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를 끌어안기
울음은 마음의 지우개
울음은 마음의 지우개다. 한바탕 울고 나면 슬픔의 무게는 덜어지고 깊이는 얕아진다. 울음은 마음에 내리는 비다. 구석구석 쌓인 먼지를 쓸어가는 빗물처럼 먼지 같은 감정이 울음을 타고 흘러간다. 울음 뒤에는 말간 기운이 스민다. 눈은 맑아지고 마음엔 여유가 생긴다. 잘 운다는 건 축복인지도 모른다.
답답한 마음을 끄적거리다 조금 울었다. 눈물을 흘리고 나니 선명하게 보이는 게 있었다. 며칠 마음을 조이고 있던 게 뭔지 알 것 같았다. 체한 것처럼 뭉쳐 있던 감정이 그제야 풀어지기 시작했다. 아직은 겪고 있는 중이지만 조금씩 흘려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슬픔이나 아픔, 괴로움이나 고통처럼, 마음을 복잡하게 하는 감정은 잘 떠나보내야 한다. 자연스럽게 풀어지는 감정도 있지만 단번에 털어낼 수 없고, 시간을 들여 보살펴야 하는 감정도 있다. 쉽게 보낼 수 있었는데 쌓아 두는 바람에 커져버리는 덩어리도 있을 것이다. 슬픔을 지우는 지우개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쓱쓱 지우면 마음이 말끔해질 수 있게.
우는 아이를 바라보다
며칠 전 잠자리에서 아이가 크게 울었다. 다리를 버둥거리며 꺽꺽 울어대는 통에 당혹스러웠다. 발단은 아주 작고 사소한 일이었다. 양치질을 하느냐 마느냐. 생각하면 실소가 나올 정도로. 하지만 아이에겐 그런 게 아니었나 보다. 속이 상한 제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몸부림치며 울었다. 흐느낌이 고조되면서 길게 이어졌다.
‘이제 그만’ 하고 달래야 하나, 그냥 울게 둬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윗집에서 시끄럽다 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도 스쳤다. 울음이 지나쳐 토할 것처럼 울컥거릴 땐 조마조마했다. 그러다 우는 아이를 보는 내 심경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지금 이 순간 아이가 얼마나 슬퍼하고 있는지에 집중하자 복잡하던 마음이 일순 말끔해졌다. 얼마나 속상하고 화가 나면 저토록 슬피 울까.
그땐 그러지 못했다. 아이가 더 어릴 때, 그런 식으로 자주 울었던 시절엔. 서너 살 즈음이려나. 아이가 울음에 빠져들어 토할 것처럼 떼를 쓰듯 울면 그걸 참고 바라봐 주는 게 힘들었다. 충분히 참고 있는데 더 참아 달라는 요구 같았다. 무언가를 더 해달라고 고집을 부리는 것 같았다. 때론 나를 비난하는 것처럼 들려 괴로웠다. 부끄럽지만 이제 그만하라고 다그치고 운다고 혼내기도 했다.
왜 그랬을까. 슬픔을 왜 슬픔으로 공감해주지 못했을까. 아이의 감정은 아이의 것인데 내 마음대로 바꾸려고 했을까. 그게 나의 문제고 잘못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이의 울음이 나에 대한 꾸지람처럼 들렸는지도 모르겠다. 아이의 잦은 울음이 미웠으니까. 한 발 떨어져 바라보면 아이의 울음에는 슬픔이나 속상함, 못마땅함이나 답답함이라는 아이 자신의 감정이 보일 뿐이다.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해소하고 이해하기 위해 울었고 지금도 운다. 그런 걸 내 입장에서 해석하려 했던 지난 날이, 마음 아프다.
해줄 수 있는 건 아이의 감정을 공감하고 감정을 추스를 수 있게 충분히 시간을 주는 것인데 당시엔 그게 어려웠다. 육아서에서 읽어 머리로는 알았지만 마음으로 안 건 아니었다. 아이가 큰 소리로 울기 시작하면 긴장했고, 마음이 옥죄어 왔다. 울음은 안 좋은 것, 빨리 그쳐야 하는 것, 피해야 하는 일이라는 편견에서 자유롭기 힘들었다.
속상하고 슬픈 걸 참으라는 다그침 만큼 아픈 말이 있을까. 우는 사람에게 울지 말라고 하는 건, 속상한데 속상해하지 말라고, 슬픈데 슬퍼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이 순간 떠오른 감정을 없는 것처럼 무시하라는 무서운 말. 하지만 감정은 참고 억눌러야만 하는 대상이 아닐 테다. 그러느라 마음의 병이 생기고 그 병이 몸을 가두어 버린 사람들을 보기도 한다. 아픈 감정은 잘 다독이고 즐거운 감정은 섬세하게 느끼며 표현할 때 삶은 더 풍성한 결을 지니게 될 것이다. 다채로운 감정을 자연스럽게 느끼고 표현할 수 있게 자신의 방식을 만드는 것도 배우고 연습해야 하는 일 같다.
