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마무리하며>
성인이라는 문턱을 넘자마자, 세상은 나를 거대한 생산 라인의 한 부품으로 끼워 넣으려 했다.
사람들이 내뱉는 '생산적인 인간'이라는 단어들은 공기 중에 떠다니며, 마치 미세한 독소처럼 폐 깊숙이 스며들었다. 한 번의 실수는 도미노처럼 무너지는 실패의 연쇄반응을 불러왔고, 손에 닿을 듯 보였던 '괜찮은 삶'은 신기루처럼 계속 멀어져 갔다. 그럼에도 내 안 어디선가 꿈틀거리는 미련 같은 것이, 포기라는 선택지를 허락하지 않았다.
'생산적으로 살아라'
이 문장은 내 유전자 어딘가에 새겨진 암호처럼 작동했다.
예술가라는 이름표를 목에 걸고 이 알바에서 저 알바로 떠돌았다.
때로는 몇 개의 직업을 동시에 붙들고 살기도 했다.
많은 돈을 벌지도 못하면서, 그 한 푼 한 푼을 위해 잠을 갉아먹으며 버텨냈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의 입에서 나온 한 마디가 내 귓가에 맴돌았다.
"꿈을 포기하면 편해져."
그 말은 내 안에서 콤플렉스로 자라나 나를 회사라는 안전한 우리 속으로 밀어 넣었다.
매달 통장에 찍히는 일정한 숫자. 하지만 매일같이 반복되는 시간의 고리.
그들이 정의한 '정상적인 삶'을 살아보려 했지만, 그곳에서도 나는 유리벽 너머의 관찰자 같았다.
결국 깨달은 것은, 돈을 버는 행위 자체에는 본질적 차이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 깨달음과 함께, 이 이야기가 조용히 움트기 시작했다.
2020년, 단편 시나리오로 시작해, 그다음 해에는 소설이라는 형태의 문장들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초고가 완성된 후에도 끝없는 수정의 미로가 펼쳐졌다.
출판사 공모전이라는 문을 여러 번 두드렸지만, 매번 차가운 벽과 마주했다.
내 이야기가 누군가의 마음에 닿지 못해서일까?
너무 우울한 색깔로 칠해져서일까?
문체가 아직 제대로 익지 않아서일까?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는 사이, 어느새 다섯 해라는 시간이 모래시계 속 모래처럼 흘러버렸다.
'이제 그만두자'라고 마음을 정리하려 했지만, 내 컴퓨터 하드디스크 한구석에만 잠들어 있기에는 아까운 이야기였다. 그래서 브런치스토리라는 작은 창구를 통해 세상에 내보내기로 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말로 '죽을 때까지 일한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청년부터 중장년, 노년에 이르기까지, 주변을 둘러보면 모두가 성실하게, 때로는 처절하게 살아간다. 그런데 가끔 의문이 든다. 이토록 열심히 사는데, 왜 이렇게 힘든 걸까? 누군가는 거대한 부의 탑을 쌓아 올리고, 누군가는 그저 하루하루를 버텨내며 살아간다. 이것을 운이라 부르는 사람도 있고, 타고난 숙명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인간이 늙어가는 것만큼은 모든 이에게 공평한 법칙이다.
늙었을 때, 단순히 일만 한 인생이 아니라 무언가 소중한 것을 얻어간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눈을 감는 것.
그것이 더 가치 있는 삶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나는 그것이 사랑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아직 아이는 없지만, 우리 부모님을 바라보며 그들이 그토록 뼈를 깎는 고생을 마다하지 않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 솔직히 지금도 답답하다.
부모님은 평생을 바친 그 모든 수고가 자식을 위해서였다고 말씀하신다. 그래도 행복했다고 하신다.
우리가 있었기에.
아직 충분히 자라지 못한 내가 그 경계선 사이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 만들어낸 이야기다. 이 소설을 쓰는 내내 나와 부모님 사이의 그 깊은 간극을 이해해 보려 애썼다. 여전히 우리 사이에는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투명한 벽이 존재한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단어가 우리를 이어주고 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일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결국 일을 하는 것은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을 깨닫는 것, 현재라는 시간을 소중히 품고 살아가는 것이라는 깨달음에 닿았다. 비록 완전한 답은 아직 찾지 못했지만.
도전특별시가 아닌, 서울특별시에서 평생을 자라오며 체감했던 이야기를 그리 멀지 않은 미래의 풍경으로 옮겨 담았다. 시간이 흘러도 우리의 미래가 더 밝아지지 않을 것 같다는 비관적 정서가 내 안에 짙게 깔려 있었던 것 같다. 내가 그런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란 탓일 수도 있지만, 오히려 맹목적으로 낙관하는 것보다는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해야 진정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을까 하는 작은 희망도 품고 있었다.
언론은 매일같이 대한민국의 어두운 미래를 예고한다. 그 어두운 미래, 불안한 청년들의 이야기가 현실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내 걱정이 단순한 기우였음이 증명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이야기를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