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체 크리스마스

산타 논쟁과 가족의 힘

by 쿠쿠마담


남편이 6주간 출장 떠난 날부터 벌어진 일들

다시는 오지 않을 것만 같던 그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우리 가족이 다시 **‘완전체’**가 됐다.

나는 그저 무탈하기만을 바랐는데,
생각보다 많은 일들이 이어졌다.


남편이 떠나자마자 자동차에 엔진경고등이 들어왔다.
몇 주 동안 수리에 맡겨야 해서 그 불편함에 한 번 울었고,
일주일 뒤엔 내가 아프기 시작했다.

감기처럼 시작된 통증은 점점 늑골까지 번져,
기침을 할 때마다 눈물이 찔끔 날 정도였다.
결국 4주 차에 병원에 갔다.

하필 그날, 후니도 복통과 열이 나서 함께 진료를 봤다.
마스크를 끼고 배를 부여잡으며 학교를 다니던 그 시기엔
테스트도 계속 이어졌다.

“왜 하필 지금…?” 싶었지만
그냥 경주마처럼 달릴 수밖에 없었다.


5주 차엔 후니네 반에 공지글이 올라왔다.

“친구가 수두에 걸렸어요.”

그리고 그날 저녁부터 후니 얼굴과 몸에 발진이 올라왔다.
다음 날 급하게 주치의에게 예약해 진료를 봤는데
다행히 수두는 아니라고 했다.
아마 며칠 전 고열 때문에 나타난 열꽃이었던 것 같다.

나는 번역기를 켜서 병명을 적어 달라고 부탁했지만
선생님은 계속 이렇게 말했다.

“C’est pas grave.”
괜찮아요. 문제없어요. 학교 갈 수 있어요.

정작 진단서엔 ‘하루 휴식’이라고 적혀 있었다.
전염성이 있다고 판단해, 제니와 후니는
수두가 아닌 채 하루를 쉬게 됐다.

그래서 우리는 쇼핑몰에서 외식하고 쇼핑하고, 실컷 놀았다.
잠시도 쉴 수 없는 경주마의 하루가 계속되었다.


보조석 백미러, 또 날아가다

남편을 역에서 맞이하러 가기 몇 시간 전,
지인 집에 놀러 갔다가 또 일이 생겼다.

내 차 보조석 백미러가 다시 날아간 것이다.

이쯤 되면 진짜 이런 생각이 든다.

“만나는 날까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그 동네는 넓고 한적한 주택 단지라
부딪히고 싶어도 부딪히기 힘든 곳이었는데
그래서 더 황당했다.

‘이것도 최소 한 달은 걸리겠지…’
예상이 되니 화도 났지만
이미 에너지는 바닥이었고,
그래도 남편이 돌아오는 날이니까
그냥 무덤덤하게 넘기기로 했다.


그리고 남편이 도착하던 날부터
2주간의 크리스마스 휴가가 시작됐다.

‘이제 쉰다!’라고 외쳤지만
아이들이 방학이기에 —
나는 여전히 세 끼를 차리는 사람이었다.

남편은 시차 적응 때문에 밤낮이 완전히 뒤바뀌어
내가 잘 때 깨 있고, 내가 깰 때 잠드는 생활을 했다.

그래도 옆방에 있다는 것만으로
이상하게 큰 위로가 됐다.


극한의 관람차 — 두 바퀴의 공포

크리스마스 주간이라
동네는 반짝였고 사람들은 설레 보였다.

우리는 약속대로 크리스마스 마켓 관람차를 타러 갔다.

그런데 하필 그날,
갑자기 추워지고 바람이 거세졌다.

지붕 없는 관람차가 삐걱거리며 올라가는데
이건 즐거움이라기보다 거의 극기훈련에 가까웠다.

만 3세 후니가 놀랄까 봐
우리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와… 재밌다…”

꼭대기에서 잠깐 멈춰주는 건
아마 야경을 보라는 배려였겠지만 우리는 숨을 멈추고 버텼다.
마치 소리 없는 아우성처럼.


그리고 알게 된 충격적 사실.

이건 두 바퀴 코스였다.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비싸니까 두 바퀴 타서 덜 아깝네.”

그날, 제니와 나는 굳게 결심했다.

다시는 안 탄다.


크리스마스는 빨간 맛 — 닭볶음탕

24일의 마켓은 문 닫은 곳이 많았다.
한국 명절처럼 온 가족이 모여 늦게까지 이야기하는 분위기였지만
우리는 조금 외롭고, 쓸쓸했다.

