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아무개 Feb 25. 2023

시골쥐가 서울에서 사는 법 02

시골쥐, 정신과를 찾고 연애를 시작하고 취업을 하다


   처음 방문한 정신과는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공장 같은 느낌이었다.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고 사람들은 끊임없이 의사가 있는 방으로 오갔다. 약은 진단표를 받고 1층의 약국으로 찾아가서 받지 않고 의사의 방에서 은밀히 전해받았다. 약들은 정확한 이름들을 알지 못하고 그저 '잠이 잘 오는 약', '불안함을 없애주는 약' 따위로 불렸다. 


   나는 그렇게 '잠이 잘 오는 약'과 '불안함을 없애주는 약'을 먹고 대낮부터 거나하게 한잔 걸친 사람처럼 학원에 다녔다. 약을 먹고 가장 먼저 느낀 점은 드디어 내가 환자가 되었음에 대한 자각이었다. 사실 불안감과 우울감은 아주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었지만 병원에 가는 것은 그것을 인정하는 꼴이니 나는 아무래도 끝까지 부정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여하튼 앞서 말했듯 약은 한두 번의 복용으로 중단하였다. 너무 기분이 상기되었고 그 때문에 되려 일상생활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맞는 복용량을 찾는 것은 어려운 게 맞다. 하지만 나는 복용량을 찾는 여정 자체를 몰랐고 당시에 나에게 맞는 약과 복용량을 찾을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그냥 복용을 포기해 버렸다. 우선 취업이 되면 모든 것이 나아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그 결정을 부추겼다. 여하튼 무엇이든 나를 방해하는 것은 없애버리는 것이 최선이었던 시기였다. 


강남에서 나는 늘 하늘을 찾았다




   연애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정신이 오락가락한 와중에 상냥한 서울 말씨를 쓰는 그 친구가 너무도 사랑스러워 내 쪽에서 먼저 열심히 들이댔다. 다행히 내가 완전히 마이너스는 아니었는지 그 친구도 나와 마음이 맞아 초여름 우리는 연애를 시작하게 되었다. 수료가 대략 한 달, 한 달 반 정도 남은 시점이었다. 


   정규 수업이 끝나고 마지막 남은 한 달은 최종 프로젝트에 시간을 쏟게 되는데 그때 나는 그 친구 집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다. 그 친구 집에서 작업을 하고 학원에 갈 일이 있으면 학원에 가고. 그런 생활을 한 달가량 했다. 당시엔 이미 강남으로 이사 온 이후라 아무도 나를 방해할 사람이 없었다. 겸사겸사 번아웃도 왔겠다, 나는 그렇게 그 친구와의 시간을 즐겁게 보냈다. 


   그 친구는 교외의 바다가 보이는 넓은 공원 근처에서 살았다. 나와 그 친구는 시간이 날 때마다 공원을 걸으며 미래에 대한 희망찬 이야기를 나누며 놀았다. 취업하면 차 가지고 멀리멀리 여행도 다닐 거고, 집도 더 넓은 곳으로 갈 거고 어쩌고 저쩌고.


가끔 통통배도 지나가던 바다




   나는 개발자로 취업을 하기 위해서 한 가지 전략을 생각해 두었다. 바로 SNS에 내 공부여정을 열심히 공유하는 것이다. SNS에는 정말 많은 개발자들이 자신을 노출한 채 활동하고 있었고 나도 그중 한 명이 되어 열심히 개발자가 되기까지의 여정을 공유했다. 그리하면 나와 비슷한 사람과 교류도 되고 가끔은 SNS로 개발자를 찾는 공고도 나왔기 때문에 그 자리를 얻진 못하더라도 그 공고를 올린 사람과 커피챗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나는 그 덕에 학원에서 가장 먼저 인턴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SNS에 올라온 공고를 발견하여 연결이 된 것이다. 내 바람대로 학원 수료 전에 취업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에서 인정하는 '근로자'는 아니었다. 근로자가 아닌 '일경험수련생'이라는 포지션이었다. 그래서 한 달에 60만원을 받으며 일하게 되었다. 회사에서 30만원, 국가에서 30만원을 받는 꼴이라고 들었다. 사실 '근로자' 포지션도 아니고 임금도 말도 안 되는 액수였지만 우선 내 수준에 돈 받고 코딩을 할 수 있는 곳은 달리 없다고 판단하였고 당장 돈은 문제가 아니라 생각하여 나는 출근을 하기 시작하였다. 



출근길의 역삼역

                    


   나는 개발자로 취업하기 위해선 최대한 다양한 수단으로 나 자신을 노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렇게 활발히 활동하지 않더라도 취업은 가능하겠지만, 나는 나 자신이 실력적으로 발굴될 확률이 낮다고 판단해 최대한 내가 하고 있는 것들, 할 예정인 것들 등등 나 자신에 대해 공개적으로 열심히 노출했다. 그리고 이는 꽤 나쁘지 않은 판단이었는지 첫 직장과 두 번째 직장까지 SNS를 통해 얻게 되었다. 운이 좋았는지 뭔지, 이로 인해 나는 굶어 죽지 않고 서울에서 자리 잡을 수 있게 되었다. 


   첫 직장은 펫시터 플랫폼이었다. 내 바람대로 SI가 아닌 자체 서비스를 가지고 있는 작은 스타트업으로 커리어를 시작할 수 있었다. 작기도 작았지만 회사에서 사용하는 개발 언어가 한국에서는 쓰이는 곳이 굉장히 적었기 때문에 초반엔 고민이 굉장히 많았다. 나중까지 생각해 이직을 할 경우 불리하게 적용될 것 같았다. 하지만 이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문제는 개발자인 내가 마케팅 작업을 간간히 맡게 되는 것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시골쥐가 서울에서 사는 법 0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