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른도를 떠났던 그날의 기억이 파도처럼 밀려들 때면, 나는 시간이라는 것이 얼마나 불완전한 개념인지 새삼 깨닫곤 한다. 과거와 현재의 경계선이 흐려져서, 마치 두 개의 홀로그램이 겹쳐진 것처럼 현실이 일그러진다. 노인시에서 도망치듯 빠져나왔던 그때의 나와 지금 이곳에 서 있는 나 사이에는 분명 십 년이라는 시간이 놓여 있을 텐데, 그 간격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후회라는 감정은 참으로 기이한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더 자주, 더 선명하게 목구멍 깊숙한 곳에서 올라왔다. 할머니의 목소리가 여전히 귓가에 맴돈다. "정부가 우리를 속이고 있다"던 그 말, "우리는 그저 이용당하고 있을 뿐"이라던 그 경고가. 당시에는 할머니의 음모론 같은 이야기를 믿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할머니가 옳았다. 우리가 모르는 것들이, 그동안 속았던 진실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도전특별시. 한때 나에게는 유토피아나 다름없었던 그곳. 어리석게도 거기에만 목을 매달고 살았다. 멈춰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관성이라는 무서운 힘이 나를 이끌어 여기까지 데려왔다. 평생을 이런 식으로 살아왔으니, 다른 방식을 상상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결국 우리는 굴복했다. 아이를 낳지 않겠다던 우리의 소심한 저항은 무의미한 것이 되었고, 보육원을 떠난 지 이십 년 만에 다시 '도전 보육원' 앞에 서 있었다. 달라진 것은 우리뿐이었다.
건물은 기억 속의 그것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벽면은 더 희고, 창문들은 더 컸다. 하지만 공기 중에 떠도는 냄새만은 그대로였다. 소독약과 아이들이 뒤섞인 그 독특한 냄새가 나를 과거로 끌어당겼다.
"결국, 여기까지 왔네."
진한의 목소리에는 담담함보다 체념이 더 많이 배어 있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 안에서 뛰어놀고 있을 아이들의 얼굴이 눈앞에 떠올랐다. 우리의 결심이 과연 옳은 것일까. 묻고 싶었지만 답이 두려웠다. 우리의 삶은 이미 도덕적 경계를 벗어나 있었다.
"여긴 왜 이렇게 많이 달라졌지?"
"그만큼 시간이 흘렀다는 뜻이겠지."
시간이 흘렀다. 우리처럼, 이곳도 변했다. 하지만 변화된 외관 속에서도 스며드는 익숙한 기운이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과거의 홀로그램이 현재 위에 겹쳐져서, 어느 것이 실재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그때 젊은 여자가 나타났다. 완벽하게 계산된 미소를 띤 채로.
"환영합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이곳 도전 보육원의 원장, 류미입니다."
그녀는 부부들과 차례로 악수했다. 우리 차례가 되자 그녀의 눈빛이 묘하게 빛났다. 무언가를 이미 알고 있다는 듯한 눈빛.
"여기 보육원 출신인 안정화, 전진한 부부군요. 아이들에게는 더없이 훌륭한 롤모델이 되실 겁니다."
내 얼굴이 굳어졌다. 목소리가 점점 떨려왔다.
"우리 이름은 아직 소개하지 않았는데요."
원장이 서류를 내밀었다. 코끝을 살짝 웃으며. 그 서류에는 우리 사진과 '도전 보육원 출신'이라는 문구가 선명하게 인쇄되어 있었다. 정부가 나의 과거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다는 사실에 작은 분노가 일어났다. 진한이 내 손을 붙잡았다.
"정화야. 좀만 참아."
계획에서 벗어나면 안 되었다. 예측 불가능한 행동은 금기였다.
부부들이 유리창 너머로 아이들을 보았다. 마치 진열장의 상품을 고르듯이. 마음에 드는 아이와의 면담은 그저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했다. 모든 것이 지나치게 간단하고, 이상할 정도로 쉬웠다.
"이게 말이 돼?"
내가 진한에게 속삭였을 때, 옆에 있던 부부가 다가왔다.
"마음에 드는 아이를 찾으셨어요? 저희는 정말 못 고르겠더라고요."
'고른다'는 그 단어가 내 가슴을 찔렀다.
"아이를 '고른다'는 말 자체가 이상하지 않나요?"
목소리가 낮게 갈라졌다. 감정이 먼저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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