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변하는 발레 인생
결석 보강수업을 듣기 위해 다른 수업시간에 학원을 찾았다. 학원에 들어서니 성인반 수강생들의 공연 연습이 한창이었다. 얼마 뒤 공연장을 대관한 작품 발표회가 열리기 때문이었다. 유아, 전공반과 성인발레 고급반 수강생들이 한 두 작품씩 맡아 틈틈이 연습을 했다.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춘 중급반도 공연에 참여할 수 있었지만, 레벨 업을 한지 얼마 되지 않은 나와 같이 올라간 수강생들은 아쉽지만 함께 할 수 없었다. 공연장에서 하는 큰 무대는 전공자들이 소속된 큰 발레단에서만 하는 줄 알았기에, 범접할 수 없는 세상이라 생각했다. 수업 중 원장님이 공연연습에 대해 스쳐 지나가듯 하는 이야기만 들었지, 발레단 리허설 모습 같은 현장을 실제로 보니 더욱 신기했다. 연습을 하고 있는 분들도 취미로 발레를 시작하기로 마음먹고 한걸음 한걸음 연마하여 저 자리까지 올라가 무대에 서는 것이라 생각하니 더욱 멋져 보여 눈을 뗄 수 없었다.
보강을 마치고 집에 가려는데, 큰 상자에 담긴 무대의상들이 옮겨지고 있었다. 연습하던 사람들은 기쁜 마음으로 박스를 열어보았고 집에 가려던 나도 슬쩍 끼어서 구경을 했다. 반짝이는 큐빅들이 알알이 박혀있는 형형색색의 옷들을 걸치고 거울을 보는 사람들을 보며 ‘저 자리에 함께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원장님과 선생님들은 연습실 한편에서 의상을 확인하고 무대를 어떻게 준비할지, 또 다른 필요한 소품들은 없는지 수강생들과 상의를 하였다. 다 같이 모여 함께 한 무대를 위해 준비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부러웠다. 아이 낳고 일을 그만두기 전까지는 소속감에 대해 얼마나 소중한지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데, 전업주부가 되어보니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한 가지 일을 위해 모이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알게 되어 더 부러웠다.
다음 수업을 가기 전까지 육아와 살림을 하면서 마음이 붕붕 떠있었다. 공연을 준비하던 모습들이 눈에 아른거리고 나도 해보고 싶다는 욕망이 점점 커져 뚜렷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업 날 학원에 일찍 도착하여 원장님께 공연을 함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어보았다. 수강생들이 거의 한 해 동안 준비한 공연이라 내 후년을 기약하자고 하셨다. 원장님도 학원을 열고 처음 준비해 보는 공연이라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 완성도 높은 공연을 위해 혹독하게 연습했던 것 같다. 그 사이에 부상을 입고 회복하여 다시 준비하는 수강생들도 있었고, 나름의 고충들이 많아 매 해 발표회를 열기는 힘들 것 같다 했다. 내 치솟는 열정을 읽으셨는지, 발표회를 위해 맞춘 단체 티셔츠를 주셨다. 발레리나가 그려진 티셔츠였는데, 입기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다음 공연즈음이면, 아이도 커서 어린이집에 갈 나이이니 공연준비에 매진할 시간도 충분할 것 같았다.
생각이 꼬리를 물어 그녀는 어느새 상상 속 무대 위에 서 있었다.
발표회 날짜는 다가오고 학원은 더욱더 분주해졌다. 문 앞에 붙은 큰 포스터가 학원생들을 맞이했고, 초대장도 받아 아이를 남편에게 맡기고 보고 오면 딱이다 싶었지만 슬프게도 가족행사와 날짜가 겹쳐서 발표회에 갈 수 없었다. 발표회 후 공연을 보지 못한 수강생들을 위해 수업시간에 촬영된 무대를 보여주셨는데, 깜깜한 무대 위 하나둘씩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등장하여 동작을 해내는 사람들이 정말 멋졌다. 백스테이지 영상에서 느껴지는 그들의 긴장감이 나에게도 느껴졌다. 커튼콜에서 원장님을 비롯한 선생님들과 함께 무대를 마친 사람들의 인사도 큰 감동을 주었다. 마지막 인사를 하는 순간 얼마나 뿌듯했을까. 객석에서 박수를 치며 함께 하지 못해 아쉬움도 컸다. 그들을 보며 더욱 뚜렷한 목표가 생겨서 그런지 발레가 재미있고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해내고 싶은 무언가가 생겼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설레고 좋았던 것 같다. 부푼 꿈을 마음 한편에 두고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한 남편이 할 이야기가 있다며 나를 식탁으로 소환했다. 평소와는 다른 그의 표정을 보고 가벼운 일은 아니라는 것을 예상했다. 갑자기 제주도를 가자고 했다. 처음엔 여행 가자는 줄 알고 해맑았다가 이직이라는 사실에 머리가 띵했다. 갑자기 훅 들어온 제안이지만 귀신에 홀린 듯 흔쾌히 승낙해 버렸다. 울산에 온 지 얼마 안 되었고 솔직히 ‘가면 가는 거지 뭐...’하며 아무 생각이 없었다.
