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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컨트리 쇼퍼 Nov 13. 2024

지금 나는 어디에 있는가?

[드라마 보조작가의 현실] 

이 이야기는 사실, 드라마 보조작가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는 오랫동안 글을 써왔다.

한 때는 글을 잘 쓴다고 자부해 왔지만, 지금은 자존감이 바닥으로 완전히 곤두박질쳐서, 

그런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저, 글을 쓰지 않으면 답답해서 미칠 것 같아서 쓴다.  




한국에서 다시 취업을 하고 일을 시작해서, 너무 좋았다.

이제야 드디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 같았고, 

정착하는 삶에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도망치듯 일을 그만두면서, 내 상태가 완전히 망가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이라는 것이, 이렇게 나의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그동안, 나는 정말 좋은 사람들과 내가 좋은 환경에서 일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을 시작한 지 한 달 차


아이러니하게도, 그토록 원하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지만, 

매일 같이 다시 해외로 나갈 시기를 노리고 있다. 

처음에는 이 업계에서 받는 월급에 비해, 너무도 많이 받았기 때문에 '돈'이라는 것에 현혹되었고, 

그리고 진짜 '드라마 판'에 들어왔다는 것에 도취되어 있었다.

호주에서 내가 원래 하던 일을 1년간 하지 않았기에 열정도 충만했었다. 


그런데, 일을 시작한 지 한 달째 되는 날, 

나는 '언어폭력'이라는 것이, 당사자한테, 얼마나 큰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당사자는 그 말들이 언어폭력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할 것이다. 사람은 너무도 상대적이기 때문에,)


그런 일이 내 일이 아닐 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결국에는 공황까지 오고, 우울증이 온다는 그런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내가 그 일을 겪고 나니, 결론적으로는 내가 그렇게 되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다 할 순 없지만, 그래도 처음에는 참아보자, 버텨보자 생각했다. 

내가 꿈꿔왔던 일이고, 보조작가에 대한 현실은 익히 들어봤기 때문에, 

어떻게든 버텨야지 다음 단계로 올라간다고 생각했다. 

이대로 포기하는 건, 나약한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꾸만 다시 해외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이렇게 한국에서만 살면, 주변 사람들 눈치를 보고,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일을 해야 하는가? 

남들이 볼 때는 해외로 나가는 것이 도피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해외에서 살았을 때는 이상하게 같은 '일'을 하더라도, 사람 눈치를 보지 않았다. 

아마도 문화 차이일 수도 있다. 


아무튼. 

우리는 원래, 작년 계획까지만 하더라도, 호주에서 바로 캐나다로 가기 위해, 

캐나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미리 받아두었고, 결국에는 다시 한국에서 살기 위해, 캐나다 비자는 포기했다.  


그런데, 그 선택이 지금은 과연 맞았나 싶다. 


잠수 사직 


글 쓰는 게 좋아서, 호주에 살면서도 드라마 공모전들을 포기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드라마를 써서, 공모전에 제출했다. 

하지만 결과는 최종심까지 들지도 못하고, 몇 년째 낙방하였다.

독립영화를 했고, 웹드라마를 찍었던 경력이 나의 이전까지의 경력이었다.

내 재능에 대해서 의문을 가졌지만, 글 쓰는 것을 포기하지 못해서, 

이대로 포기하면, 미련이 남을까 봐 포기하지도 못했다.  


내가 연출을 그만둔 이유는, 현장에 있으면서 경험했던 일들 때문에, 

나라는 사람자체가 현장과는 맞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내 성격상, 밤을 잘 새지 못하고, 나만의 루틴이 있는 삶을 좋아하는데, 영화나 드라마 현장은 그렇지 못하다. 

하지만 역시나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서 그런지, 난 다시 드라마 업계로 들어왔다. 

 

일주일 내내 쉬지 못하는 삶. 

퇴근이라는 게 없는 삶. 

해가 뜰 때까지 술을 마셔야 하는 삶. 


