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바다와 눈부신 햇빛이 모래알 위에 반사되고 있었다. 투명한 수면 아래로 햇살이 천천히 가라앉고, 밀려오는 파도 소리는 마치 누군가의 숨결처럼 부드럽고 규칙적이었다.
나는 그 한가운데, 낯선 해변에 혼자 앉아 있었다. 손에 모래가 가득 묻어 있었고, 발밑으로는 맑은 물이 아른거렸다. 어디서부터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환상인지 분간할 수 없는 그 풍경은, 너무 아름다워서 오히려 두려웠다.
‘여긴 대체 어디지…?’
뺨을 두어 차례 꼬집었다. 꿈이라면, 이렇게 아플 리가 없었다. 하지만 모든 감각이 너무 선명해서, 차라리 죽은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눈앞에 펼쳐진 해변은 내가 평소에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장소였다. 어쩌면 뉴스에서 본 적 있는 나린 해변일지도 모르겠다.
한때 ‘전설의 바다’라 불렸던 곳. 인류가 바다를 포기하고 난 후, 국가가 거액을 들여 인공적으로 재건한 단 하나의 해변. 일반인은 꿈도 꾸지 못할 정도로 입장료가 비쌌고, 이용 시간은 단 2시간. 나는 그런 곳에 와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이건 그냥 꿈이야. 잠깐 동안 꾼 이상한 환상. 곧 깨어날 거야.’
하지만 바다 내음과 파도 소리, 모래의 감촉은 믿을 수 없을 만큼 현실적이었다. 이토록 고요하고 따뜻한 세계가 실제로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위로처럼 느껴졌다. 그러는 사이, 저 멀리서 부유해 보이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해변으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들의 태도에는 자신만만한 여유가 스며 있었다.
그제야 나는 조금씩 이 해변이 나를 위한 장소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잠깐 도착한 시간은, 누군가의 유희가 시작되기 직전의 틈새였던 것이다. 나는 여기에 속하지 않는 사람. 얼떨결에 끼어든 이방인이었다.
그때 누군가 옆에 다가왔다. 따뜻한 목소리였다.
“무슨 생각해?”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상인이 앉아 있었다. 예전처럼, 아니, 어쩌면 더 다정한 얼굴이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상하게 낯설고 슬펐다.
“우리 여기 휴가 왔잖아. 이 정도면, 진짜 성공한 사람들만 누릴 수 있는 삶이야. 나도 언젠가는 이렇게 살고 싶었어.”
그가 웃으며 말할 때마다, 나는 이 풍경이 조금씩 이상해지는 걸 느꼈다. 왜 하필 그가 여기에 있는지, 왜 그가 내 손을 잡는 건지. 이 모든 게 마치 누군가 정교하게 설계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우리 소원 빌자. 앞으로 이렇게 살게 해 달라고.”
나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고, 눈을 감았다. 파도 소리 너머로 그가 조용히 물었다.
“정화야, 넌 무슨 소원 빌었어?”
나는 낮게 속삭였다.
“그냥…. 네 옆에 오래 있고 싶다고.”
그 순간, 상인의 표정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그의 손이 내 목을 움켜쥐었다.
“그딴 소원을 왜 빌어? 너는 아무것도 못 하잖아. 나한테 뭘 줄 수 있는데? 이번 시험, 나 꼭 붙어야 한단 말이야.”
숨이 막혔다. 발버둥을 쳤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그의 얼굴은 점점 낯선 형체로 일그러졌고, 나는 그 안에서 그를 더 이상 알아볼 수 없었다.
그 순간, 어딘가에서 알람이 울렸다. 핸드폰에서 나는 익숙한 진동. 정신이 아득해졌다.
눈을 떴을 땐, 해변은 사라지고 바다는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나 혼자였다.
“살려주세요! 여기가 어디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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