


슈퍼를 향하는 길가에 누가 버렸는지 커다란 조개껍질 무더기가 쌓여 있었다. 그걸 발견한 아이가 누가 버렸지 하면서 관심을 갖더니 그 뒤로는 바닥에 떨어진 쓰레기 찾기에 골몰했다. 그러자 평소엔 보이지도 않던 담배꽁초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여기 또 있네, 또 있다!, 저기도!” 하도 많아 내가 민망해졌다.


“누가 버렸을까. 길에 쓰레기 버리면 안 되는데…….” 사방팔방에서 담배꽁초가 보였다. 이 길을 지나며 담배를 피웠을 사람들, 그리고 무심코 바닥에 던졌을 행동이 떠올랐다. 한 명, 한 명이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나 하나쯤이야.’ 그러는 사이 길은 담배꽁초 길이 되었다. 나도 모르게 줍고 싶은 마음이 되어 “다음엔 봉투랑 집게를 들고 나와서 주워 볼까?”하고 물었다. 아이가 경쾌하게 답했다. “좋아! 팔 다 나으면 엄마랑 아빠랑 다 같이 이거 줍자.”


슈퍼에서 저녁 찬거리와 각자 먹고 싶은 걸 하나씩 골라 샀다. 아이는 사탕을, 나는 초콜릿 아이스크림, 아이 아빠는 씨앗 호떡 맛 아이스크림을 골랐다. 딸기맛, 오렌지맛, 사과맛, 포도맛, 초콜릿 맛, 여러 가지 맛의 막대 사탕이 주르륵 꽂혀 있는 가판대 앞에서 두 개만 고르라는 엄마 말에 아이는 한참을 고심했다. 그런데 온갖 아이스크림이 들어 있는 냉동고 앞에서 하나를 골라야 하는 나도 아이와 똑같았다. 이걸 살까, 저걸 살까, 고민하느라 들었다 놓았다를 몇 번 했는지. 우리 셋은 이거야, 저거야, 서로 훈수를 두며 냉동고 앞에서 옥신각신 했다.


집에 돌아와 나란히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즐겨보는 TV 프로그램의 지난 방송을 ‘다시 보기’하면서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나누어 먹었다. 차갑지만 부드러운 아이스크림이 진한 초콜릿의 맛을 퍼뜨리며 입 안에서 녹아내렸다. 소파에 깊숙이 기대앉은 우리들 사이로 아이스크림 통이 분주히 오갔다. 몇 숟가락 먹던 아이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는 듯 외쳤다. “난 아이스크림 먹으면서 TV 보는 게 처음이잖아!” 아이의 입 주변으로는 초콜릿 아이스크림이 남긴 자국이 동그랗게 띠를 그리고 있었고.


열어놓은 창문 사이로 오가는 바람이 기분 좋게 살갗을 쓰다듬었다. 거실 절반이 환한 햇빛 속에 잠겼다. 봄꽃의 기별은 아직이지만 우리 집에는 매일 피어나는 꽃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