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가면 안 되는겨

by 컨트리쇼퍼


배달 차를 반납하고, 시동키를 돌려 건넨 순간부터 마음이 어딘가 불편했다.

하지만 항상 하던 대로 점심 샌드위치를 챙기고 퇴근 도장을 찍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목소리가 나를 불러 세웠다.


“정화 씨, 사장님이 찾으세요.”


최 매니저였다. 그의 말에 몸이 순간 얼어붙었다.
사장이라는 단어에 떠오르는 얼굴이 없었다. 아르바이트 면접을 볼 때도 그를 본 적은 없었다.

왜 나를, 왜 지금, 갑자기?

사장실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안에 앉아 있는 사람은 내 또래로 보이는 젊은 남자였다. 예상과 달리, 권위보다 단정함이 먼저 느껴지는 인상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사장 뒤 벽에 걸린 액자였다.

[도전시 창업 지원 업체 인증]

잠시 진한의 얼굴이 스쳤다.

‘그도 성공했더라면, 이런 데 앉아 있었을까.’


그 생각을 겨우 떨쳐낼 즈음, 사장이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조용했고, 그래서 더 날카로웠다.


“정화 씨, 혹시… 그 회사 직원인 척하신 적 있으세요?”


순간,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 회사’라는 말이 무엇을 가리키는지조차 바로 연결되지 않았다. 머릿속이 멍해졌고, 기억을 더듬는 데 몇

초가 걸렸다.
보험회사.
도전 생명 보험.
복사기, 인턴, 지민 선배, 보험 서류.

퍼즐처럼 흩어져 있던 조각들이 하나의 그림처럼 합쳐졌다. 그러나 입 밖으로 나온 말은, 전혀 다른 방향을 향해 있었다.


“… 아뇨, 그런 적 없습니다.”


사장은 내 말을 믿지 않는 눈치였다. 눈매가 아주 조금 가늘어졌을 뿐인데도, 차가운 기류가 방 안에 번졌다.


“그쪽 회사에서 항의가 들어왔어요. 사칭에다 기물 파손, 복사기 고장. 영수증까지 첨부해서 손해배상 청구서가 왔습니다. 직접.”


무릎이 서서히 굳어갔다.

“죄송합니다.”

그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사장은 천천히, 그러면서도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책상 서랍에서 사진 몇 장을 꺼냈다. 내 무릎 위로 툭, 사진이 쏟아졌다. 손이 떨렸다. 하나하나 들춰보는 내 손끝이.

복사기를 조작하는 모습.
회사 복도를 걷는 내 뒷모습.
지민 선배에게 무언가를 건네받는 순간. 낯익고도 낯선 장면들이 찰나의 감정들까지 포착한 듯 생생했다.


'… 누가 찍은 걸까. 언제부터 나를 지켜보고 있었던 거지?’


사진보다 더 무서운 건, 이 모든 게 마치 시나리오처럼 짜인 느낌이라는 거였다.

사장은 마지막 한 장을 가리키며 결론을 내렸다.


“정화 씨, 저희 회사의 명예를 실추시킨 행동에 대해 더는 묵과할 수 없습니다. 오늘부로 해고 처리하겠습니다.”


이미 결론은 내려져 있었다.
그는 나의 해명을 들을 의사가 없었다.
아니, 처음부터 듣지 않으려 했는지도 모른다.

회사 건물을 나오는 동안에도 내 등 뒤가 간질거렸다. 누군가가 계속 나를 지켜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돌아볼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 다음 스케줄: 도전 독서실 야간 알바 ♬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화면을 켜자 스케줄 관리 어플이 자동으로 문구를 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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