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문화 적응기 1>
월세 218만 원 집에 살면서 우리는 집을 거의 모시고 살고 있다.
한국에서라면 절대 이 돈 주고 못 살았을 것 같다.
아마 시도 조차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해외에 나온 이상 어쩔 수 없다.
해외라는 이 특별함 때문에 살 수 있는 것 같다.
친정부모님과 시부모님은 우리가 한국을 떠나기 전까지 그리고 호주에 도착했을 때까지도 가장 걱정했던 것 하나가 집이었다.
집은 의식주를 포함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니 당연히 부모님의 걱정을 백 번 천 번 이해할 수 있었다.
다만, 우리는 집을 구하는 데 있어, 뚜렷한 계획이 없었다.
무한 긍정 마인드로 일주일 만에 구하겠지, 뭐 이런 마인드였다.
아무튼, 어찌어찌 우여곡절 끝에 이 집에 들어와서 살게 되었다.
한눈에 보자마자 반해서, 다른 집은 보이지도 않았다.
집을 구하지 못한다는 불안감과 이 집이 새집이어서 마냥 좋았다.
그런데 살면서 218만 원이라는 월세가 우리를 점점 짓눌렀다.
내가 한국에서 살았을 적, 월세 218만 원이면 해외에서 엄청난 대저택에 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는 방하나 딸려있는 집에 살고 있다.
사실 시티와 멀어졌으면, 방 3개짜리 집에서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했다.
그렇다고 우리 집은 완전히 시티 안에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1 존에 있다. 그것을 기억해야만 한다.
그래서 교통비도 아끼기 위해, 시티까지는 항상 뚜벅이 생활을 실천하고 있다.
열심히 걷고 또 걷는다. 웬만하면 대중교통은 이용하지 않는다.
버스비가 너무도 비싸기 때문에, 이 집에 살려면 그것마저 아껴야 했다.
이 집에 살면서 매일 같이 여러 가지 합리화를 한다.
"집이 너무 비싸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우리는 브리즈번에 온 지 1주일 만에 이 집을 계약할 수 있었잖아? 그건 다른 사람들보다 엄청 빨리 계약할 수 있었던 거라고 하더라..."
"아니면, 임시 숙소에서 돈을 더 내면서 여러 군데 집을 더 보러 다녀야 했지만, 우리는 그럴 마음의 여유가 없었잖아?"
"그래도 조금 더 싼 집을 구했었으면 좋았겠지..."
하지만 우리는 불안정한 상황에 놓이기 싫어서 계약서에 1년 계약을 떡하니 해버렸다.
물론, 그것도 후회했다.
하지만 해외에 나와서 살면 어쩔 수 없다.
모든 것이 우리 뜻대로 흘러가지 않으니...
그게 우리의 결론이었다.
집을 구하고 나서, 걱정하실 친청부모님과 시부모님께 연락을 했다.
다들 적잖이 놀라셨다.
이제 그다음 걱정은 과연 일을 구해서 이 월세비를 메꿀 수 있냐는 것이었다.
우리는 또 무한긍정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마음만은 희망에 부풀어있었다.
한국에서 온 지 겨우 이주밖에 안 되었을 때니까 말이다.
하지만 항상 초기 때는 여러 우여곡절을 많이 겪는 법이다.
당연히 일을 쉽게 구하지는 못했다. 그러다 보니 이 집에 사는 게 더! 더! 부담스러워졌다.
그리고는 점점 이 집의 집값이 우리를 옥죄여왔다.
그리고 그때마다 옛날생각이 났다. 한국에 살 때는 우리나라 집값이 비쌌다고 생각했지만,
우리나라 집값이 그렇게 또 비싼 편은 아니지 않나 싶다.
별 말도 안 되는 잡념들이 마구 떠올랐다.
일을 하지 못하고, 집에만 있으니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었다.
그래도 나름 한국에서 원룸 생활 3년 동안 해오면서, 정말 오래되고 낡은 집에서 살아서 그런지
지금의 집이 너무 비싼 가격이지만 살고 있는 내내 기분 좋은 마음은 숨길 수가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집이 처음 완공되자마자 우리가 첫 입주한 거여서 모든 것이 새것이다.
집이라는 게 이렇게 편안한 공간이구나라는 것을 처음 느끼는 중이다.
한국에 살 때는 집에 거의 있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카공족이 되었다.
카페에 아침에 가서 하루종일 글을 썼다.
카페에 쓴 돈이 어마어마했다. 왜냐하면 아침에 카페에 가면 커피와 빵을 먼저 시켰다.
그리고 점심이 되면, 또 뭐가 먹고 싶어서 음료와 디저트를 시켰다.
그리고 집중이 안되면 다시 짐을 싸들고, 다른 카페를 찾아 전전했다.
그러다 보니 하루에 카페에 쓰는 돈을 안 쓰고 저축했더라면 많은 돈을 모았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한국에 살 때는 집에 있으면 답답했고, 숨이 막혔다.
