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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아무개 Feb 21. 2023

시골쥐가 서울에서 사는 법 01

상경하여 국비학원을 다니게 된 시골쥐



   나는 20여 년을 경상도 안에서 맴돌다 코로나와 함께 상경하게 되었다. 2월에 동기들보다 1년 늦게 졸업을 하고 역병이 금방 사그라들길 기다리며 강남의 한 컴퓨터 학원에서 서울 생활을 시작하였다. 다행히도 무일푼의 백수를 구제해 주는 교육과정은 많았다. 그중에 나는 코딩을 택했다. 


   대학교에서 창조경제 어쩌고가 한참일 때 코딩 인재를 양성하겠다며 비교과과정으로 6개월가량 코딩 교육을 시켜주었다. 솔직히 그저 그랬다. 그런데 졸업하고 나니 먹고살 길이 달리 없었다. 할 줄 아닌 게 코딩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비교과과정으로는 곧장 취업하기엔 부족하다 느껴 국비학원을 찾아갔다. 


   처음엔 서울에 계시는 이모댁에 두세 달 신세를 지다 강남의 한 셰어하우스에 들어가 집과 학원을 오갔다. 걸어서 약 20분 거리였고 코로나로 인해서 놀러 다니긴 고사하고 백수에 6개월 안(정확히는 5개월 반이다.)으로 취업해야 한다는 압박으로 집과 학원만 열심히 다녔다. 그렇게 강남이 가장 익숙한 동네가 되기 시작했다. 


당시 지냈던 강남의 셰어하우스. 가져온 짐은 보이는 것과 책 몇 권이 다였다.




   학원을 다니는 사람 중에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아니 한 명, 나 포함하면 두 명. 대부분은 서울, 조금 멀면 경기도, 인천에서 오가는 학생들이었다. 내 고향친구들은 대부분 경상도를 벗어나지 않았다. 집 나가면 개고생인 것을 나처럼 집을 나가지 않아도 아는 친구들이었다. 나는 경제적, 정서적 독립을 원해 일찍이 집을 나오게 되었다. 하지만 집 안에서도, 집 밖에서도 나는 여전히 불안정했다. 


   학원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수업을 했다. 나는 당시 강남에 이사하기 전 노원구에서 살았기 때문에 한 시간가량 통학 시간이 걸렸는데 이 때문에 늘 새벽일찍부터 하루를 시작했다. 보통 아침 6시에 일어나 길게는 한 시간 정도 개인 공부를 하고 아침을 차려 먹고 집을 나서 8시까지는 학원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학원 수업만으로 당연히 취업이 어려울 것을 알기에 추가로 개인 공부를 했다. 


늘 야무지게 챙겨 먹던 아침


   학원에 가면 늘 내가 먼저 도착해 있었다. 그럼에도 강남은 늘 북적였고 모두들 해가 뜨기 전부터 하루를 시작했다. 나는 역사를 벗어나 뜨는 해를 느끼며 등원하는 아침이 좋았다. 흡연구역에서 옹기종기 모여 담배를 피우는 회사원들을 지나쳐 학원에 도착하여 개인 공부를 하고 있으면 같은 강의실 학생들이 한 명 두 명 들어왔다. 그리고 내게 늘 놀랍다는 눈초리로 인사를 했다. 



아무도 없던 강의실의 풍경. 두 번째로 등원한 학생이 찍어 준 것이다.


   수업을 하고 점심시간이 되면 전날 저녁에 준비한 점심을 먹었다. 대부분 학생들은 밖에서 사 먹었지만 한 두 명 정도 나처럼 도시락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있어서 같이 먹거나 혹은 혼자 먹었다. 식비를 아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막판에 한 두 달 남은 시점에는 프로젝트로 시간도 없고 친해진 사람이 많아져 외식이 늘게 되었다. 


당시 들고 다니던 도시락. 왜인지 약간은 비건이다.



   오후 6시에 정규 수업이 끝이 나면 오후 9시까지 자습시간을 가져야 했다. 잘은 기억나지 않지만 첫 한 달은 의무였고 이후부터는 의무참석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나는 대부분 자습을 참여했다. 우선 집에 가면 개인 공부를 할 수 있는 책상이 없었고 카페에 가기엔 돈이 들었기 때문에 최대한 학원에 붙어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했었다. 


   집에 도착하면 저녁 10시였고 이모와 같이 살던 시기엔 이모와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며 도시락을 준비하거나 쉬었다. 그러다 다시 새벽 1시에 잠들기 전까지 또 개인 공부를 하였다. 정말 다른 것 없이 공부만 했고 학원만 다녔고 코로나만 무서워했던 시기였다. 


   이 생활을 4개월 정도하고 나니 취업이 되지 못하면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야 한다는 불안감과 함께 약간의 번아웃이 와 생활이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공부에 집중할 수 없었고 기력이 없었다. 그럴만했다 주중에도 주말에도 오롯이 취업을 위해 공부만 해댔으니. 하지만 그렇다고 공부를 쉴 수 있는 노릇은 아니었다. 수료와 함께 취업이 되지 못하면 지방으로 내려가야 했고 그건 죽어도 싫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쉼 대신 기어서라도 전진을 택했고 그렇게 난생처음으로 학원 근처에 있는 정신과를 찾아가게 되었다. 


   하지만 처음으로 방문한 정신과에서 너무 강하게 약을 처방받아 온종일 술에 취한 듯 헤롱헤롱한 상태로 지내다 차라리 지친 상태로 지내는 게 낫겠다며 약 복용을 멋대로 중단하였다. 병원에도 가지 않았다. 하지만 수료일이 가까워질수록 내 증상은 심해졌고 불안증세는 더 악화되기 시작하였다. 그 와중에 같은 반 학생과 연애도 시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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