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떠보니 무대 위
탐탁지 않은 감정으로 다니기 시작했지만, 땅콩 발레만의 매력은 충분히 있었다. 우선 학원을 오가는 길이 싱그러웠다. 저층의 건물들과 공원 사이의 길을 걸어가면, 축 쳐졌던 심신이 활짝 피어나는 기분이었다. 육아에 지쳐 어두운 저녁 울산 도심 속 길을 걸을 때와 다른 또 다른 해방감과 즐거움을 선사했다. 또 수업 일정을 사정에 맞춰 다닐 수 있어서 좋았다. 따로 보강신청을 하지 않아도 결석하면 언제든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원장님만의 운동 사이클과 수업은 발레의 비중이 적을 뿐 충분히 몸을 많이 움직일 수 있었다. 만약 울산에서 발레를 만나지 않고 처음 이 학원을 만났다면 만족스럽게 다녔을지도 모르겠다. 모자랄 것 없어 보이지만, 이상하게도 수업을 마치면 마음은 헛헛했다. 운동 끝나고 지쳐서 그런 것도 아니었다. 발레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걸음을 제대로 걷지도 못할 정도였으니까. 되려 그때는 몸이 조각나는 느낌이어도 마음이 시원하고 후련했다.
가끔 아이를 재우고 휴대폰으로 다녔던 발레학원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새로 올라오는 사진들과 사람들의 근황을 보며 과거를 떠올리고 추억했다. 추억여행을 하며 지금의 감정을 추스르고 싶었지만 사진들을 볼 수록 학원을 계속 다니고 있는 분들이 부러워 질투도 나고 속상하기도 했다. 사진 속 사람들과 함께 발레를 하고 싶은 마음이 점점 커지고 함께 할 수 없는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발레에 대한 그리움으로 시작해 제주에 오게 된 이 상황을 속상해하다 잠들었다. 흐르는 강물에 떠다니는 낙엽처럼 살던 사람이라 원하는 걸 하지 못하는 슬픔이 얼마나 크고 힘든 것인지 몰랐다. 이렇게 짧은 시간만에 발레가 내 안에 큰 존재로 자리 잡고 있는 줄도 몰랐다. 더욱 슬픈 건 그곳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 지금의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밤마다 질척거리는 것도 한계였다. 눈시울을 붉히며 학원 홈페이지에 그때 그 시절에 대한 고마움과 그리움을 가득 담아 글을 썼다. 글을 쓰고 나니 현실을 받아들일 용기가 조금씩 생겼다.
실연 후 새출발 하는 사람처럼 땅콩 발레학원에 정을 붙이려고 노력했다. 지금 이 학원이 아니었다면 낮에도 과거에 갇혀 질척거리고 있었을게 뻔하다. 그런 측면에서 이 정신없는 수업은 오히려 우울감에 빠지지 않게 도와주었다. 지금 나는 발레를 하고 있다… 최면을 걸고 다니니 적응이 한결 수월해졌다. 이전 발레학원에서 기초를 단단하게 다졌던 것도 큰 도움이 되었다.
원장님은 공원 러닝을 다녀오지 않은 날엔 함께 운동을 하지 않고, 스피커 옆 의자에 앉아 해야 할 동작을 말로 지시하셨다. 박자가 빨라질 일이 없어서 좋았지만 그러다 보니 내가 시범조처럼 앞에서 동작을 이끌게 되었다. 특별히 어려운 동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큰 부담은 없었으나, 일이 생겨 학원을 가지 않으면 수업 시간 내내 [언제 와요?] [쿠크다씨 지금 수업하고 있어요. 얼른 오세요.] 문자 독촉이 이어졌다. 결석이라고 분명 말씀을 드렸음에도 말이다. 학원생을 챙기는 문자인지, 시범조를 찾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두 달 정도 다니니 이해할 수 없는 포인트를 그러려니 하게 되었다.
