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헤 웃던 한국인, 낮은 톤으로 Bonjour 배우다
이젠 번역기조차 돌리기 싫고,
말을 못 해서, 알아듣지 못해서 웃는 것도 싫다.
어느 날, 제니가 말했다.
“엄마, 여긴 말하는 톤이 낮아. 엄마도 좀 낮게 이야기해 봐. 하이톤으로 안 해도 돼.”
그 말이 꽂혔다.
그날, 제니 친구들에게 “Bonjour! Ça va?” 하고 활짝 인사했었다.
한국식 ‘사회적 미소’가 몸에 밴 나는
모르는 사람일수록 목소리 톤이 높아지는 부작용이 있다.
그런데 프랑스에서는, 그 상냥함이 오히려 부자연스럽고 낯선 친절이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이제는 어버버 하지 말자.
“Un croissant, deux baguette, s’il vous plaît~” 대신,
(크롸상 하나, 바게트 두 개 부탁드려요)
“Je voudrais…”로 완성형 문장 말하기.
그리고, 쓸데없이 “헤헤헤” 웃지 않기.
오늘 아침, 한국 운전면허증을 프랑스 면허증으로 교환하려고 우체국에 갔다.
“Bonjour, madame. Je ne parle pas français, désolée!”
(안녕하세요, 전 프랑스어를 못 해요. 죄송해요!)
낮은 톤으로, 최대한 자연스럽게 말했다.
그리고 번역기 화면을 보여주며,
“봉투를 사서 등기로 보내려 합니다.”
그다음부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Comme ça? Ici? Là?” — “이거요? 여기요?”
서툰 프랑스어였지만 다 알아들었다.
마지막엔 당당하게,
“Bonne journée! Merci! Au revoir, madame!”
(좋은 하루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다시 만나요.)
며칠째 비만 내리더니, 그날은 유난히 햇살이 따뜻했다.
스타벅스 앞을 지나며 생각했다.
“커피 한 잔, 테라스에서 할까?”
하지만 곧 스스로 답했다.
“Non. 집에 가서 커피 내리고, 프랑스어 공부하자.”
테라스에서 사람 구경 대신, 나 자신을 구경하자고.
집에 도착해 캡슐커피 한 잔.
프랑스어 책을 펼쳐 듣고, 말하고, 읽고,
문법은 내 방식대로 정리했다.
졸리면 듀오링고를 켜서 게임처럼 공부.
아이들 등교 → 1시간 6km 러닝 → 식사 → 프랑스어 2~3시간 → 아이들 하교.
이 루틴으로 20일쯤 지났다.
공부할수록 불안도, 마음의 비틀림도 줄었다.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았던 나’와의 화해 같았다.
학교에서 메일이 왔다.
“테스트를 보러 오전·오후 두 번 오세요.”
메일로 받은 간이 테스트만 1시간이었는데,
그보다 어려운 게 또 있다고?
나는 그저 제일 기초반 가면 되는데, 생각했다.
오전 시험만 80문제. 듣기, 읽기, 문법.
그래도 20일 공부 덕분에 시험지와 싸울 수는 있었다.
시험 후 시내에서 혼밥 하고,
곧 금방 추워질 테니 털실내화 하나 사서 다시 오후 시험 보러 갔다.
결과: 오전은 A2.
(프랑스어는 A1→A2→B1→B2→C1로 올라간다.)
오후 시험은 상황 묘사형이었는데,
나는 문법 위주로 공부했으니… 말할 것도 없었다.
강의실엔 “다다다닥” 글씨 쓰는 소리만 가득.
나는 인사말 쓰고, 안부 쓰고, 결국
C’est trop difficile pour moi, je ne sais pas.
“이건 나한테 너무 어려워요. 모르겠어요.”
두 번째 시험 보기 전
사소한 이야기까지 나누는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는 게 없는데, 시험을 두 번이나 보래.”
언니는 호탕하게 말했다.
“그럼 없는 실력을 단단히 보여줘라!”
난 없는 실력을 그대로 보여줬다.
다행이었다. ‘지금의 나’를 정확히 보여줬으니까.
며칠 뒤, 시간표가 정해졌다.
드디어 첫 등교.
대학교 홀엔 생기 넘치는 학생들.
미국, 중국, 일본, 베트남, 한국, 대만, 인도, 마다가스카르…
다른 나라에서 왔지만, 모두 같은 이유로 모였다.
프랑스어를 배우기 위해.
그 사실이, 이상하게 뭉클했다.
드디어 나도, ‘제대로’ 배울 수 있다는 것.
같은 반은 아니지만 우연히 만난 한국 친구들과 인사하고, 이야기 나누고,
오전 수업만 듣고 집으로 돌아왔다.
재택근무 중인 남편을 꼭 껴안았다.
외벌이인데, 이 도시에서 가장 비싼 어학코스를 등록해 줬다.
그래서 이제, 걱정보다 설렘이 많은 내일이 기다려지는 ‘학생’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