사람이 견딜 수 있는 정도는 각자마다 다르다. 

그 사람의 인생 데이터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그런 쪽에 취약한 사람이 있고, 

그걸 잘 버티는 사람이 있다. 


밤을 새우는 것도 좋아하고, 

사람을 좋아하고, 

타인이 하는 못된 말들을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러 보낼 수 있는 사람이고, 

술자리를 좋아하면 괜찮을 수 있다.  


하지만, 나라는 사람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난 단지 글을 쓰고 싶었던 것뿐인데, 막상 다시 드라마 판으로 들어오고 나니, 

내가 드라마 메인작가가 되어도 이런 삶을 견딜 수 있나 싶었다. 

가족과 소소하게 보내는 삶보다 스태프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야 하고, 

컴퓨터를 보는 날들이 많아야 하는 이 삶을 내가 견뎌낼 수 있을까?

이전까지는 막연하게 이 일을 너무 좋아해서, 그런 질문을 한 적이 없었다. 


보조작가를 하면서, 메인작가를 보며 느낀 점은, 성공한 작가들의 삶은 다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정말 일에 미쳐있다. 

그건 어떤 분야든 마찬가지다. 


난 내가 예전에는 성공한 삶을 원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옛날 어릴 때의 막연한 꿈이었다. 

어른이 되고, 현실을 겪으면서 나는 성공한 삶보다는 안정되고, 평화로운 삶을 원한다는 것이었다. 

우리 부모님도 그렇고, 남동생도 그렇고, 내 남편, 나까지. 

그냥 그런 사람이었다. 변하려고 노력할수록 나만 힘들어지고 스트레스만 받는다. 


나는 한때는 나에 대해서 정말 몰랐을 때는, 내가 정말 일에 미쳐있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회사를 다니는 동안에도 새벽까지 어떻게든 글을 썼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건, 나 혼자서 내가 쓰고 싶은 글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하지만 드라마란 자본이 들어가기 때문에, 제작사, 감독, 여러 이야기들을 함께 회의를 통해서 만들어 가야 한다. 끊임없는 회의. 결국엔 내가 가장 선호하지 않는 삶과 함께 동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과 계속 부딪혀야 한다. 

사람들은 나보고 성격 좋고, 싹싹하다고 하지만, 애쓰는 것이다. 

내 본성을 누르고, 사회화 돼서 살아가기 위해. 

사회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살 것이다. 




보조작가 일을 하면서, 가장 스트레스를 받았던 건, 생활패턴과 갈굼이었다. 

이 나이를 먹고, 내가 이렇게까지 갈굼을 당해야 하는 게 맞나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메인 작가를 무서워하다 못해, 두려워했다. 

숨이 턱 막히고, 심장이 너무 두근거려, 이게 공황인지도 몰랐다. 

끝없는 가스라이팅에 견딜 수 없다는 생각에, 정말 도망치듯이 그만두었다. 


새벽 3시 택시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다가 순간적으로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울감이 오랫동안 잠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으로 글 쓰는 걸 멈추고, 새로 다른 일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도착하고, 샤워를 하니, 새벽 5시였다. 

해가 떠올라도 잠이 오지 않았다. 


극심한 위경련 때문이었다. 

몇 시간 후, 아침이 되자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 생에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일을 했다. 

그날 통보로 일을 그만두겠다고 했다. 

메인작가한테 연락이 오는 것이 두려워, 먹지도 못하고, 잠도 못 잤다. 


무엇이 그렇게 나를 만들었는가?



보조작가 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물론, 그 일을 지금 잘 해내고, 힘들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다. 

무엇보다 메인작가에 따라서 보조작가의 일이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나 자신을 잘 알고, 나의 라이프 스타일과 이 일이 버틸 수 있을 만큼 맞는가에 대한 질문이 가장 필요할 것 같다. 

어쩌면, 경험을 하지 않고, 미리 단정한다면 후회가 될 수도 있다. 

어떤 선택이 맞는 삶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가장 중요한 건, 나를 잘 아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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