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프랑스는 나를 시험하고, 나는 단단해진다
해야 할 과제는 많지만… 글도 쓰고 싶은 금요일 밤.
배우자오빠가 출장 간 지 3주째. 앞으로 3주만 더 지나면 만날 수 있다.
그가 있어도 내 하루가 크게 달라지진 않는다. 결국 내가 감당해야 할 일들이다.
차는 부품 교체 때문에 맡겨야 했고, 나는 최소 1~2시간을 발로 뛰어다녀야 했다.
아침마다 아이들과 Bolt로 택시를 잡는 것도 20~30분씩 길에서 기다려야 한다.
한국처럼 “나가면 택시 있고”, “앱 누르면 금방 오고”, “대중교통 알림이 정확한 곳”에서 살다가…
여긴 AI가 지배하는 시대 끝자락에 홀로 아날로그 섬에 떨어진 사람 같은 기분이다.
대중교통 알림은 부정확하고,
시스템이라는 건 왜 이렇게 느슨하게 만들까?
아예 시스템이 있긴 한 걸까?
이런 질문을 하루에 몇 번씩 되뇌게 된다.
렌터카 신청도 그랬다.
두 번이나 오토로 해달라고 확인했는데, 차 받기까지 5일이 걸렸고,
막상 나와 있는 건 역시나 ‘수동’.
내 차가 언제까지 고쳐지는지조차 안내 한마디 없다.
“아… 이게 프랑스지.” 하고 스스로를 달랜다.
그래도 다행인 건, 딸 친구 프랑스 엄마들이
“아직도 차 안 나왔어? 너무 힘들겠다. 도움이 필요하면 말해.”
이렇게 따뜻한 말을 건네준다는 것.
그런 마음 덕분에 한숨 돌린다.
아빠가 출장 중일 땐, 제니가 내 생활과 마음의 빈자리까지 채워준다.
프랑스에서 알게 된 사람들은 제니를 보고
“어른스럽다”, “성숙하다”, “속이 깊다”, “10살 같지 않다”라고 종종 말한다.
안쓰럽게 보거나 어른스러운 면은 혹시 스트레스받은 건 아닐지 걱정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제니와 나는 조금 특별하다.
제니를 임신했을 때 아빠는 공부하느라 태교에 함께할 여유가 없었고,
6개월쯤 되었을 땐 시험에 떨어져 아빠는 진로를 고민해야 했다.
2살 무렵부터는 수도권으로 직장을 가게 되어 주말만 볼 수 있었다.
그러다 제니가 7살이 되던 해,
“왜 우리 아빠는 같이 안 살아? 같이 살고 싶어.”
그 말에 나는 15년 다닌 회사를 과감히 그만두고 우리가 함께하는 생활을 선택했다.
그래서 제니는 나와 함께한 시간이 아주 많다.
내가 쿠쿠마담이라면, 제니는 ‘쿠쿠미니’쯤 되는 존재다.
내 작은 버전이면서도 때로는 나보다 더 단단하고 더 따뜻한 아이.
제니가 “난 왜 이렇게 못해?”, “난 잘 모르겠어.”라고 말하면
나는 “괜찮아. 해보지 않아서 모르는 거야. 연습하면 잘하게 돼.”라고 말해왔다.
그리고 힘이 없어 보이는 날엔
“엄마 사랑의 에너지를 듬뿍 받아라.”하며 힘껏 안아주곤 했다.
여느 엄마들처럼, 아이 마음을 공감하려는 마음으로.
그래서인지 제니는
낯선 프랑스 시골길에서 운전에 긴장하는 나에게
“엄마 잘하고 있어. 우린 무사히 잘 갈 수 있어. 엄마 운전 잘해.”
하고 뒤에서 끊임없이 응원해 준다.
얼마 전 내가 아파 누웠을 땐
아빠에게 보고 배운 대로,
이불을 목 끝까지 덮어주고 따뜻한 물을 가져다주었다.
동생도 자기가 보겠다며 쉬라고 했다.
지친 어느 날엔 작은 메모까지 건넸다.
“엄마, 내가 더 말 잘 들을게. 미안해.”
제니는 내가 힘들어 보이면 종종 “엄마 미안해…”라고 말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말한다.
“제니야, 네가 미안할 건 없어. 이건 엄마가 힘든 거야.
만약 엄마에게 힘이 되고 싶다면 ‘미안해’보다
‘엄마 고마워. 힘내.’라고 말해주면 더 힘이 돼.”
엄마가 보는 제니는 어떤 역할을 해야는 지 알고, 해내는 아이일 뿐이다.
부모와 자식 사이도 당연한 건 없다. 존중하고 이해하고 배려해야 하는 관계다.
아이들도 생각하고 자기 마음을 달래며 쓰는 방법을 스스로 배워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제니는 그 과정을 제 속도로 잘 성장하고 있다 생각한다.
아마 내 성장 배경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이혼 가정에서, 일이 바쁘거나 멀리서 일하느라 부재중이었던 엄마와 언니들과 함께 자랐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엄마가 누군가를 위해 정성껏 밥상을 차리는 날은
나도 아주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었다.
비록 나를 위해 차린 밥상은 아니더라도 말이다.
엄마가 해준 부추 계란말이,
쪽파를 데쳐 고춧가루 조금 넣고 들기름에 무친 나물…
아직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이제와 생각하면,
‘밥을 한다는 건 정말 큰 사랑이구나.’
그걸 어릴 때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지금 내가 아이들에게 가장 애쓰는 건
정성껏 차린 따뜻한 밥상이다.
내가 느꼈던 사랑을 그대로 전하고 싶어서.
가난하고 불안정했던 어린 시절이 나를 단단하게 만든 것처럼
우리 아이들도 현실 속에서 힘을 잃지 않고,
배우자오빠처럼 자신이 원하는 꿈을 이루며 살아가길 바란다.
남은 3주, 나는 나를 돌아보고, 아이들에게 온전히 집중하며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