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발레하는 쿠크다씨

요상한 상담

by 쿠크다


섬으로 이사를 하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짐정리를 마치고 일상을 재정비를 하자마자 집 구할 때 받았던 발레학원 문자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오늘 오후 성인반 수업이 있다며 올 수 있음 오라고 하였고, 남편이 일 시작하기 전이라 마침 시간이 맞아 수업에 가겠다고 했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아몬드 발레학원’을 네비로 찍어 출발했다.


지도에 아몬드 발레학원은 차로 10분도 안 걸리는 거리에 있어서 쉽게 찾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내비게이션이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계속 말하는데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골목 한편에 차를 대고 통화목록을 찾아 다시 전화를 걸었다. 학원을 찾을 수 없다 하니, 시야에 전혀 보이지 않는 가게 이름만 연신 외치고 있었다. 답답했던 남편은 운전대를 바꿔 잡았고, 나는 조수석에서 다시 학원을 찾기 시작했다. 같은 골목을 한 바퀴 더 돌자 둘 사이엔 예민한 공기가 흐르고 아이도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혼자 찾는 게 마음이 편해 길에 내려주고 집에 가라고 했다. 남편은 아내 혼자 내려놓고 가는 게 걱정인지 초행길이니까 조심하고,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전화하라 신신당부를 하며 돌아갔다.


나는 다시 지도 앱을 켜고 다시 학원을 찾기 시작했다. 도보로 길을 찾으니 바로 학원을 찾을 수 있었다. 학원이 번화가 대로변 건물 꼭대기층에 위치하고 있었고, 학원 간판 주변에 다른 간판이 빼곡해 눈에 띄지 않았다. 우리는 건물 뒷길 골목에서 계속 헤매고 있던 것이다. 이제야 찾았다는 안도감과 함께 터벅터벅 계단을 올라갔다. 학원 안에서는 전공생처럼 보이는 학생들의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딱 봐도 발레를 오래한 듯한 모습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뚫어져라 수업을 보고 있는데, 선생님으로 보이는 사람이 다가와 “어떻게 오셨어요?”하고 물었다. 방금 전까지 계속 통화했던 사람이라고 나를 소개했더니 선생님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받은 전화가 없다고 했다.


“여기로 전화한 거 맞나요?”

“방금 저랑 계속 통화하셨는데, 위치 가르쳐 주셨잖아요.”

“제가요? 저 그런 전화받은 적 없어요. 계속 수업하고 있었어요.”

나는 입구로 나가 학원이름을 확인했다. 분명 이름도 아몬드 발레학원이 맞았다.

“선생님 혹시 휴대폰 뒷자리 **** 아니에요?”

“아니에요. 도대체 누구랑 통화를 하신 거예요?”


순간 등골이 오싹했고 대 혼란에 빠졌다. 일단 여기가 발레학원이긴 하고, 수업하는 모습을 보고 나니 마음에 들어 상담을 하고 싶었다. 성인반 수업시간은 밤 여덟 시부터 아홉 시 반까지였다. 이제 막 이직한 남편에게 부담이 될 것 같아 선뜻 다니겠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시간 맞춰보고 가능하면 연락을 드린다 말하고 내려오며 휴대폰 통화목록을 열어 아까 통화했던 번호로 다시 걸었다. 우선 통화한 사람의 실체를 밝혀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신호음 가기도 전에 전화를 받은 사람은 대뜸 이렇게 말했다.

“왜 안 오세요? 이제 곧 수업 시작하는데.”

“아몬드 학원에서 나오는 길이에요. 여기 아니라는데, 누구세요?”


“일단 여기로 오세요. 길 못 찾으시면 차를 보내드릴게요. 앞에 뭐가 보여요?”

이 깡깡거리는 목소리. 분명 집 구하러 왔을 때 내가 아몬드 발레학원이냐고 물었을 때 맞다고 하고 통화한 사람이었다. 원장님으로 추정되는 사람은 횡설수설하며 질문 폭격을 하였고 나는 얼떨결에 질문에 대답을 하고 있었다.

“여기 관공서 앞인데... 아니 이보세요. 제가…”

“아아~ 관공서 앞. 땅콩 발레라고 쓰인 노란 차 하나 갈 거거든요. 그거 타고 오세요.”

뚝. 하고 전화가 끊어졌다.


이상함을 직감하고 남편에게 바로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있었다. 그때, 교차로 모퉁이로 ‘땅콩 발레’라고 쓰인 노란 스타렉스가 섰다. 조수석 창문을 내리고 아저씨가 “발레학원 가시죠?” 하고 내게 물었다. “하... 여보, 진짜 학원차가 왔어. 이거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어.” 노란 차 뒤로 차는 밀리고 있고 난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일단 안 탄다 하고 그냥 와.” 남편도 ‘발레고 뭐고 빨리 집에나 와라.’ 하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차에서 아저씨는 “얼른 타세요. 수업 시작할 거예요.”라고 부추겼다. 수업. ‘진짜 수업이 있긴 있는 거구나.’ 수업이라는 소리에 일단 가보자 마음을 바꾸었다. 여러 학원을 둘러봐야 한다면, 한 번에 다 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나만의 계획이었다.

