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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컨트리 쇼퍼 Dec 21. 2023

한 여름의 크리스마스 선물 :
저 퇴사했습니다!

호주의 크리스마스

호주에 온 지 6개월 만에 퇴사하다!

정확히 한 달 전쯤 나는 회사에 입사해서 잘 다니고 있다는 글을 올렸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회사를 퇴사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한 내 몸이 그동안 잠잠했던 지병을 일으켰고, 

그날은 너무 아파서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회사의 어느 누구에게라도 연락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사수는 현재 한국으로 휴가를 가있는 중이었다. 

그래서 바로 부장님에게 연락을 했다.

"너무 아파서, 병가를 써야 할 것 같아요."

"사수한테 먼저 말하세요."


결국, 사수에게 연락을 했다. 다행히 오늘은 재택근무를 하는 날이라고 했다. 

웬만하면 휴가에 가 있는 사수에게 연락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 일은 어쩔 수 없이 휴가 중에도 연락을 해야 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쉬지도 않고, 열심히 일하는 그들의 체력이 대단해 보였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너무 아파서, 병가를 써야 할 것 같아요."

그렇게 회사에 입사한 지, 난생처음 병가를 쓰고, 침대에 온종일 누워있었다. 

다음날이 되어도 상태는 좋아지지 않았다. 

그래서 부랴부랴 GP 의사 선생님을 예약하고, 병원으로 향했다. 


"대상포진인 것 같은데요?"

"대상 포진이 아니에요... 주사피부염인데... 이게 너무 악화가 돼서 온몸에 염증이 너무 많이 올라왔어요." 

의사 선생님은 왜 그렇게까지 스트레스를 받으며 일을 하냐고 물었다. 

"여기서 무슨 일을 해요?"

나는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유학원에서 일해요..."

"왜 호주에서 까지 왔는데, 유학원에서 일해요? 여기 도전하러 온 거 아니에요? 호주에 왔으면 호주 사람들이랑 일해야죠. 이렇게 몸이 망가질 때까지 어떤 스트레스가 있었던 거예요?"

나는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차마 모든 것을 얘기하지는 못했지만, 의사 선생님은 다 이해한다는 듯이 나에게 많은 조언을 해주었다.  

"자신이 제일 중요해요. 그걸 잊지 말아야 해요."

나는 그동안 마음으로만 사직서를 품고 다녔고, 남편에게 말로만 일을 그만두고 싶다고 말했던 모든 것을 행동으로 옮기기로 결심하였다. 아프지 않았다면, 용기 내지 못했을 것이다. 


<브리즈번 시청의 크리스마스>


나는 처음에 유학원에 취직이 되었을 때, 정말 기뻤다. 영국 유학부터 시작해서, 동생의 유학까지 나는 정말 수십 군데의 유학원을 다니고, 박람회까지 다녔었다. 그런 경험이 있어서, 막연하게 호주에 와서 유학원 업계에서 일하면 재밌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처음 인턴기간 동안은 일하는 것이 즐거웠다. 그때 당시에는 나에게 부여하는 일이 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정직원으로 전환되면서, 업무의 부담감과 강도가 점점 높아져갔고, 회사 사람들의 말들이 내 마음을 쿡쿡 찔렀다. 그냥 한 귀로 듣고, 흘려보냈었으면 조금은 괜찮았을까?

하지만 내 성격상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한때는 그런 내 예민하고, 마음에 담아두는 이런 성격을 고쳐보려고 노력했지만, 결국에는 이게 나고, 나를 그런 상황에 놓이지 않게 하는 일이 나를 달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동안 나는 그런 상황 속에 나를 두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호주에 와서는 그게 되지 않았다. 


<한 여름의 크리스마스는 아직 나에겐 낯설다>


남편은 미국생활을 오래 경험한 덕분에 처음부터 나에게 절대로 해외에 와서 한국사람들과 일하지 말라고 했었다. 남동생도 똑같은 이야기를 해주었지만, 나는 듣지 않았다. 내가 경험해 보지 않고서 판단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사람은 호주 사람들과 일한다. 

나도 처음부터 그렇게 했어야 했는데, 나는 그들보다 영어가 잘 되지 않으니 지레 겁먹고 뒤로 물러난 것이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내가 한국에 있는 것인지, 호주에 살고 있는 것인지 분간이 잘 가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해외에서의 한국 회사에서 일하는 것은 사람의 성격에 따라서 다르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맞는 사람이 있고, 아닌 사람이 있고, 그뿐이다. 

정말 좋지 못한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우리 회사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다만, 나는 생전 수직관계가 있는 조직에서 일해본적이 없었다. 언제나 수평적이고, 항상 자신 만의 의견을 다양하게 낼 수 있는 조직에서 일을 해왔다. 

그래서 내가 이 회사를 다니면서, 내 스트레스가 발현한 시발점이 아니었을까 싶다. 회사 사람들은 나 빼고, 모두 오랫동안 이 업계에서 종사해 온 사람들이라 나의 업무 속도에 대해서, 끊임없이 조언과 충고를 해주었다. 하지만 그게 점점 빈도수가 높아져만 갔고, 내가 실수하지 않은 일들에 대해서도 나는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어느 순간이 되었을 때, 내가 왜 이러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곤 했지만, 나는 그런 내 마음의 목소리에 귀 기울지 않았다.  

그러자 어느 순간, 내 자존감은 하염없이 바닥으로 깎여 내려가고 있었다. 일과 사생활의 분리가 되지 못한 것이었다. 쳇바퀴 돌듯 이런 생각과 부정적인 감정들은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사람은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에 따라서,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참 상대적이다. 

똑같은 일을 해도 누군가는 좋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나쁘다고 생각할 수 있다. 

나는 그동안 일을 하면서, 누구에게 질타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오랫동안 해오던 일이었고, 전문적이었으며, 일에 대해서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조직에서 나 혼자만 전문적이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이게 나만 못난 사람처럼 느껴지곤 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되지 않으려고, 최대한 따라가려고 애썼지만, 긴장이 되었고, 점점 더 실수가 잦아졌다. 곧이어, 나를 자책하는 순간까지 왔다. 


정직원으로 전환된 이후부터 나는 이 회사와 맞지 않다고 생각하였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호주에 사는 동안 견뎌내서, 조금 더 성장하고 싶었다. 참는 게 나에게 득이 되리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내 오산이었다. 

몸의 여러 군데서 염증 반응이 일어났다. 이제는 눈도 잘 뜰 수 없을 정도록 눈에도 염증이 생겼고, 건강의 적신호가 온 것이다. 항생제를 몇 주간 복용한 후에 나는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말하였다. 

그렇게 나는 지금 퇴사한 지 이틀 째다. 


기분은 홀가분하면서도 시원 섭섭하지만, 동시에 앞으로 호주에서 어떻게 먹고살아야지 하는 걱정이 앞선다. 적지 않은 월세값을 감당하기에는 남편 혼자서 벌기에는 너무 빠듯했다. 

하지만 나는 그동안 고생한 나를 위해 두 달간의 유예기간을 주기로 했다. 

몸을 회복해야만 했다. 그래야 부정적으로 점철된 내 몸과 마음을 정화시킬 수 있을 것 같다. 


다시는 이런 상황에 나를 던져놓지 않을 것이다.  

언제나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니까. 

그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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