원룸촌에 살아서 문을 열면 앞집이 훤히 다 들여다보였다.
앞집 건물 사람과 눈이 마주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서 매일 블라인드를 내리고 살았다.
그나마 해가 잘 드는 원룸을 선택해서 살았지만, 나는 거의 해를 보지 못하고 살았다.
오히려 창이 너무 넓어서 우리 집이 사생활이 보호가 안 돼 너무 훤히 잘 들여다 보였기 때문이었다.
호주에 와서는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서 무엇보다 좋다.
그리고 원룸에서는 빨래를 널면 꿉꿉한 냄새가 나곤 했다.
바람이 잘 들지 않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여기서는 빨래를 널면 정말 잘 마른다.
왜냐하면 작은 발코니가 있어서 밖에다가 널면 되니까 금방 말랐다.
그래서 사람들이 돈을 많이 벌어서 좋은 집에 사는 걸까? 또 뭐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 새집에 살면서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화장실문고리가 고장이 난 것이다.
부동산에서는 수리공을 보내주겠다고 했다.
남편은 트라이얼을 하러 나가서 나 혼자 집에 있어 그를 맞이해야만 했다.
우렁찬 노크소리와 함께 키가 멀대처럼 큰 호주 아저씨가 들어왔다.
그런데 이럴 수가 위풍당당하게 내 집에 신발을 신고 들어왔다.
"지져스 크라이스트!"
아저씨가 문고리에 대해서 설명하는데, 뭐라 말하는지는 하나도 안 들리고 오직 하나!
나에게는 신발을 신고 들어온 아저씨의 신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왜일까?
나는 버젓이 맨발로 우리 집에 서있는데? 여러 가지 혼란스러움에 휩싸였다.
영국에서 홈스테이 했을 때만 해도, 이러지 않았다.
그 시각, 수리공 아저씨는 문을 닫고 화장실에서 문을 고치는 중이다.
그리고 10분 후, 화장실 문을 열고 나왔다.
활짝 웃으며, 쿨하게 문을 다 고쳤다고 말하는 아저씨...
그런데 그 아저씨가 금요일에도 또 오겠다는 것이었다.
발코니의 해충을 박멸하러 온다는 소리였다.
뭐지? 처음 듣는 소리인데?
나는 아저씨가 간 이후에 온 집안을 청소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에이전시에서 연락이 왔다.
금요일 2-3시 사이에 해충을 박멸하러 그 아저씨가 온다는 것이었다....
하루종일 그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발코니에 나가려면 우리 집을 지나쳐야 한다.
설마... 온 집안을 해충 박멸을 하러 온다는 소리인가?
그럼 침실 안에 있는, 카펫은 어쩌지?
순간, 정신이 아득했다.
Excuse me. Can you take off your shoes?
I don't wear shoes in my house.
아니야... 더! 더! 정중하게 물어봐야 하나?
"Excuse me. Could you take off your shoes? I don't wear shoes in my house."
가뜩이나 남눈치 보는 성격 때문에 말하는 것조차 연습하는 나였다.
왜 내 집인데 내가 눈치를 봐야만 할까?
사실, 이 아저씨가 오고 난 후, 에이전시의 연락을 받고 검색을 해보았다.
검색을 해보니 나와 같은 이유 때문에 걱정을 하는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
갑자기 동질감이 생기며, 안도감이 들었다.
호주가 아니라도 미국에서도 수리공에게 신발을 벗으라고 하면,
그게 자칫하면 무례할 수 있다고 했다.
당황스러웠다. 그럼 내 집인데, 말도 못 한다는 소리인가?
수리공 같은 경우에는 무언가를 수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위험요소가 바닥에 있을 수가 있어,
신발이 그냥 신발이 아닌, 자신의 발을 보호해 주는 존재 같은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신발을 벗어달라고 하면, 그게 무례함을 초래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래도 우리 집에 신발을 신고 들어오는 건 정말 싫었다.
내일 아저씨가 들어오는 순간, 이 말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만약에 아저씨가 싫다고 하면 어쩌지?
우리 집인데 말이다.
내일 두 시까지 난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만 했다.
제발 우리 집에 신발 신고 들어오지 마세요.
왜 내가 우리 집인데 이런 말 하나 하는 것조차 걱정을 하는지 모르겠다.
난 호주에 와서 무언가 굉장히 위축되어 있다.
일도 구하지 못하고, 내 영어는 너무 별로다.
한국에서는 당연했던 일이, 여기서는 그러지 못하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이런 말 한마디 하는 게 과연 괜찮을까? 싶었다.
결국, 나는 그 말을 해보지도 못하고, 아저씨는 당연하다는 듯, 또다시 집안에 신발을 신고 들어왔다.
그 이후에도 우리 집에 몇 번의 수리공이 들어왔다.
당연히, 신발을 신고 들어왔다.
우리는 그때마다 집안을 청소한다.
그냥 포기했다.
여기의 문화겠거니... 호주에 살려면 그냥 받아들여야지...
그게 해외생활의 묘미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