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교환학생2018_삶2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by 시골쥐 아무개

본 글은 2018년, 글쓴이가 모 포털사이트에 교환학생 생활 중 썼던 포스팅을 가져온 글입니다.

어린 나이에 쓴 글이라 다소 어리숙하고 지금과 다른 가치관과 생각을 가져 지금의 제가 보아도 어색하기 그지없는 글이지만 나누고 싶어 가지고 왔습니다.



2018. 10. 3. 0:13의 글



항상 무언가의 이슈에 대해서만 기록을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그런 기록을 위한 SNS는 이미 인스타그램이라는 것이 있고.
이곳은 내 인생의 하이라이트를 보여주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잔잔하고, 어쩔 땐 지루할 정도로 보이는 나의 일상을 적는 것이 더 의미가 있다 라는 생각을 했다.

난 어쩔 수 없이 이곳에서 '학생' 이라는 신분으로 학교를 다니고 있고
그것이 일본로 수업을 하고 일상을 보낸다는 것 외에는
한국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나는 그 점이 조금은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내가 이곳에서 녹아 들었다는 증거가 아닐까.

이젠 일본어로 어떤 것을 묻거나,
일본어로 어떤 것을 사거나
그런 것에 대한 두려움은 대개 사라졌다.

그렇기에 이 글도 완벽하게
'삶에 대한 글' 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반년으로 국적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룸메이트.



근황에 대해 주절주절 얘기하자면,
룸메이트 사야와는 굉장히 잘 지내고 있다.

사야는 나를 '언니' 라고 부르며
발음은 '온니'다.
항상 내게 무언가를 해주려고 한다.
고등학교 때 유아교육에 대해 공부를 한 덕에
무언가를 만드는 것을 굉장히 잘한다.

그리고, 밤늦게 까지 무언가를 만들더니 나에게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리틀그린맨'이라는
토이스토리에 나오는 캐릭터 인형을 만들어 줬다.


내 책상 한켠에 만들어지는 '사야 콜렉션'



뒷면은 더더욱 감동이다.




나의 이름을 붙혀주었다.



나에게 저 인형을 주면서 했던 말이 있다.
한국인 룸메 중에서 '아오이' 라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를 보면서 항상 본인 룸메이트에게 무언가를 해주는 것을 보고
자신도 무언가를 늘 해주고 싶어 고민을 했다고 한다.

정말이지, 이런 대접을 받아도 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사야는 상상이상으로 더 사랑스러운 아이일 지도 모르겠다.






아침이 약한 사야.
하지만, 낫토가 나오는 금요일 아침은 꼭 일어나서 밥을 먹는다.

얼마전엔 꿈에 내가 나왔다고 한다.
어떤 터널에 갖혀서 둘이서 어떻게 기숙사로 돌아가지? 하고 고민하는데
기숙사로 돌아갈 수 있는 로켓같은 탈 것이 있어서 그것을 탔는데
갑자기 물에 빠져서 죽을 뻔하다가
토이스토리 숍에 들어가서 손수건을 사고 나왔다고 한다.

무슨 소린지 나도 잘 모르겠다.

여튼,
사야와 나는 아주 순조롭게 잘 지내고 있다.
이젠 내가 이 친구에게 무얼 해줘야 할지 고민해야 할 것 같다.


책.


일본 소설 중에서 아니 내가 본 몇 안되는 소설 중에서
가장 사랑하는 책이 있다.
바로
냉정과 열정사이
우연히 집에 있는 것을 집어 읽었는데 정말 묘한 책이었다.
BLUE 버전과 RED 버전이 있는데
BLUE는 남자 작가가
RED는 여자 작가가 쓴 것이다.


코팅도 전혀 안되있어서 여기저기 쪼골쪼골하다



이상하게도 RED 버전은 읽어지지 않아서 아직도 보류해놓은 상황이지만
BLUE 버전은 2번 정도 읽고 또 읽었다.

아마, 그런 사랑을 해보고 싶다 라는 생각에서 그 책을 사랑하는 것 같다.

여하튼, 일본에 오면 난 꼭 그 책을 완독하고 말겠다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그 책을 도서관에서 만났다.
그리고 역시나, 읽지 못했다.

아쉽지만 난 현실을 직시해야 했다.
하지만 덕분에 한자 공부에 더 열을 낼 기분이 들었다.

다음에 책방에 가서 한 권 사서 쭉 읽을 수 있을 때 까지 읽어 볼 생각이다.
나의 목표.


あおいのことがいまだに忘れられない。아오이를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식사.



여기서의 또 하나의 목표.
바로, 밥 굶지 않기.
세끼는 힘들더라도 두끼정도는 꼭 챙겨먹기.
건강에 대한 고집이 생긴 탓인지 억지로라도 넣고 본다.

밥을 굶으면
살도 빠지지만
수명도 빠진다는 것을 몸소 체험한 탓에
굶어서 살을 뺀다는 건은 내 인생에서 다신 없으리라 생각한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두유 시리즈. 커피를 가장 좋아한다. 이건 홍차.



