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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만은방랑자 May 20. 2017

[영화행간읽기] 맨체스터 바이 더 씨(2016)

그가 이 도시에 살 수 없는 이유

#스포일주의


 건물 관리인으로 일하는 남자가 나온다. 아무 흥미도 없고 표정도 없는 남자. 그는 성질이 더러워 주민들로부터 불만 접수가 끊이지 않는다. 그는 왜 항상 화가 나있을까? 영화 초반부에 생긴 궁금증이다.



 


그는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어딘가로 급하게 향하게 된다. 휴가를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달려갈 정도로 급한 일은 무엇일까? 형의 죽음이었다. 그는 형의 병원을 방문한다. 슬퍼하는 모습은 없다.



 


형의 장례식을 위해 형의 아들, 조카 패트릭에게 이 소식을 알린다. 패트릭이 사는 곳은 맨체스터. 바닷가가 있는 동네이다. 그는 패트릭이 다니는 학교에 찾아가고, 아이스하키를 하는 패트릭의 모습을 본다. 조카의 성격도 삼촌 못지않다. 버릇없고 폭력적이다. 패트릭은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봐야 할지 확신이 없다. 영안실에서 아버지를 마주할 용기를 냈지만 들어가자마자 나오는 패트릭의 모습은 상황에 맞지 않게 웃음을 자아낸다. 전체적으로 이 영화는 그렇다. 무거운듯하면서도 가볍다. 너무 심각한 분위기를 만들지 않았다. 그렇기에 현실과 닮아있다. 카메라는 항상 거리를 두고 인물들을 비춘다. 관객은 관찰자의 입장에서 어느 정도 감정의 거리를 둘 수 있다.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주인공 리의 회상 장면에서 화목한 가정이 등장한다. 자신의 딸 둘과 아직 아기인 아들, 부인과 사랑을 나누는 평범한 집안의 모습이다. 조카와도 바다에서 낚시를 즐기곤 했다.


 리는 형의 유언장을 확인하러 가고, 형이 자신을 조카의 후견인이 되도록 유언을 남겨놓은 것을 알게 된다. 그는 당황한다. 다른 도시에서 일하고 있는 그였다. 조카를 돌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무엇보다도 그에겐 그만의 이유가 있다. 형의 유언을 듣는 장면에서 리는 과거를 회상한다. 회상 장면과 변호사의 말을 듣는 현재를 교차적으로 보여준다. 그 날의 기억이 변호사의 말을 듣는 그의 복잡한 머릿속에서 뒤범벅이 된다. 슬픈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온다. 그의 딸과 아내, 자신의 집에 벌어진 일. 경찰서에서 난동을 부린 장면까지. 음악이 감정을 고조시킨다. 주말의 명화에 나올법한 음악이다. 앰뷸런스에 아내를 싣는 장면은 슬픔 속에서 또 한 번 웃음을 자아낸다. 감독의 의도적인 장치인 듯하다. 비극적 상황에서의 희극성. 처음에는 음악이 좀 어색하다는 느낌이 없지 않았는데, 경찰서 장면까지 봤을 때, 감독의 치밀한 계획이 아닐까 추측했다. 회상 장면이 또 하나의 극처럼 보이는 효과를 준 게 아닐까? 마치 오페라를 삽입한 느낌이랄까?


 



눈보라 치는 맨체스터 항구가 보이는 데, 주인공에 무심한 현실을 보여주는 것일까? 지극히 현실적인 풍경이다. 과거나 현재나 그대로 있는 항구이다. 풍경은 변하지 않고 사람만 바뀔 뿐이다.



 


아버지가 죽었는데 패트릭은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을 이어간다. 연애도 열심히 하는 모습의 패트릭이다. 반면, 여자 친구의 엄마가 리에게 관심을 보이지만, 리는 지독한 철벽남이다. 말조차 하지 않는다. 그는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는 가슴에 무거운 죄책감을 지고 살아간다. 살아간다는 표현이 어색할 정도이다. 다른 남자와 아이를 가진 전부인이 형의 장례식에 찾아오고, 그를 아직도 사랑한다는 전부인의 고백에도 그는 슬픔으로 끌어안고 작별한다. 그는 만신창이가 되어 버렸고 자신과 세상에 화를 품고 살아간다. 그의 퉁명하고 호전적인 성향이 설명되었다.





자신을 버린 전알코올 중독자인 엄마의 초대로 엄마의 집에 간 패트릭은 그곳도 자신이 머물 수 없는 곳임을 깨닫고, 어느 날 냉동고를 열다가 갑작스러운 슬픔에 휩싸인다. 여태까지 괜찮다가 한 번에 쏟아지는 슬픔과 외로움에 무너진 것이다.





삼촌과 조카는 각자의 아픔을 안고 살아간다. 리는 패트릭에게 자신은 맨체스터에 머물 수 없다고 말한다. 그가 머물기에 너무 큰 상처가 있는 곳이다. 그에게 조카를 두고 가는 것만큼 힘든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남을 수도 없었다. 티격태격 싸우기만 하던 리와 패트릭은 서로 부둥켜안는다. 조카와 함께 하려고 자신의 기억과 싸움을 시도했던 리는 패배하고 만다. 치유할 수 없는 아픔도 있는 법.





그들은 맨체스터의 바다에서 옛날처럼 낚시를 한다. 아픔이 치유되진 않았어도 그들은 살아간다. 살아갈 수밖에 없다. 서로에게 기대면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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