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자라는 엄마
감염병과 기후위기로 전 세계에 절망의 그림자가 드리웠던 지난 시간, 그래도 나는 아이 덕분에 많이 웃었다. 말문이 터지면서 급속도로 인식의 폭이 확장된 아이는 매일 새로운 것을 발견했고 그걸 내게 나누어 주었다. 온몸으로 삶의 신비와 기쁨을 표현했고, 매 순간을 놀이로 바꾸는 마법을 부렸다. 아이 덕분에 생활엔 활기가 피어났고, 작은 것에 감탄하며 일상의 소중함을 배웠다.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며 발견한 것을 기록하고 되새겨보는 사이 내 안에 숨어 있던 미숙한 아이를 만났고 더디게나마 다시 자라는 법을 익히기도 했다. 아이를 돌보는 사이 나를 돌아보게 되었고, 아이의 삶을 꿈꾸는 사이 내 삶도 꿈꾸게 되었다. 아이가 자라는 걸 온전히 지켜보면서 내게 닥친 혼돈의 시간도 이겨낼 수 있었다.
여러 사정과 출산이 맞물려 십여 년 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만난 아기는 모든 것을 잠시 내려 둘 만큼 감사한 존재였다. 한동안은 매일 달라지는 아기의 모습에 감탄하고 기뻐하느라 힘든 줄도 몰랐다. 하나의 생명은 존재만으로 충분하고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도움 없이는 먹고 놀고 자는 일이 불가능한 아기 곁에서 아기처럼 먹고 놀고 자면서 평온하고 따스하게 일 년을 보냈다.
어느새 아기는 걷고 있었고, 단어를 내뱉으며 자기주장을 내세웠다. 집안을 누비며 온갖 물건을 끄집어내 어지럽혔고, 말도 안 되는 고집을 부리며 울기도 했다. 나와 아기 사이 실랑이가 늘어갔고, 아이가 잠든 밤이면 피로와 자책으로 우울했다. 아이를 키우느라 나 자신을 잃어가는 것 같았다. 하고 싶은 일이 있었고 세상을 탐험하며 즐거움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아기와 집에 갇혀버린 느낌이었다. 아이는 금방 클 거라고 사람들은 위로했지만 그러는 사이 내 삶이 멈춰버릴 것 같아 두려웠다.
두려움은 용기로 바뀌었고 오랫동안 꿈만 꾸었던 작은 가게를 열게 되었다. 회사를 다니며 취미로 배웠던 베이킹을 퇴사하면서 전문학교에 등록해 기술을 닦아 놓은 터였다. 무언가를 만드는 동안 오롯이 몰입하는 기쁨과 내 손으로 만든 결과물이 주는 만족감, 작은 케이크가 건네는 다정한 위로를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다. 디저트를 파는 작은 가게를 열고 소규모로 베이킹 클래스를 운영했다.
베이킹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만나 쿠키와 케이크를 만들고, 그 안에 깃든 기쁨과 다정한 기운을 나눌 수 있어 즐거웠다. 하지만 가게 운영이라는 현실적 어려움은 별개의 것이었다. 아이가 어려 엄마의 손을 필요로 했기에 가게에 전력을 쏟을 수도 없었다. 경제적, 체력적으로 한계에 다다랐다고 느끼던 차에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인한 감염병이 유행했고 가게 계약 기간이 만료되면서 잠시 휴식기를 갖기로 결정했다.
한동안은 부정적인 생각으로 힘들었다. 아이를 키우느라 나를 잃었는데 어느새 마흔 중반이라는 나이가 코 앞에 있었다. 어렵게 시작한 가게마저 문을 닫았으니 실패했다는 생각과 아무것도 이룬 게 없다는 마음에 의기소침했다. 감염병의 유행으로 다음 계획을 실행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집에서 아이와 시간을 보냈다. 뒤돌아보니 가게 때문에 지난 2년 여 동안은 무언가에 쫓기듯 정신없이 살았던 것 같았다. 그러느라 세상이 변해가는 모습과 꽃처럼 피어나는 아이를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지만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은 안타까움을 남겼다. 그런 생각에 다다라서야 내게 주어진 여유에 감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아이가 매 순간 보여주는 어여쁜 모습에 감탄하며 아이를 따라 세상의 작은 구석을 탐험하는 일상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어린이집도 제대로 갈 수 없었던 지난 2년, 아이와 밀착되어 시간을 보냈다. 그 사이 아이의 몸과 마음은 폭풍처럼 자랐고, 작고 위태로운 아기에서 의젓한 어린이로 변모했다. 아이와 보내는 시간 속에서 건져낸 작지만 단단한 즐거움과 배움이 조약돌처럼 쌓였다. 그걸 잃고 싶지 않아 매일 기록한 글이 모였고, 어느덧 글 쓰는 일에 진심인 사람이 되어버렸다.
글을 쓰는 일은 자신을 돌아보는 일이고, 자신을 돌아보는 일은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를 나아가게 한다고 믿는다. 나를 돌아보려면 내가 서 있는 자리와 관계 맺는 사람들, 그리고 주변 세계를 살펴볼 수밖에 없는데 그러느라 내 품은 조금 넉넉해진 것도 같다. 그러니 아이의 몸집이 자라는 동안 내 마음도 분명 자랐을 테다.
아이의 성장을 기록한 글은 나의 부끄러운 성장기이기도 하다. 그 속에는 사는 게 막막할수록 우리가 기댈 수 있는 건 아주 작고 사소한 것이며, 그것이 일상을 지켜주는 힘이라는 걸 깨달아 가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어린이가 된 아이는 서서히 자기만의 세계를 키워 나가기 시작했다. 아이 곁에서 독서와 글쓰기의 문을 연 나 또한 나만의 세계로 나아갈 준비가 된 것 같다. 갓 구운 케이크에 따스한 위로를 담고자 했던 마음으로 글을 쓴다. 내 작은 글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다정한 기운을 전할 수 있길 바라면서. 고된 하루를 건널 수 있게 놓아주는 조약돌이라도 되길 기대하면서.
아직은 아이와 내가 완전히 분리될 수 없는 시기이긴 하지만, 우리가 맞닿은 부분에서 만들어진 힘으로 각자의 세계를 건강하게 키워가게 될 거라 믿는다. 누군가의 성장을 온전히 지켜보는 일은 알게 모르게 나를 키운다. 그러니 아이가 자라는 동안 엄마인 나도 계속 자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