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어보다 생활력
2025년 8월 11일, 월요일
7월 21일부터 8월 10일까지, 한국에서 온 작은언니네 3남매 가족과 여름휴가를 보냈다.
몽블랑에서 눈을 밟으며 겨울을, 안시에서 눈부신 봄을, 그리고 집에 돌아와… 뜨거운 여름을 맞았다.
오늘 기온 36도.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한다.
어제까지 북적북적했던 우리 집.
배우자 오빠는 출근, 작은언니네 가족은 홀연히 떠나고, 남은 건 나와 아이들.
허전하고 공허하고, 살짝 슬펐지만… 하고 싶은 거 하며 다시 일상을 회복하기로 했다.
내 생활 패턴은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이들 등하교시키고, 운동하고, 장 보고, 요리해서 아침·저녁 차리고.
그리고 교양과목처럼 독서를 하고, 아이들 학교·어린이집에서 마주치는 프랑스인 덕분에 혼자서 프랑스어 공부도 한다.
한국에서 1:1 선생님과 하던 공부 보단 효과적이진 못 하다.
예전에 TV에서 LA 한인타운 교민이 영어를 못한다는 걸 보고 “아니, 영어 환경에서 어떻게 안 하고 살지?” 했었는데…
여기서 3~4개월 살아보니 알겠다.
번역기도 있고, 조금 답답하긴 해도 일상에 큰 불편은 없다. 그때 그 TV 속 교민이 왜 그랬는지, 조금 이해가 간다. 물론 여긴 LA 한인타운이 아니다. 한국 사람 손에 꼽히는 프랑스 소도시다.
이방인으로 오래 살아가려면 언어는 기본, 그리고 이 나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한다.
곧 온전히 내 시간이 생기면 학교에 가서 배울 거다.
하루하루 지내다 보니 벌써 6개월.
프랑스어는 늘지 않고, 생활 문장 몇 개로 그럭저럭 버티는 중이다.
나는 생활력이 있는 편이라, 맞벌이 아니면 살 수 없다고 생각했다.
15년 재직했던 회사를 퇴사한 지 4년.
임신하고 둘째 낳기 전까지는 프리랜서로 재택근무를 했고, 출산 후부턴 3년째 전업주부.
온전히 전업주부, 육아만 해본 적 없었던 나에게, 이 시간도 또한 소중하고 보람되었다.
둘째가 만 2살, 어린이집에 다니니 시간여유가 생긴다.
물론 지금은 프랑스어 공부에 매진해야 한다는 걸 안다.
하지만… 안 되는 공부를 계속 붙잡는 것도 못 하겠다. 아니, 계속 붙잡지 못하니까 안 되는 걸 수도.
그래서 집에서만 보내는 시간이 때로는 생산적이지 않고, 좀 낭비처럼 느껴진다.
여긴 한국도 아니고… 프랑스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배우자 오빠 혼자 벌어서 저축을 얼마나 할 수 있을까?
나도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다.
한 달 전쯤, 배우자 오빠는 체류증을 수령하며 내 체류증에 대해 말했다.
“이거, 일할 수 있는 체류증이야. 한국어 강사, 한인회… 어때?”
나는 한식당을 더 선호한다고 했다.
그랬더니 배우자 오빠, 내 손에 심한 피부 습진, 건선을 보고 피식 웃었다.
“고생하는 건 하지 마.”
‘그래도 뭔가 해보면 좋겠네’라는 묘한 기대로 들렸다. 속으로 ’아니, 나 아직 프랑스어 알파벳도 다 못 외웠는데, 벌써 생산성을 바라다니…’ 하고 살짝 서운했다.
물론 그 서운함은 금방 사라졌지만, 그 순간만큼은 약간의 압박처럼 느껴졌다.
그 후로도 ‘난 뭘 하지?’라는 질문이 계속 머리를 맴돌았다.
한국에 있었어도 둘째가 크면 같은 고민을 했을 거다.
그러던 어느 날, 배우자 오빠가 물었다.
“우리 도시에 유학생들 홈스테이 하숙 운영해 보면 어때?”
그 순간, 내 머릿속에 햇살이 내리쬐는 천창과 포근한 이불, 빵과 커피 향이 스쳐갔다.
듣고 보니, 괜찮았다.
우리는 내년에 집을 구해 이사해야 한다.
프랑스는 이사를 잘 안 하는 문화라, 오래 살 집을 구입할 계획이었다.
그래서 주변 유학생 관련된 현황을 알아보고, 행정 문제를 확인하고, 여기 사는 분께 조언도 들었다.
결론은 방이 많은 집을 찾아보기로.
한국에서도 나는 가이드, 홈스테이 같은 걸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이번 제안이 자연스럽게 마음에 들어왔다.
그리고 조금은 외로운 우리 가족에게,
멀리서 온 외로운 유학생들이 찾아와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계절을 채워가는 모습을 상상하니 마음이 따뜻해졌다.
우리는 오래전 품었던 생각이, 이곳에서 뿌리내리길 바란다.
나는 서툰 프랑스어를 쓰고, 계획은 완벽하지 않지만…
새로운 집, 새로운 일, 새로운 계절이 다가온다.
살다 보니,
준비가 완벽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게 아니라,
일단 문을 열어 놓는 것.
그리고 들어오는 바람을,
조금씩, 천천히 맞이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