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한 작별

by 컨트리쇼퍼


도전특별시에 돌아온 뒤, 그날의 기억은 자꾸만 나를 따라다녔다. 나는 일부러 임상시험 약을 조금 더 챙겨 먹고, 단기 아르바이트를 여러 개 늘렸다. 몸이 무거워질수록 마음도 둔해지는 걸 느꼈다. 그것만이 유일한 도피였다. 나는 내가 겁쟁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비겁하다는 걸 부정할 수 없었다. 진한에게 물어보는 일도 하지 못했다. 아니, 하지 않기로 했다. 차라리 아니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 누군가를 의심하는 일보다, 아무 일도 없었다고 믿는 쪽이 편했다. 진실을 마주하는 순간, 삶은 더 복잡해지고, 버텨야 할 이유는 점점 사라진다.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넌 비겁해. 넌 평생 그렇게 살다가 죽을 거야.’


익숙한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렸다.


‘그만. 그만 좀 해, 제발...’


배달 알림 소리에 놀라 급히 차를 갓길에 세웠다. 짧은 숨을 토해냈다. 요즘 들어 작은 소리에도 깜짝 놀라곤 했다. 이유는 알고 있었다. 다만 그것을 굳이 확인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배달 앱 화면을 보다 ‘도전 공무원 기숙학원’이라는 주소가 눈에 들어왔다. 잠시 손가락이 머뭇거렸지만, 결국 수락 버튼을 눌렀다.


‘일을 하자. 그러면, 괜찮아질 거야.’


곧장 카페로 갔다. 구석 자리, 햇빛이 들지 않는 곳에 몸을 붙였다. 카페 한쪽에 DJ 부스가 있었다. 관수였다. 그가 무표정한 얼굴로 음악을 틀고, 청취자들이 남긴 쪽지를 한 장씩 읽고 있었다.

사람들의 표정에는 불만이 가득했다. 특히 카페에서 공부 중이던 이들은 짧은 한숨이나 노골적인 눈초리로 그를 겨눴다. 관수는 아무렇지 않은 듯 쪽지를 집어 들고 마이크를 두드렸다.


“정화야, 너라도 좀 써줘라.”


나는 그에게 쪽지를 집어던졌다.


“야, 박관수.”


그는 웃으며 빈 쪽지를 펼쳤다.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종이를, 있는 것처럼 읽는 척했다.


“도대체 요즘 시대에 DJ 같은 걸 왜 하냐는 질문이 들어왔습니다. 흥미롭군요.”


그는 매번 이런 식이었다. 어떤 조롱에도 쉽게 상처받지 않는 척했고, 실제로 상처받지 않는 사람처럼 보였다. 마치 그가 짊어진 것을 유쾌함으로 포장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처럼.

나는 그를 이길 수 없었다. 아무리 애써도, 관수는 항상 자기 세계에 발붙이고 있는 사람이었다.


“여러분은 어릴 적 어떤 꿈을 꾸셨나요?”


그가 마이크를 잡고 묻는 순간, 카페 안은 묘한 침묵에 휩싸였다.


“지금의 나는, 그 꿈과 얼마나 닮아 있나요?”


누군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쏘아붙이듯 말했다.


“우리한텐 꿈이 아니라, 일과 돈이 필요해요. DJ 소음 때문에 공부에 집중이 안 돼요.”


관수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사장님께 건의해 주세요. 전 아르바이트생일 뿐입니다.”


배달 주문이 나왔다는 알림이 떴다. 나는 샌드위치를 가방에 넣었다. 그가 다시 다가왔다.


“정화야, 나 좀 괜찮았지?”

“...”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관수는 물러서지 않았다.


“우리 연습실에 놀러 와. 애들이 네 얘기 자주 해.”


나는 냉정하게 말했다.


“정부가 공연 연습도 금지하려 하잖아. 너희 하는 거 다 불법이야.”

“아직 법은 통과 안 됐어. 정화야, 너도 반대 운동에 나서면 좋겠어.”


나는 그 말이 허망하게만 들렸다.


“그렇게 한다고 뭐가 바뀌는데?”


그는 나지막이 말했다.


“바뀌어. 그리고 예술은 사라지지 않아.”


말끝을 흐리며 밖으로 나왔다. “음악이 흐르는 곳”이라는 카페 간판이 네온처럼 아련히 빛났다. 언젠가 그곳에서 함께 웃으며 노래하던 날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제, 그 시절은 나에게서 멀어져 있었다.

그는 아직 그곳에 머물러 있고, 나는 이미 그곳을 떠난 사람 같았다. 어떤 기억은 추억으로 남아야만 했다. 그래야 견딜 수 있으니까.