이곳의 밥은 대체로 한국보다 굉장히 상냥한 느낌이 난다.
실제로 사감 선생님은 맛에 대해 やさしい(상냥하다, 야사시이) 라는 단어를 썼다..
기숙사 식단에서 한 번도 고춧가루를 이용해서 빨갛게 만든 음식은 본 적이 없고
그렇다고 그렇게 짠 음식도 없었다.

점심은 대체로 내가 조리를 할 수 없으니
라면이나 마트 도시락으로 떼우는 편이지만
나쁘지 않다.
도시락을 사러 가는 그 길도 좋아하고.
과일도, 요플레도 꾸준히 챙겨먹고 있고.


룸메 사야가 항상 야식을 먹는 탓에 나도 같이 먹게 되버린다.


무엇보다 매일 7시 30분 쯤 일어나서 아침을 먹는 다는 것이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고등학교 이후로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었는데.
덕분에 주말이 되어도 8시 9시 즈음에 눈이 떠진다.
역시 인간은 적응의 동물임에 틀림없다.




수업.


수업은 대체로 오전 수업이다.
그로 인해 일찍 일어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약 300만원 주고 듣는 10학점짜리 시간표, 그 와중에 English Translation과 컴퓨터 수업은 못듣는다.



수업에 대해서 이야기 하자면
당연히 좋은 수업도 있고 싫은 수업이 있다.

좋은 수업에서는, 수업도 수업이지만
선생님을 굉장히 좋아한다.
일본에서는 교수님을 교수님이라고 칭하기 보단 대체로 선생님이라고 칭하는 듯하다.

선생님은 항상- 그것이 빈말이던 동기부여용이던
나에게 기대하고 있다고 말씀해 주신다.
만약 동기부여용으로 그 말씀을 하신거라면 대성공이다.
나는 그 선생님의 기대에 그만큼 부응하고 싶고
그래서 그 수업은 더 즐겁게 참여하고 있다.

오늘, 메일 주소를 바꾸고 싶어서 연락을 드렸더니
나에게 후에 있을 발표날에 사회자를 맡아 달라는 부탁을 하셨다.
이 짬(학부생 약 3년 반차...)에 발표도 못해서 앞에서 웅얼웅얼 거릴 수야 당연히 없지만
사회자로 나서는 건 한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 조금 망설여 졌다.

하지만, 언제 이런 기회가 있을까 싶어서
곧 장 맡겨만 주시면 열심히 하겠다고 답 했다.
더 열심히 해야할 명분이 생겼다.
그것이 후에 내 발을 걸려 넘어지게 할지
멀리 도약할 디딤돌이 될지는 오롯이 내 처신에 따른 것이니
앞으로의 유학생활이 더 재밌어질 것 같다.




위 글과 다른 선생님이지만, 중국 명절을 맞이하여 월병을 많이 얻었다며 한 조각 한 조각씩 나누어 주셨다.




아쉬운 한 조각...






그 외의 일상.


최근엔 알바를 구하고 있다.

원래는 안할 생각이었는데
이 또한 경험이 되리라 생각해 주 2회 정도 하려고 텐만구를 돌아다니면서
마치 성냥팔이 소녀처럼 '알바 필요하지 않으세요?' 하고 묻고 다녔다.
한 세군데 정도를 돌고 나니 마지막 헬로우키티 굿즈샵에서
면접 날짜를 잡았다.
그런데 하필 그 날에 태풍이 와서 가게가 닫는 바람에 면접이 취소되었는데
그 취소 연락이 누구에게 갔는지 나는 모르는 채로 가게를 다녀왔다.
결국 면접은 4일로 미뤄졌다.

과연, 평일 이틀만 고용해 줄지.
걱정이 크지만,
안하는 것보단 낫겠지 싶은 생각이다.

알바 면접에 이력서가 웬말이야




아 여기 일본이었지 순간.



수업 중, 일본의 기념일혹은 명절에 대해 배우는 수업이 있다.
주로 오봉이라는 명절 대해 아주 자세하게 배웠었는데
일본인도 모르는 정도의 깊이로..
다른 기념일이나 명절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설명을 들었다.
그러다가,
마지막 페이지에 종전기념일이 있었다.

모르는 사람들에게 설명하자면
일본의 종전기념일은 8월 15일 이다.
즉, 한국의 광복절인 것이다.

일본인들은 당연히 그 날이 한국의 광복절임은 모를 것이다.
그냥 본인들이 전쟁에서 졌다. 그리고 일왕이 종전선언을 했다.
그로 인해 된 기념일. 로만 알고 있을 것이다.

그 수업은 일본학생들을 위한 수업이 아니었다.
오롯이 유학생들을 위해 열려진 수업이었다.
그렇게 한국, 중국, 대만 학생들을 앉혀 놓고
종전기념일에 대해서 설명을 하다니.

아, 여기 일본이었지 하는 순간이었다.

이래서 가깝지만 먼나라 인 것인가.

그들의 역사의식에 대해서 나는 할 말이 없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일본에 있는 이상 해야할 말도 없을 것 같아서
뒤숭생숭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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