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떠보니 세상이 낯설게 느껴졌다.
익숙하지 않은 공기, 창문을 스치는 하얀 커튼, 그리고 병실 특유의 알코올 냄새.
한참 눈을 깜빡이 고난서야, 여기가 병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괜찮으세요?”
누군가의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내 귓가를 스쳤다.
흰 가운을 입은 의사가 내 눈을 들여다보며 말을 이었다.
“길에서 쓰러지셨던 거, 기억나시죠?”
기억을 더듬었다. 머릿속이 갈라진 빙판처럼 미끄러웠다.
의사가 내 손에 쥐어져 있던 작은 약통을 들어 보였다.
나는 몸을 일으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치매 치료제예요. 아니... 임상시험약이에요…”
그 말에 의사의 얼굴이 조금 굳어졌다.
그의 뒤에는 몇 명의 레지던트가 조용히 서 있었고, 내가 하는 말을 일제히 받아 적고 있었다.
의사는 고개를 갸웃하며 조심스레 물었다.
“이 약, 어디서 구하신 거죠? 성분도 이름도, 저희가 알고 있는 약들과 전혀 달라서요.”
그 순간, 본능처럼 손이 약통을 움켜쥐었다.
“이건… 제 거예요. 절대 안 돼요.”
숨이 가빠졌다. 손끝이 떨렸다. 의사는 잠시 말을 멈추고,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환자분, 저희가 약을 분석해 보려는 건, 치료에 도움이 될까 해서예요. 해를 끼치려는 게 아닙니다.”
옆에 있던 간호사가 내 어깨를 가볍게 눌렀다.
“분석 후에는 꼭 돌려드릴게요. 약속드릴게요.”
잠시 후, 눈꺼풀이 천천히 감기기 시작했다.
깊은 수면으로 빠져들기 전, 흐릿하게 들려오는 대화가 귀를 스쳤다.
“이 약, 환자의 몸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어요. 도전 국립병원이 또 이런 실험을… 말도 안 돼.”
‘이 약이… 정말 위험한 거였던 건가?’
의심과 두려움이 잠결에도 피처럼 번졌다. 그리고 나는, 또 한 번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눈을 떴을 땐, 머리가 둔하게 띵했다. 이곳이 어디인지 다시 한번 의심했다.
내 팔에 꽂힌 주사기를 따라 시선을 올리자 간호사가 웃으며 말했다.
“해독제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약에 생소한 성분이 있었거든요. 그걸 중화하고 있어요.”
해독제라는 말이 마음을 건드렸다. 무언가를 지워버리기 위해 다시 무언가를 넣어야 하는 기묘한 순환.
“근데… 왜 이렇게 자주 쓰러지는 걸까요?”
조심스럽게 물었다.
“몸이 많이 약해진 상태였어요. 약 성분이 원인일 가능성이 커요.”
간호사의 말은 분명했지만, 그보다 더 무거운 건 내 안에 일렁이는 어떤 무력감이었다.
‘그렇다고… 멈출 순 없어.’
나는 그 약이 주는 돈에, 의지하고 있었다.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건 생존을 위한 거래였다. 그러니 위험해도 멈출 수 없었다. 아직은.
잠시 후, 간호사가 말했다.
“보호자분이 와 계세요. 지금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보호자라는 말이 낯설었다. 내게 그 단어는 언제나 공란이었다.
그런데 커튼이 스르르 열리자, 낯익은 얼굴이 들어왔다. 지하철에서 만났던, 껌을 팔던 할머니였다.
“아가, 괜찮아졌구나. 다행이다.”
할머니는 조심스레 다가와, 내 이마를 짚었다. 그 손이 이상하게 따뜻했다.
“할머니… 여긴 어떻게 오셨어요?”
놀라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고요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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