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벽과 마음의 벽
2025년 9월 4일 목요일, 밤 11시 33분.
하루 일과를 끝내고 비로소 나를 위한 시간이 찾아왔다.
잠자러 복층 위로 올라가다 다시 내려와 노트북을 켜고, 오래된 아이폰으로 플레이리스트를 틀었다.
그대는 밤하늘에 놓인 작은 별 같아요. [카더가든 - 가까운 듯 먼 그대여 中]
오늘 저녁, 결국 가족들 앞에서 참아왔던 감정과 눈물을 보였다.
“나,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들어줄 수 있어?”
바쁜 남편을 붙잡고 그렇게 대화를 시작했다.
그 대화를 꺼내기 전, 내 마음속에는 이미 며칠간 쌓여 있던 일들이 있었다.
오전에는 아이들을 등교시킨 뒤, 도움을 주는 언니와 함께 대학교 어학코스를 알아보러 갔다.
입학 상담에서 묻고 싶었던 건 단 두 가지.
수요일에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는데, 그날 없이도 수업이 가능한지
수업 시작과 종료 시간이 어떻게 되는지
상담자는 “최대한 맞춰보자”며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10월 개강 전 레벨 테스트를 하고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다.
상담을 마친 뒤 언니와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아이들 케어도 중요하지만, 언어를 우선순위로 두는 게 좋아요.
10년 후에 왜 그랬는지 알게 될 거예요.”
언니의 말은 단호했지만 따뜻했다. 그리고 조심스레 덧붙였다.
“홈스테이를 바로 시작하는 건 좀 무리 아닐까?”
아이들 돌보고, 살림하고, 학교 보내는 것도 바쁘지 않아요? 거기에 유학생까지…
그 말은 현실적이었고, 나는 쉽게 흘려들을 수 없었다.
며칠 전, 아이들 개학 첫날.
첫째 제니는 아침엔 설레는 얼굴로 등교했지만, 저녁엔 울적해 보였다.
“제니야, 왜 그래?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어?”
잠시 망설이던 제니는 내 스무고개 같은 질문에 하나씩 말문을 열었다.
하루 종일 프랑스어를 듣는데 이해가 안 돼서
친한 친구에게 자꾸 “이거 뭐야?” 하고 물었는데, 친구만 곤란하게 만든 것 같아 미안했고
앞으로도 계속 못 알아들을까 봐 걱정되고
외국인 학생 담당 선생님은 새로 온 학생들 챙기느라 바쁘다고
그 얘기를 듣는데 내 가슴이 저릿했다.
알림장조차 우리는 해석하지 못해 챗지피티에 의지했고, 숙제조차 도와주지 못하는 나도 서글펐다.
언어의 벽 앞에서 아이도, 나도 똑같이 서 있었다.
말이 막히니 웃는 것밖에 할 수 없는 날들.
요즘 자꾸 떠오르는 문장.
바쁜데, 안 바빠.
손 갈 데는 많은데, 성과는 없다.
좋은데, 싫다.
프랑스에 온 건 분명 잘한 거 같은데, 그 나머진 다 싫어졌다.
‘프랑스니까’ 하며 이해하려 했지만, 작은 불편들까지도 해결되지 않고 계속 쌓여 어느새 피로가 되었다.
인사조차 귀찮다가, 마트에서 캡슐 커피를 꺼내다 도움을 준 낯선 이에게는 또 고마움을 느끼는…
마치 작은 파동에도 금방 요동치는 마음.
조금만 건드려도 흔들리고, 작은 소리에도 크게 흔들리는,
위태로운 균형 같았다.
다시 대화로 돌아가서, 내가 어학코스 이야기를 꺼내자 남편은 조심스레 물었다.
“수업시간도 길고 숙제도 많을 텐데, 할 수 있겠어? 아이들 케어는 괜찮을까?”
그 말에 마음이 무너졌다.
“나라고 아이들 생각을 안 했겠어?
그럼 못 하지. 나 혼자서 어떻게 다 해. 언어도 못 하고, 아이들 돌보기도 벅찬데…”
그리고는,
“언제까지 못 하는 프랑스어로 배시시 웃어가며 살지, 간판조차 못 읽는 나 자신이 바보스러워.”
결국 나는 눈물을 흘렸다.
남편은 당황하며 대화를 이어가려 했지만, 이미 상처 난 내 마음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그때 제니가 다가와 “오해를 풀자”고 제안했다.
아이들 앞이라, 애써 대화를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내 말은 단순했다.
남편이 영어공부를 위해 저녁 시간을 투자할 때, 자격증 공부를 위해 주말을 보낼 때,
나는 “그래야지, 해야지!” 하며 응원만 했었다는 것.
“아이들은? 다 감당할 수 있겠어?”라는 질문은 하지 않았다는 것.
그런 응원들 덕분에 남편은 자기 계발을 놓지 않았고, 결국 이렇게 프랑스까지 올 수 있었던 게 아니던가.
그래서 더 서운했다. 왜 내 도전에는 같은 응원이 없는 걸까.
결국 우리 가족의 미래를 위해 필요한 건, 서로를 향한 꾸준한 응원 아닐까.
그 차이가, 그리고 그 부재가 서러웠다.
결국 대화 끝에 서로 사과하고 위로하며 마무리 지었다.
남편도 바쁜 상황 속에서 나를 제대로 살피지 못했음을 인정했고,
나 역시 감정적으로만 쏟아낸 스스로를 돌아보았다.
분명한 건,
언어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것.
‘내년, 내후년’으로 미루다 보면 결국 아무것도 못 한다는 것.
내일이 아닌 지금! 하기로 했다.
아이들과 함께 이곳에서 살아가기 위해.
그리고 나답게 살아가기 위해.
생각해 보면, 언어의 필요성을 알면서도 대충 뭉개고 지내온 것 같다.
책을 펼쳐두고도 제대로 하지 않았던 날들.
얕게만 살려고 했던 태도.
그게 결국 내 발목을 잡은 것이다.
오늘은 그냥, 가족들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말하고 싶었다.
“나도 조금 힘들다. 벅차다.”
그리고 문득, 나 스스로에게도 물었다.
외국인이니까, 어설프게 이야기해도 다 통했기에,
그래도 언제까지 그렇게 이야기할 것인가?
“쉼 없이 적응하느라 애쓰긴 했는데… 정말 최선을 다한 건 맞아?”
그래도 내일은, 다시 내일의 태양이 뜰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