어느 날 예고도 없이 한 달 뒤에 정기 발표회가 있다며 수업 중간에 공연연습을 시작했다. 무대의 맛을 봐야 한다며 수업 듣는 사람들 모두 발표회 참여를 권유했다. 갈망하던 무대의 기회가 나에게도 이렇게도 찾아오는구나 하며 심장이 두근거렸다. ‘어떤 음악일까. 몇 분정도의 음악일까. 동작은 어렵지 않을까..’ 하면서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곧 공연 연습이 시작되었다. 제목은 [발레 클래스 중에서]였다. 매트 운동 끝나고 하는 짧을 바 순서를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늘 하던 순서라 특별히 외워야 할 동작은 없었다. 공연 의상도 본인이 가지고 있는 검은 레오타드와 스커트였다. 화려한 의상에 난이도 있는 동작들을 새로 배울 기대가 가득하여 아쉬움도 컸다. 한 달 뒤에 하는 공연이니 어쩌면 이게 맞는 것일지도. 그러려니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
한 달 동안 일주일에 세 번 정도 수업을 마치고 20분 동안 발표 연습을 하였다. 순서는 대부분이 숙지를 하여 동작만 잘 맞추면 되었다. 예전 발레학원의 공연준비와 많이 달랐다. 밤늦게까지 동선을 준비할 일도, 무대의상을 상의할 일도 없었다. 예전 학원에선 연습을 너무 많이 해 다치는 사람도 있었는데, 함께 무대에 서는 사람들과 통성명 조차 하지 않았다. 이대로 공연이 진행된다는 게 신기했다. 날짜가 다가오니 하나둘씩 발표회 날 일정이 생겼다며 빠지고 나를 포함한 다섯 명 남짓의 사람만이 남았다. 눈치게임에 실패하여 끝까지 함께하게 되었다. 팸플릿을 보니 공연의 구성은 나름대로 알찼다. 유아반 아이들의 무대, 초등학생들의 무대, 전공반 아이들의 무대, 강사님의 독무대 그리고 그 사이에 성인반의 무대가 살짝 끼워져 있었다.
공연 당일 아침, 무대화장을 하러 학원으로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아이들과 나란히 앉아 화장을 받았다. 속눈썹을 많이 붙이고 눈을 강조하는 발레리나들이 하는 화장이었다. 거울 비친 모습을 보니 ‘진짜 무대를 오르긴 오르는구나.’ 하며 실감이 났다. 추가로 모여 연습도 하지 않았다. 공연 시작 30분 전에 공연장으로 오면 된다고 하셨다. 무대화장을 한 채 밖을 다닐 수 없어 집안에만 머물렀다. 해가 저물고 시간 맞춰 공연장에 도착한 우리 가족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제법 규모가 큰 야외무대에 엄청난 조명과 심지어 아나운서까지 섭외가 되어있었다. 아이들의 리허설이 있고 성인반의 리허설이 있었다. 오고 가는 동선과 각자 서 있는 위치를 확인하고 바로 무대아래로 내려왔다. 무대에 오르기까지 서로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끼리 대기실에서 멀뚱하게 서있었다.
대기실에 어색함으로 차고 넘쳐흐를 때쯤, 원장님이 “성인반 나오세요!!” 하며 사람들을 불렀다. 나를 필두로 성인반 수강생들이 한 줄로 줄지어 초등학생들의 무대를 뒤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뒤를 보니 유아반 강사님이 검은 레오타드를 입고 서 있었다. 중간에 탈주한 사람들 머릿수를 채우려고 공연에 함께하는 것이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밤바람이 부는 넓은 무대 위에 서 있었다. 음악이 흐르고 잠시 머릿속이 새하얘졌지만 빠르게 정신을 차리고 차근차근 연습한 대로 동작을 했다. 관중석에 사람들이 제법 앉아있는 것 같았지만, 쎈 조명 때문인지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자신감이 붙었다. 비록 큰 역할의 무대는 아니더라도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에 집중하여 무대에 몰입했다. 그렇게 짧은 무대가 끝이 났다. 대기실로 돌아오니 남편과 아이가 꽃다발을 들고 반겨줬다. 꽃다발을 받을 정도의 공연 이 아니어서 머쓱했지만, 가족들의 축하에 기분이 좋았다. 발표회 마지막엔 커튼콜처럼 학원생들 모두가 무대로 올라가 관객들께 인사를 하며 공연이 끝이 났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3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눈부신 조명과 무대 위에서 느껴지는 시원한 바람을 자꾸 생각났다.
아무한테도 말 못 했지만 제대로 준비가 안 된 성인반을 끼워 넣어 공연하는 걸 무대 올라가기 직전까지 이해할 수 없었다. 막상 해보니까 원장님이 강조한 무대의 맛이 무엇인지 약간 알 것 같았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속 빈 강정 같았다. 아이들도, 전공생들도 연마한 스킬을 보여준다기보다는 화려한 무대와 치장만으로 무마하려는 느낌이었달까. 다 덜어내고 동작 하나하나에 더 포커스를 뒀다면 어땠을까 (그랬으면 나는 무대 위에 올라가지도 못했겠지만) 아쉬움이 남았다. 이번 기회로 공연을 보는 또 다른 시선을 얻었고, 연습으로 쌓인 내공이 발레에서 얼마나 빛을 내는지 깨달았다. 여기서 발레를 제대로 배울 수 있을까 의심만 커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