“아 잠깐만, 내 발레는!!!!!”
그날 밤, 자려고 누웠던 나는 벌떡 일어났다.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이니 발레 학원이 있을 거라며, 집 구하며 다닐 만한 학원도 알아보자며 황급히 나를 재워버렸다. 아마 뒷북치는 내 모습을 그는 충분히 예상하고 있던 것 같았다. 큰 갈등이 일어나야 할 것 같은 거주지 문제인데… 이렇게 얼레벌레 또 결정이 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가족은 집을 구하기 위해 짐을 꾸려 제주로 향했다. 남편의 직장 부근 부동산을 모두 가봤지만 매물이 없어 집을 볼 수 없었다. 제주 특성상 12월~1월쯤 매물이 쏟아지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허탕을 치고 나니 막막할 뿐이었다. 마냥 길을 배회할 순 없으니 우선 발레학원부터 찾기로 했다. 검색창에 검색하니 학원이 세 곳 정도 떴다. (7년 전쯤이라 발레학원 정말 없었다.) 다 전화를 돌려보니 두 곳은 통화가 안되었고, 한 곳은 성인반은 운영하지 않는다고 했다. 뭐가 이렇게 되는 게 없나 하던 차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전화받자마자 다짜고짜 깡깡한 목소리로 “내놓은 집 언제 보러 올 거예요?” 하였다. 부동산 전화는 남편 전화로 해서 나한테 그런 전화가 올 일이 없었다. 부재중이었던 학원인가 싶어 “혹시 아몬드 발레학원인가요?”라고 물었다.(이렇게 물어본 게 문제의 시작인 것을 난 이제야 알았다.) 그러자 상냥한 목소리로 바뀌며 상담전화인 줄 몰랐다고 말했다. 지금 내 상황을 설명하자 오전에 성인반 클래스가 있다며 문자 남길 테니 이사 후에 한 번 오라고 하였다. 그렇게 통화를 마치고 다시 집을 찾기 위해 온종일 배회했고, 남편의 이직회사 동료의 찬스로 간신히 하나 나온 매물을 보고 선택권도 없이 집을 결정하게 되었다. 집을 구한 것보다 제주에도 다닐 발레학원이 있다는 사실에 더 안도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이삿날을 앞두고 하는 발레 수업은 하루하루가 소중했다. 원장님의 이야기에 더욱 귀를 기울이게 되고, 온 마음을 발레에 쏟게 만들었다. 그 마음을 원장님도 아셨는지 수업날 상관없이 언제든 자주 와서 수업을 들어도 좋다고 하셨다. 비록 짬이 나지 않아 그럴 순 없었지만 말씀만이라도 너무 감사했다. 이사 전 날 마지막 수업, 모두들 그대로인데 나만 이 자리에 없다는 생각을 하니 수업에 집중하기 힘들었다. 시간이 흘러 수업시간이 끝나가고 있다는 사실에 초조해 자꾸 시계를 보게 되었다. 땀범벅인 채 마침인사를 하고 기념으로 원장님과 수강생들과 다 같이 사진을 찍었다. 발레와 함께하며 힘든 순간들을 위로받았던 이 공간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자,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내 눈물을 보고 원장님도 같이 눈시울을 붉혔다. 이사 가도 꼭 한번 다시 오라고, 가서도 발레 놓지 말고 계속 하라며 응원과 위로를 해주셨다. 첫 발레학원의 마지막 수업을 마무리하고 제주로 이사를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