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들어온 걸 확인하자, 나도 모르게 미소가 흘렀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세상이 조금은 덜 차가워 보였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상인일까 싶어 허겁지겁 핸드폰을 들여다봤지만, 화면에 뜬 이름을 보고 나는 다시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왔다.
전진한.
전진만 하는 놈.
“뭐야, 이 시간에?”
“야, 돈 받았어? 진짜 이렇게 바로 들어오는 줄은 몰랐다. 대박이야. 완전 꿀알반데? 부작용 같은 건 없지?”
진한이었다.
이 아르바이트를 소개해 준 사람.
38일 동안 약을 먹고, 설문지를 채우면 2,700만 원을 받을 수 있다는 조건.
위험할 수도 있다는 설명은 들었지만, 솔직히 그다지 마음에 남지 않았다.
그보다 중요한 건 돈이었다.
생존을 위한 선택.
나는 그걸 이미 체념처럼 받아들이고 있었다.
‘설마, 별일 있겠어…’
전화를 끊은 뒤, 눈을 감았다.
조금이라도 자 둬야 했다.
몇 시간 뒤면 다시 일을 나가야 하니까.
하지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마치 눈을 감자마자 어둠 속에 고요하게 잠들었던 감정들이 하나둘씩 깨어나는 것처럼.
‘이런 게… 부작용일까?’
누군가 옆에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엄마가 나를 두고 떠난 이후로, 이렇게까지 외로움을 선명하게 느껴본 적은 없었다.
새벽의 고요 속에서, 그리움은 아주 오래된 파도처럼 느릿하게 밀려왔다.
나는 그 감정에서 도망치지 않기로 했다.
오히려 더 깊이 빠져들었다.
흐릿한 기억의 바닥으로 나를 던지듯이.
그러자 오래전 장면들이 스르륵 떠올랐다.
보름달이 유난히 컸던 어느 겨울밤.
깜빡이던 십자가 네온사인.
그리고, 내가 일곱 살이던 그날.
“돈 많이 벌어서 돌아올게.”
엄마는 그렇게 말하며 나를 보육원에 맡기고 떠났다.
나는 마지막 남은 풍선껌 한 통을 꺼내 먹으며 기다렸다.
껌이 다 떨어질 때쯤이면 돌아올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연결이 끊긴 사람처럼, 엄마는 완전히 사라졌다.
보육원 안엔 나처럼 남겨진 아이들이 하나둘씩 늘어났고,
부모들은 똑같은 말을 복사하듯 남겼다.
“엄마가 돈 많이 벌어서 꼭 데리러 올게.”
나는 울고 있는 아이들에게 그 말이 거짓일 수 있다고 말했다.
처음엔 나도 믿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말이 너무 익숙해서, 오히려 그 문장 자체가 슬퍼졌다.
어느 날, 원장이 나를 불렀다.
“정화야, 아이들한테 지금처럼 잘 설명해 줄 수 있겠니? 안 그러면 울음소리 때문에 보육원이 곧 무너질지도 몰라. 그러면 너도, 아이들도 갈 데가 없게 되잖니.”
그 말이 무서웠다.
그래서 더 간절해졌다.
나는 아이들을 설득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혔다.
그게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방식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때부터 달콤하지만 잔인한 말들을 건넸다.
거짓이란 걸 알면서도, 그것만이 누군가를 안심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었다.
그러다 보니, 나 자신도 점점 그 말에 설득되었다.
그렇게 나는 꿈을 꾸지 않는 아이가 되었다.
현실에 발붙이고 살아남는 법만을 익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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