이사도 앞두고 있었고 아이들이 원했지만 트리도 없었다.
집은 조용했고, 적막했다.

그래서 떠올랐다.
빨간 음식.

나는 닭볶음탕을 끓였다.
크리스마스니까 더 정성을 들였다. 국물이 잘 배도록 자박자박하게.

제니는 이렇게 말했다.

“크리스마스에 닭볶음탕이라니…”

그러면서 닭다리를 베어 물고

양념에 푹 찍은 감자를 으깨 먹으며 눈이 반짝였다.


아이러니하게도 —
한식을 사랑하면서
낭만적인 양식을 꿈꾸는 모녀.

남편은 말할 것도 없다.
한식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한다.


10살 산타 논쟁 — 현실과 동심 사이

올해 제니는 산타에게 이렇게 썼다.

“갤럭시 최신폰을 받고 싶어요. 그리고… 예뻐지고 싶어요.”

귀엽고, 또 묘한 소원이었다.
만약 정말 산타가 있다면
조금 거창한 부탁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산타를 기대하며 잠들었는데
다음 날 아침,
아빠 방에 있던 포장지와 같은 선물을 보고는
아빠 방을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하며
자는 척 누워 있는 아빠를 바라봤다고 한다.

그리고 나에게 물었다.

“엄마, 몇 살 때까지 산타야? 언제부터 아빠, 엄마가 준 선물이야?”

나는 잠깐 고민하다 이렇게 말했다.

“이제 네가 만 10살이니까…
올해부턴 산타가 안 왔을 거야. 그래서 우리가 준비했어.”

제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꽤 그럴듯하게 믿는 눈치였다.

그런데 이어서 묻는다.

“그럼 후니 선물은 왜 아빠가 준비했어?
산타는 왜 후니 거 안 갖다 놨어?”

너무 진지한 눈빛이라
이렇게 답했다.

“아… 우리가 이사 와서 잘 몰랐나 봐.
그리고 네가 후니 대신 산타에게 편지를 써줘야지~”

그랬더니 또, 정말로 믿는 눈치였다.
내년엔 후니 대신 산타 편지를 써 주겠다고 했다.

이번에도 동심을 지켜주고 싶었지만
또래 친구들에게 놀림받지 않도록
살짝 현실을 섞어 포장해 준 셈이다.

10살과 산타 사이에서 균형 맞추기,
생각보다 꽤 섬세한 일이다.


프랑스어, 그리고 ‘완전체’의 힘

프랑스 생활 10개월째.
여기서 크리스마스는 가장 큰 명절처럼 느껴진다.

나와 제니는 프랑스어가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다.

만 3세 후니는

oui(응), non(아니), moi(내가), trois ans(3살)

이 네 단어를 완벽하게 구사한다.
특히 부정할 때는 꼭 non을 붙인다.

“코 잘래?”
“Non! 코 자… Non!!!”

잠자기 싫다고 하면
나는 “잠자기 싫어요, 잠 안 잘래요”라고
다시 말해 보라고 알려준다.

그러면 후니는 어렵지만 어미만 따라 한다.

“기 싫어요… 앙 잘래요…”

이 과정을 보며 느낀다.
말은 서툴지만
아이의 이중언어 감각이 차곡차곡 자라고 있다는 걸.

그리고 안 되는 행동을 하면서
반짝이는 눈으로 윙크를 하며 “안돼에에?”라고 말할 땐

눈치까지 같이 자라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아직 듣기가 어렵지만
그래도 계속 노력 중이다.

수업 방식도 잘 맞고 체계적으로 배우다 보니
이젠 프랑스어가 어렵기만 한 게 아니라 재미있고, 궁금해진다.


남편은 영어 공부를 더 하고 있어서
프랑스어는 잠시 뒤로 밀려 있다.
그래서인지 나는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나는 아이들을 잘 케어하며 혼자서도 생활할 수 있지만,

타국에서 —
가족이 함께 있다는 것만큼 큰 힘은 없다는 걸.

행정 처리는 여전히 끝이 없고
크리스마스 휴가가 겹치면 담당자는 사라진다.

그래도 이제는 이렇게 생각한다.

C’est la France.”

그러면 불평과 불만도 조금은 누그러진다.


왜냐하면—

이제 우리는 다시 **‘완전체’**니까.

뭐라도, 다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