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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아무개 Mar 12. 2023

시골쥐가 서울에서 사는 법 03

개발자로 취업해서 마케팅을 하다


   약 1년 정도 재직하면서 반여년정도를 마케팅 업무를 병행하게 되었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처음 입사할 당시엔 2명의 마케터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마케터가 퇴사했다. 그리고 이후에 또 마지막 마케터가 퇴사했다. 그리고 마케터를 새로 뽑는 일은 없었다. 10명이 안 되는 팀원 중 한두 명을 제외한 모든 인원이 개발자로 채워졌다. 그리고 개발자들에게 마케팅 업무가 주어졌다. 나는 자동으로 콘텐츠를 대량으로 뽑아내는 콘텐츠 제작 자동화 작업과 검색엔진최적화라고 하는 SEO 작업을 담당했다.



   이 모든 일을 진두지휘하는 팀 리더인 CTO와도 많이 다투게 되었다. 마케팅에 문외한이라도 이게 아니라는 것은 알겠다며 많이 싸우고 수없이 좌절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재직 6개월째에 본격적으로 이직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당장 서울에 있어야 했기 때문에 퇴사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말도 안 되는 일들을 담당하며 내 이력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초라하게만 채워졌다. 어찌어찌 기회를 얻으면 입사 과제를 해야 했고 퇴근 후 나는 또다시 책상 앞에 앉아 과제를 밤새어하곤 했다. 개발자였지만 온종일 회사에서 블로그 글 만 쓰고 퇴근하는 나날들이 잦아졌다. 나는 무기력과 좌절감에 매일을 살아야 했다. 그렇게 정신과를 다시 찾아가게 되었다.


그 해 겨울은 정말로 춥고 눈이 많이 왔다.


   당시 강남에 살았기 때문에 집에서 가장 가까운 병원을 찾았다. 이번 병원에서는 아주 소량의 약부터 복용하기 시작해 나도 모르게 서서히 몸이 약에 익숙해질 시간을 줄 수 있었다. 그렇게 점점 약이 늘기 시작했고 정신 차렸을 때엔 약이 한 움큼 집히는 정도가 되었다. 빨리 이직을 해야만 했다. 그러면 이 모든 힘든 감정과 상황이 정리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힘겨운 와중에 마케팅 업무는 계속되었고 회사에 대한 불만은 극을 달할 즈음 어느 앱 개발자와 다툼이 생기고 말았다.


   당시 앱 개발자는 회사에 오래 재직한 사람으로 회사의 대부분의 역사를 직접 본 사람이었다. 그 개발자는 본인이 보기에 내가 하는 일들은 앞서 그만둔 마케터들이 전부 했었던 일이고 결과가 좋지 않았다며 좁은 사무실에서 마치 나보고 들으라는 마냥 떠들어댔다. 참을 수 없었다. 아무래도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고 있었는데 앞에서 욕까지 먹게 되니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리더에게 그 개발자가 내가 하는 일에 불만이 많아 보이니 그 사람에게 이 일을 시키는 게 어떠냐고 요구하기도, 그 개발자에게 직접 찾아가 내가 하는 일에 대한 피드백은 나에게 직접 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개발자는 팀리더가 만든 자리에서 대면해서도 ”네가 하는 일은 무쓸모한 일이다. “라고 폭언을 하며 내가 감정적인 상태이니 말을 들어줄 수 없다며 대답을 피하고 말을 무시했다. 나는 끝끝내 그 개발자가 나 자신에게 했던 모욕에 대한 사과도 받지 못한 채 미팅을 끝내야 했다. 오히려 더한 모욕과 멸시를 받아 상황은 악화된 채로 끝나게 되었다.


이직하고 이사까지 하며 매우 바쁜 해였다.


  그 일이 있고 퇴근하여 내가 겪은 모욕을 SNS 계정에 폭발하듯 쏟아내었고, 그 글을 본 어느 회사의 개발팀 리더가 연락을 하여 면접을 보게 되었다. 그렇게 이직을 할 수 있었다. 여태껏 밤새 과제하고 보았던 수많은 면접이 우스운 듯 상황은 쉽게 정리되었다. 그렇게 나는 첫 개발자 커리어를 마무리하게 되었고 한 움큼의 약과 내가 과연 개발자로서 계속 일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만을 남기고 도망치듯 두 번째 커리어를 시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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