온 마음을 다하느라
아픈 감정을 다독이느라 아이는 온 마음을 다해 울고 있었다. 온 마음에 온 몸이 반응하며 울음의 바다를 만들었다. 그렇게 울 수 있어 다행스러웠다. 투명하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것 같아서. 한 겹의 비밀 없이, 한 장의 거짓 없이 울 수 있는 아이가 아름다웠다. 아이의 마음을 씻어주는 빗물이 고마웠다. 그러니 엉엉 울으렴, 더 크게 마음껏 울으렴.
안쓰러웠지만 울음이 다하길 말없이 기다렸다. 아이의 감정에 내 감정을 뒤섞지 않았고 그것을 내 마음대로 해석하지 않았다. 한 발 떨어져 아이의 슬픔을 아이의 것으로 바라보았다. 아이는 지금 감정을 다루고 표현하는 법을 배우고 있는 중이라고, 스스로 자신의 슬픔과 마주하고 있는 것이라고. 그러니 울음으로 뒤엉킨 마음이 풀어진다면 그것만큼 고마운 일은 없다고.
아이는 울다 지쳐 잠이 들었다. 다음날, 그 어느 때보다 개구쟁이 웃음을 지으며 아이는 눈을 떴다. 커다란 슬픔을 지나온 아이가 애틋해 더 오래 안아주었다. 지난밤의 깊은 슬픔은 사라졌다. 울음이라는 빗물에 쓸려 먼바다로 떠났다. 아이는 말간 얼굴로 배시시 웃었다. 새롭게 하루를 시작할 ‘작은 의욕’이 거기 있었다.
“실컷 아프고 난 당신이 파리해진 새 얼굴과 막 태어난 ‘작은 의욕’을 가지고 창밖을 내다볼 때 산다는 것은 ‘의지를 갖고’ 산다는 것임을 깨닫는다. 아프다는 것은 이겨내야 할 것이 아니라 지혜롭게 겪다, 보내야 하는 것이다. 그다음 새로워지는 것은 선물 같은 일.”
_<소란> 박연준
잘 우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온 마음을 다해 울어 본 게 언제였더라. 언제부턴가 울음을 숨기게 되었다. 울음이 약한 것, 부끄러운 것처럼 여겨졌다. 울음을 보이면 약하다고, 여자라고 얕잡아 볼 것 같았다. 힘들수록 더 울음을 참고 아무렇지 않은 척, 강한 척했던 날이 많다. 슬픈데 슬퍼하지 못해서, 울음을 참느라 화를 내는 사람이 된 것 같다. 울음을 감추느라 딱딱해진 얼굴이 화난 사람처럼 보였다.
울음은 그런 것이 아닌데. 인간은 감정 없이 어려움을 쓱쓱 이겨내는 기계가 아닌데. 울음은 인간이 인간임을, 감정을 지니고 세상과 교감하는 연약 하면서도 아름다운 존재임을 알려준다. 사람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은 무엇보다 뜨겁고, 아픈 이의 곁에서 함께 울어주는 사람은 귀하다. 사람들이 눈물을 많이 흘릴수록 세상은 부드럽고 따뜻해질 것 같다. 뜨거운 울음 뒤 말개진 마음엔 선물처럼 ‘작은 의욕’이 솟을 것이다. 그 힘으로 우리는 삶을 헤쳐나갈 테고.
아프다는 것은 이겨내야 할 것이 아니라 지혜롭게 겪다, 보내야 하는 것이라고 박연준 시인은 말했다. 더디게 그걸 배워간다. 아픔과 슬픔은 감추거나 지워야 할 것이 아니라 잘 보듬어 보내주는 것이라고. 그러니 서둘러 슬픔을 떨쳐내지 않아도 괜찮다. 울음이 길어져도 괜찮다. 온 마음을 다해 울어야 그 다음도 오는 거니까.
아픈 이에게 이겨내라고 재촉하지 말아야겠다. 충분히 앓고 때가 되면 잘 보내주길 바라며 기다리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다만 많이 아프지 않길 기도하면서.
나도 당신도, 잘 울면 좋겠다. 아이가 앞으로도 오래, 소리 내어 울면 좋겠다. 그러다 언젠가, 울음 뒤에 선물이 있다는 것도 발견하게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