“여보 일단 차 탈고 가볼게요. 차 번호 카톡으로 보낼 테니, 내가 집에 안 온다거나, 무슨 일 생기면 바로 경찰에 신고해요.” 남편에게 신신당부하며 노란 스타렉스에 올라탔다. ‘시사프로에 나오는 범죄 같은 거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도 잠시. 차에 탄지 5분도 채 되지 않아 학원에 도착했다. 땅콩발레학원은 아몬드 발레학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했다.


건물의 큰 창문에서 노란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학원으로 들어가니 큰 연습실에 사이사이 자리 잡은 수강생들이 앉아있었다. ‘진짜 학원이긴 하네.’ 안도하며 전화했던 사람을 찾았다.

“왔어요? 이리 들어와요.” 목소리를 따라 원장실이라 쓰인 곳으로 들어갔다. 통화했던 사람은 이 학원의 원장님이었다. 첫인상이 독특했다. 이제까지 본 발레 선생님들은 누가 봐도 발레를 전공한 사람처럼 보였는데, 화려한 무늬 옷에 운동 좋아하는 우리 엄마 친구 같았다. 경계를 하며 원장실을 쓰윽 훑어보았다. 원장실이라기보다 앤틱 소품샵 같은 가구들과 소품들이 즐비했다. 토슈즈보다는 핼러윈 호박이 어울릴 법한 장소였다.


“이사 오셨구나. 새로 적응하려면 운동 같은 거 꼭 해줘야 해. 그냥 가만히 있음 우울해서 못살지. 저녁 여덟 시 반부터 한 시간 동안 수업해요. 사람들이 많아서 금세 친해질 거예요. 아침수업은 열 시 반. 일주일에 세 번인데 오고 싶을 때 시간 맞춰 오면 돼요.” 전에 통화로 이 동네에 새로 이사 온 것을 알아서인지 나를 몇 번 만난 사이처럼 편하게 대했다. 그리고 내가 입을 떼기도 전에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쉴 새 없이 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말을 끊어야겠다 싶었다.

“저녁은 아직 남편이랑 시간조율이 안돼서 확답이 어렵고요. 아침에는 애기 때문에 어려울 것 같아요.”

내 대답이 떨어지자마자 원장님이 다시 속사포로 말을 시작했다.

“애기? 데리고 와요. 테라스에서 내가 놀아줄게. 아무 때나 와요. 토요일에도 괜찮고. 지금 수업도 듣고 가요. 그래 결제는 현금으로 할 거예요, 카드로 할 거예요?”

들을수록 신뢰도가 떨어지는 기분이 들어 수업해 보고 결정한다고 말했다.

“그래요. 수업 듣고 해요. 바로 시작할 거니까 들어가요.”


연습실로 들어가서 수업을 들었다. 수업 내내 무슨 정신으로 차를 타고 여기까지 와서 이러고 있는지 모르고 있었다. 수업은 ‘바’보다는 매트 위주의 수업이었다. 발레를 해서 즐겁다기보다는 이사하느라 오랜만에 몸을 움직여서 엔돌핀이 도는 기분이었다. 하루만 더 생각하고 연락드리겠다고 하며 수업료를 지불하려고 원장님에게 다가갔다.

"오늘은 그냥 가고요. 생각해 보고 내일 연락 줘요.”

질문과 이야기 폭격을 하며 붙잡을 줄 알았던 원장님은 예상과 달리 쉽게 보내줬다. 학원을 나오면서도 기묘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지도 앱을 켜서 골목골목을 두리번거리며 이사한 집을 찾아갔다. 처음 걷는 길에 보이는 풍경, 오늘 벌어진 모든 일이 귀신에 홀린 것 같았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남편에게 발레학원에서 있던 일을 마저 이야기했다. 그는 많이 이상한데 그러고 그냥 왔냐며 걱정의 눈초리를 보냈다. 사실 그의 말이 맞다. 학원 이름까지 숨겨서 수강생을 만들고 싶었던 걸까. 아님 착각한 것일까. 원장님의 행동에 대한 모든 의문을 하나도 풀지 못한 채 돌아왔다. 잠자리에 누워 똑 부러지게 요목 조목 따지면서 물어보지 못하고 엉뚱하게 수업만 듣고 온 상황을 자책했다. 학원 상담가는 일이 이렇게 복잡해질 것이라고 생각도 못했다. 생각이 꼬리를 물다 지쳐버렸고 내일의 나에게 고민을 미뤘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는 거 아닌가. 일단 땅콩 발레학원은 제쳐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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