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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쫑쫑 Apr 20. 2020

글을 통해 나를 선명하게 하다

나를 가장 잘 아는 방법은 나에 대해 써보는 것이다. 

나는 나에게 질문을 많이 하는 편이다. 어떤 색을 좋아하는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어떤 곳을 좋아하는지. 누군가가 이와 같은 질문을 할 때면 망설임 없이 대답을 하고 싶었다.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멋있어 보였다. 자기를 잘 알고 있다는 것. 


사실, 우리는 자신을 잘 아는 것 같지만 잘 모른다. 그래서 정작 선택을 해야 할 때 자신이 원하는 것보다 부모님이나 친구의 조언을 먼저 구하게 된다. 물론 조언을 구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본인이 어떤 결정을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로 조언을 구하는 것은 리스크가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 특히, 그 결정이 잘못됐을 경우엔 남의 탓을 할 확률이 높으니까. 그래서 나에 대해서 알고자 글을 써보려고 한다. 어떤 생각을 하며 살고, 어떤 경험을 했고,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보고자. 또한, 내 글이 독자들에게도 나와 같은 경험을 하게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나의 글이 자신이 어떤 사람이냐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그리고 10편의 글을 다 쓰고 난 뒤 내가 나 자신에 대해서 좀 더 알게 되는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에피소드 1. 영국 유학의 결정


내 나이 35살. 그 해 여름 나는 영국으로 떠났다. 회사에서는 차장을 막 달았던 시점이었지만 나는 더 이상 일을 하고 싶지도, 할 수도 없었다. 정신과 체력은 이미 바닥이 나있었고 모든 게 하기 싫었다. 아마도 그때 나는 회사 체질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거 같다. 적당히 윗사람 눈치도 보고, 두루두루 맞춰가면서 해야 하는 사회생활이 그렇게 힘이 들 수가 없었다. 하기 싫으면 관둘 수도 있었지만 카피라이터라는 내 직업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던 터라 쉽게 관둘 수도 없었다. 그렇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꽉 막힌 채로 시간을 죽이다 때마침 회사에 교육 휴직이라는 제도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앞도 뒤도 보지 않고 일주일 만에 휴직계를 냈다. 


부모님은 결혼할 나이에 떠나는 딸의 결정을 마냥 찬성할 수만은 없으셨을 것이다. 주위에서도 축하는 하지만 걱정도 많이 했었다. 하지만 그땐 남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회사를 가지 않기 위한 생산적인 대안에 충실할 것. 남들의 걱정보다 나의 마음이 우선이었다. 


'사람이 80년 산다고 가정했을 때 2, 3년 하고 싶은 걸 하고 사는 게 뭐가 문제야?'


그리고 본격적으로 영어공부를 시작했다. 나는 바로 해XX 영어학원을 등록하고 아침 9시부터 4시까지 수업을 듣고 2시간의 영어 스터디 그룹에 참여했다. 그 해 9월 학기 시작이었기에 나는 적어도 5월까지는 IELTS 점수가 나와야 했다. 유학원을 등록하고, 어학 점수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라 높은 곳부터 낮은 곳까지 학교 원서를 3군데 고루 넣었다. 다만 런던이 아닌 곳은 배제했다. 나에게 영국 유학은 런던에서 살아보기도 있었기에 꼭 런던이어야만 했다.

   

대학을 졸업한 이후로 손에서 놨던 영어공부. 일을 하는 동안 항상 '카피라이터는 영어 공부할 필요가 없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땐 정말 내가 왜 이런 생각으로 살았는지 땅을 치며 후회했다. 영어 점수는 좀처럼 오르지 않았고 원하는 학교의 어학 점수는 너무 높았다. 하지만 일단 휴직을 한 상태였고 학교를 가지 못해서 다시 회사로 복귀하기는 싫었기에 정말 최선을 다했다. 1월부터 공부를 시작했지만 4월까지 점수는 오르지 않았다. 주위에서 세부에 있는 기숙학원에 가면 점수가 오른다는 말을 듣고 또 부랴부랴 준비해서 갔지만 길게 있을 수 없었던 나로서는 점수가 크게 오르지 않은 상태로 다시 돌아와야 했다. 아직도 덥고 습하고 밤마다 닭이 울어대던 기숙학원을 잊을 수가 없다. 그렇게 6월이 되었고, 점수에 맞는 학교를 선택하고 프리세션 코스를 거쳐 런던에 있는 Kingston University 석사 과정에 입학했다. 그리고 그렇게 나의 런던 라이프는 시작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인생에서 무언가를 가장 갈구하고 그것을 해내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던 시간이었다. 고3 때보다도 더 공부를 열심히 했고, 누가 시켜서가 아닌 내가 정말 하고 싶어서 열심히 했었던 기간. 요즘 가끔, 내가 다시 그렇게까지 무언가를 열심히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다시 그렇게 하고 싶은 일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 또한 한다.


갑자기 유학을 결정한 것처럼 보이지만 나는 유학을 가고 싶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꺼냈고 마음에 항상 담고 있었던 것 같다. 신입사원 시절 10년 후엔 어떤 형태로든 나에게 안식연을 주자라고 생각했으니까. 여러 가지 상황들이 결국 기회가 되어 어느 날 찾아왔고 바로 실행에 옮겼다. 나는 추진력이 있거나 생각하는 일을 바로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들을 존경했다. 나에겐 그런 추진력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살았는데 이 글을 쓰는 지금, 모두가 반대하고 안될 수도 있는 일에 베팅을 하며 해 나간 걸 보면 나에게도 내가 부러워하는 사람들의 기질이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나에게도 좋아하는 일이 생기면 이렇게 앞뒤 보지 않고 생각대로 밀어붙일 수 있는 행동력이 있다는 것을. 


나는 이러려고 글을 썼다. 이러한 작은 에피소드들을 통해 나라는 사람을 깨닫기 위해. 막연하게 나라는 사람이 이런 사람인 듯해라는 머릿속의 생각이 아닌 글을 통해 더욱 선명해지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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