거리엔 아침부터 사람들로 가득했다. 공시생들, 정장을 입은 사람들, 그리고 그들 틈에 섞여 확성기를 들고 있는 청년들. 현수막이 이따금 바람을 타고 나부꼈다.


"예술 금지 법안 반대!"

관수가 말했던 그 시위였다. 한쪽에선 작은 공연이 열리고 있었고, 누군가는 팻말을 들고 묵묵히 걷고 있었다. 바닥엔 낡은 리플릿이 흩어져 있었고, 누구도 그것을 주워 들지 않았다.

신호등이 빨간불로 바뀌자, 사람들은 교차로를 건넜다. 나는 스쿠터 위에서 멈춘 채 그 장면을 지켜보다, 한 여성이 다가오는 걸 알아챘다. 그녀는 뭔가에 쫓기듯 급했고, 숨을 헐떡이며 내게 말을 걸었다.


“저기요, 혹시 여기 서명 좀…”


나는 잠시 망설였다. 이걸로 뭐가 바뀔까. 다들 바쁘단 이유로 외면하고 있었고, 나도 그 무리에 섞이고 싶었다. 어딘가의 기대를 짊어지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그녀가 내 손을 붙잡았다. 아주 단단하게.

신호가 곧 바뀔 것 같았다. 결국, 나는 펜을 들어 서명했다. 여자는 연신 “고맙습니다”를 외쳤다. 나는 말을 삼킨 채 스쿠터의 속도를 높였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도전 공무원 기숙학원' 익숙한 간판 아래에 멈춰 섰다. 샌드위치와 아메리카노를 들고 문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이곳에서 4년 반을 보냈다. 내가 스스로를 닫아걸고, 매일 시험지 위에서 허우적거리며 버텼던 시간들. 문득, 안쪽에서 새어 나오는 공기와 잉크 냄새가 기억의 이음매를 끼워 맞췄다.

문을 여는 순간, 오래된 시간의 문이 함께 열리는 것 같았다. 칠판 앞에서 강사가 문제를 설명하고 있었고, 교실은 조용히 집중된 기류로 가득했다. 그 속에서 누군가의 손이 핸드폰 위를 맴도는 모습이 보였다. 순간, 내가 나 자신을 목격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 시절, 나도 수업 중에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상인의 연락을 기다렸었다. 매일, 아무 소식도 없이 지나가는 알림 창을 확인했다. 화면을 켰다가 끄는 걸 반복하는 손끝에 불안이 쌓여 있었다.


“11번 같은 문제는 늘 출제되는 유형입니다. 쉬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90%가 틀리는 문제예요. 왜 그럴까요?”


김 강사가 교실을 천천히 훑다가, 나를 향해 시선을 멈췄다.


“저기, 핸드폰 보고 있는 안유정 수험생.”


옆자리 은서가 내 허벅지를 슬쩍 찔렀다.


“야, 너한테 하는 말이잖아.”


나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강사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단단했다.


“그렇게 집중하지 않으면, 아는 문제도 틀리게 됩니다. 반복되는 실수는 습관입니다. 우리 학원은 수업 중 핸드폰 반납이 원칙이죠. 안유정 학생은 왜 예외인가요?”

“죄송합니다…”

“저에게 사과할 일은 아니죠. 급한 일이라도 있었나요?”

“그냥… 연락을 기다리고 있어서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웃음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졌다. 비웃음인지 동정인지 알 수 없는 표정들이 내 앞에 줄지어 서 있었다.

강사는 말없이 내 시선을 피했다. 나는 핸드폰을 조용히 가방에 넣었다. 어깨에서부터 흘러내린 식은땀이 허리를 타고 흘렀다.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듯, 나는 다시 그 시절로 돌아온 것 같았다. 허탈하고 외롭고,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던 시절로.




기숙학원 전용 식당은 늘 그렇듯, 식판을 든 사람들로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나와 은서도 그 줄 한가운데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서 있었다. 은서는 유난히 입이 나와 있었고, 얼굴에 쌓인 불만이 눈썹 너머로 흘러넘치고 있었다.


“진짜, 김애리 완전 짜증 나. 왜 저렇게 사람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거야?”

“야…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그래.”


나는 목소리를 낮췄다. 하지만 은서는 오히려 더 큰 소리로 뱉었다.


“들으면 어때! 너는 왜 맨날 사람 눈치만 보고 살아? 그러니까 남자친구도 떠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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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곳에 나를 가두고 싶지 않습니다. 세계 곳곳을 거닐며, 나에게 가장 잘 맞는 땅을 찾고, 그곳에서 글을 쓰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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