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프랑스인이 아니에요

…그래서 어쩌라고?

by 쿠쿠마담

프랑스에 온 지도 어느새 180일.
“프랑스어 공부는 언제 하지?” 걱정은 되지만, 현실적으로 아이들 방학이 끝나야 시간이 난다.
그 사이 나는 나만의 생존 언어를 터득했다.

마트나 장에서는 몇 개의 단어, 문장과 바디랭귀지로,
시청이나 학교 같은 중요한 기관에서는 나만의 주문을 외운다.

“봉쥬흐, 데졸레, 쥬 느 빠흘레 빠 프랑세. 익스큐즈 모아.”
안녕하세요. 미안해요. 나는 프랑스어를 못 해요. 실례합니다.

그리고 번역기를 꺼내면 담당자들은 미소 지으며 대답해 준다.
‘오, 나 꽤 자연스러웠어.’

삶에 큰 불편은 없었다.


사건은 얼마 전, 딸 친구가 집에 놀러 오면서 시작됐다.
한국인 부모에게서 태어났지만, 프랑스에서 자라 프랑스어가 모국어처럼 자연스러운 에이미.

나는 프랑스어 잘하는 사람을 만나면 늘 단어와 문장을 소리 내어 달라고 부탁한다.
흉내조차 어려운 발음도 있지만, 듣다 보면 조금씩 귀가 열린다.

그날은 에이미에게 이렇게 물었다.
“이거 좀 해줄래? ‘저는 프랑스어 못 해요.’”
그러자 에이미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아? Je ne suis pas français. (저는 프랑스인이 아니에요.)”

순간, ‘아, 이렇게도 말할 수 있는 건가? 구어체인가 보다’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 역시 원어민은 다르구나.”

배우자 오빠와 나는 에이미와 마주 앉아 열 번쯤 따라 외웠다.

글 속에서는 남편을 어떻게 부를까 고민하다, ‘배우자 오빠’라고 쓰기로 했다.

서로 배우며 살아가는 동반자라는 의미를 담고 싶었다.


그 뒤로 어디를 가든 당당하게 말했다.
“쥬 느 쒸이 빠 프랑세! (저는 프랑스인이 아니에요!)”
번역기까지 내밀며 “데졸레”를 곁들이면 분위기도 자연스레 넘어가는 듯했다.

문제는 배우자 오빠와 함께일 때였다.
나는 또다시 “쥬 느 쒸이 빠 프랑세…” 하고 번역기를 꺼내려는 찰나,
그는 영어로 대화를 시도했다.

담당자의 표정은 분명했다.
‘이 사람들, 대체 뭐지…?’
얼어붙은 눈빛이 지금도 선명하다.

나는 배우자 오빠에게 급히 손짓했다.
“영어 하지 마. 담당자 표정 봐. 프랑스 사람들, 영어 싫어해.”

물론 사람마다 생각은 다르겠지만,

내가 그동안 보고 듣고 느낀 바로는,

프랑스인들에게 프랑스어는 단순한 언어가 아니라,

문화의 상징이고, 자부심이자, ‘세계와 소통하는 공통어’ 같은 것이다.
그러니 누군가 영어로 말을 걸면,
‘왜 우리말을 두고 굳이?’라는 표정이 먼저 나오는 것도 이해된다.

아마 그들에게 우리가 내뱉은 말은 이렇게 들렸을 것이다.
마치 외국인이 한국에 와서 한국어 대신 중국어나 일본어로 인사하는 것처럼,

그런데 우리는 영어보다 더 황당하고 엉성한 프랑스어를 들이밀고 있었다는 점이다.


며칠 뒤, 에이미네 집에서 진실이 드러났다.
배우자 오빠가 에이미에게 배웠다고, 당당하게 외쳤다.
“쥬 느 쒸이 빠 프랑세!”

그러자 에이미 엄마가 웃으며 말했다.
“맞아요, 제니 아빠는 프랑스인이 아니죠.”

띵—!!!! 아뿔싸.

우리는 그동안 “프랑스어 못 해요” 대신
“저 프랑스인 아니에요”를 외치며 번역기를 들이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프랑스 사람들이 얼마나 황당했을까.
‘프랑스인 아니면, 그래서 어쩌라고?’ 하는 표정이었을 테지.

에이미 엄마에게 우리 사정을 설명하니, 오히려 당황하며 미안해하셨다

그렇다, 알고 있는 것도 이렇게 실수를 할 수 있다니.....

배우자 오빠는 나에게 우리 집 프랑스어 통역사라 하는 데,

스스로가 조금 웃기면서도 실망스러웠다.

아마도 에이미는 내 한국어를 다 듣지 않고,

그저 ‘프랑스인이 아니다’라는 말로 알려준 것이었다.

그날 이후 우리는 다시 기본으로 돌아갔다.
“쥬. 느. 빠흘레. 빠. 프랑세! 저는 프랑스어를 못 해요.”

계속 프랑스어의 필요성을 알고는 있었지만, 이번 사건으로 다시 깨달았다.
‘생존’을 위한 문장이 아니라, ‘삶’을 위한 언어를 배우기로 했다.
프랑스어 공부를 시작할 때다.


다음 편 예고

도로 위에서 프랑스 경찰관과 아찔한 첫 만남_!

아직은 낯설고, 작은 일 하나에도 웃음과 당황이 교차한다.
언어 장벽에 부딪히고, 문화 차이를 맞닥뜨리고, 때로는 경찰까지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