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음만은방랑자 May 18. 2017

[밑줄긋는독서]5월에 읽어야 할 책

<소년이 온다> by 한강-가슴이 먹먹해지고 끝내 눈물을 적시는 소설

출처 : 다음책

5월 18일을 주제로 한 책이나 영화가 많다. 그만큼 5.18 민주화 항쟁은 잊으래야 잊을 수 없는 역사적 상처이다. 새롭게 들어서 문재인 정부는 처음부터 역사에 획을 긋는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그 중심에 있는 노래이다. 이제야 제대로 된 정부가 들어섰다고 느끼게 하는 요즘. 5월 18일이 또 찾아왔다. 여기 5월 18일에 읽어야 할 책을 들고 왔다. 바로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


한강 작가의 문체에서는 차가움이 느껴진다. 아니 차갑다고 말하기보다 축축하다고 표현하고 싶다. 처음엔 담백하다고 느꼈지만 무언가 웃음기 쫙 빼고 담담하게 서술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채식주의자를 읽을 때도 그랬다. 담담한 서술임에도, 한강 작가의 감각적인 단어 사용으로 독자는 언어의 감각적 파도에 몸을 적실 수 있게 된다. 호흡의 사용도 예술적이다. 감정의 끈을 자유롭게 늘리고 줄이는 모습이다.


채식주의자에서도 그랬듯이, <소년이 온다>에서는 시점의 이동이 있다. 소년의 시점에서 담담하게 친구에게 편지를 쓰듯이 서술하는 부분은 그 침착함과 아이 같지 않음에 더 비극적으로 비치고 슬픔이 극대화된다.


어머니의 사투리를 통한 서술로 현실감을 주었고 소설은 더 이상 소설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자신의 아들에게 역시 편지를 보내는 듯한 서술로 슬픔은 계속해서 더해진다. 아들을 걱정하는 여느 어머니와 같은 모습에서 필자 자신의 어머니를 떠올리게 되었다.


슬픈 소설은 오히려 담담하다. 이 한 문장으로 이 소설을 요약할 수 있겠다. 5월 18일 민주화 항쟁을 기념하고 그 의미를 되새기며 이 소설을 읽기를 추천한다. 아프고 먹먹하고 끝내 분노하게 되는 소설, 한강의 <소년이 온다>였다.




책 속의 문장

거대한 풍선 같은 침묵이 병실의 모서리들을 향해 부풀어 오르는 것을 그녀는 느꼈다.


동호야. 지금 같이 나가야 돼. 위태하게 이층 난간을 붙들고 서서 너는 떨었다. 마지막으로 눈이 마주쳤을 때, 살고 싶어서, 무서워서 네 눈꺼풀은 떨렸다.


그 새벽에 겪은 일을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했던 겁니다. 한 시간여의 그 절망적인 침묵이, 그곳에서 우리가 인간으로서 지킬 수 있었던 마지막 품위였습니다.


오줌이라도 받아 마시고 싶었던 동물적인 갈증을 기억합니다. 갑자기 졸게 될지 모른다는 공포, 그들이 언제든 다가와 내 눈꺼풀에 담뱃불을 문지를 거라는 공포를 기억합니다.

그리고 배고픔을 기억합니다. 꺼진 눈두덩에, 이마에, 정수리에, 뒷덜미에 희부연 흡반처럼 끈질기게 달라붙어 있던 배고픔. 그것이 서서히 혼을 받아들여, 거품처럼 허옇게 부풀어 오른 혼이 곧 터뜨려질 것 같던 아득한 순간들을 기억합니다.


모든 따뜻함과 지극한 사랑을 스스로 부숴뜨리며 도망쳤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더 추운곳, 더 안전한 곳으로. 오직 살아남기 위하여.


그 여름으로부터 이십여년이 흘렀다. 씨를 말려야 할 빨갱이 연놈들. 그들이 욕설을 뱉으며 당신의 몸에 물을 끼얹던 순간을 등지고 여기까지 왔다. 그 여름 이전으로 돌아갈 길은 끊어졌다. 학살 이전, 고문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방법은 없다.


엄마들, 여기서 왜 이러고 있소? 엄마들이 무슨 죄를 지었소?

그 순간 내 머릿속이 멍해졌어야. 하얗게, 온 세상이 하얗게 보였어야. 찢어진 소복 치마를 걷고 탁자 위로 올라갔다이. 더듬더듬 조그만 소리로 중얼거렸어야. 맞어,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단가.


엄마아, 저기 밝은 데는 꽃도 많이 폈네. 왜 캄캄한 데로 가아, 저쪽으로 가, 꽃핀 쪽으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