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발레 하는 쿠크다씨

갑자기 소개하는 내 친구

by 쿠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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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를 통해 우연하게 만난 소중한 인연을 소개하려고 한다.

짧게 그녀를 소개하자면, 제주 동쪽 마을에서 나고 자랐고 성인이 된 맏아들, 둘째 딸, 열한 살 늦둥이 아들이 있다. 책과 자연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우린 대략 열다섯 정도 나이 차가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라 부른다.


우리가 만난 건 땅콩 발레를 다니고 있던 8년 전이었다. 울산 발레학원의 그리움이 뭉게뭉게 피어날까 봐 마음속 무쇠뚜껑으로 누르고 또 누르며 발레학원에서 받았던 티셔츠만 마르고 닳도록 입고 다녔다. 검은색 큼지막하게 아라베스크를 하는 발레리나가 그려져 있는 반팔 티셔츠다. 그 티셔츠를 입으면 ‘지금 하고 있는 발레가 맞는 걸까?’ 하는 의문에 예전 원장님이 ‘잘하고 있으니 계속해요.’라고 대답을 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학원을 다니던 무더운 주말이었다. 아이의 여름감기로 한동안 평일에 학원에 가지 못했다. 감기가 많이 나아져 콧바람을 쐴 겸 유모차에 태우고 토요일 오전 수업을 듣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뜨거운 날씨에 유모차를 끌고 길을 걸으니 목이 말랐다. 가는 길에 있는 단골 카페에 들어가 아이스 아메리카노 하나와 아이가 먹을 아이스크림 하나를 주문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카페 한편에 남자아이와 엄마가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다. 더위에 지쳐 멍 때리고 있던 내게 아이 엄마는 “발레를 하시나 봐요?” 하고 물었다. 깜짝 놀라 “제가 발레 하는지 어떻게 아셨어요?” 하고 물었더니 티셔츠에 발레리나가 그려져 있어서 알았다고 답했다.

나는 “옷에 발레리나가 그려져 있는 걸로 발레 하는 걸 아시다니, 눈썰미가 좋으시네요.”하며 발레에 대한 애정을 알아주는 것 같아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딸아이가 발레를 하거든요. 잠깐 여기 앉으실래요?”하는 아이 엄마의 합석 제안에 할 일도 없겠다 흔쾌히 응했다. 같이 앉아있는 아이도 동갑이었고, 딸아이는 발레를 정말 좋아해서 전공을 하고 싶어 해 고민이 많다고 하였다. 그렇게 아이 엄마와 발레학원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근처 공원에 가서 아이들끼리 노는 걸 지켜보며 대화를 나누다 헤어질 때 연락처를 공유했다. 이것이 그녀와의 첫 만남이었다. 연락처를 나누고 아이들끼리 시간을 보낼 명목하에 가끔 만났었다. 그러다 그녀의 막내가 내 아이와 같은 어린이집을 가게 되었고, 그 이후 그녀와 나 둘만의 시간이 많이 만들어졌다. 시간이 맞아 계절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마을이나 오름을 자주 갔었다. 그녀는 해설사처럼 지역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가득 들려줬다. 이 섬에 까치가 어떻게 살게 되었는지. 눈에 보이는 건물들이 예전엔 어떻게 쓰였는지.. 등등. 그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그녀는 나를 통해 과거를 추억했고 난 그녀를 통해 제주에 대한 애정을 키워갔다. 그러다 보니 서로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우리는 서로의 복잡하고 다양한 고민들을 한결 가볍게 만들어준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었다.

어느 날 난 시가에 갈 때 삼시 세끼 설거지하는 게 부담이라 일정이 잡히면 설거지 몇 번 하는지 먼저 세어본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녀는 가서 괜히 할 거 없으면 실없는 소리나 하게 된다며, 마음 수련 왔다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고 조언해 줬다. 그 말을 듣고 그릇을 닦으며 마음 수련하러 왔다 최면을 걸었다. 시간이 지나 효리네 민박을 보고 시가에 갈 때 민박집에 고용된 ‘아이유’가 되었다 자기 최면을 걸었었다. 뭔가 청초한 아르바이트생이 된 느낌이 들어 울적했던 기분이 나아졌다.

그녀는 밤마다 아이들이 야식을 요구해서 고민이었다. 출출할까 싶어 라면을 끓여줬는데 저녁 식사 다 끝나고 당연하게 이것저것 음식을 요구해서 부담이 크다 했다. 나는 엄마도 퇴근시간이 있어야 한다고, 저녁 식사 정리가 끝나면 가스 밸브를 잠그며 “엄마 퇴근한다!!”라고 외치라고 말해줬다. 깔깔깔 웃던 그녀는 집에 가서 정말 그렇게 외쳤다고 한다. 처음엔 의아해하던 아이들이 하나 둘 알아서 라면도 끓여 먹고 정리까지 하기 시작했다며 고마워했다.


그녀와 나는 삶의 시간이 달라 고민도 참 다양하고 많다. 그 고민을 각자의 관점에서 나누고 이야기하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하고 마음 그릇이 넓어진다. 누군가의 시선에서 내가 어떻게 느껴질까에 대한 고민을 크게 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처음 제주에 오고 나서 ‘외지인’, ‘아이 엄마’이라는 프레임이 씌워지니 많이 달라졌었다. 내가 그들에게 좋은 사람이 아니고, 인연이 없던 것일 수도 있겠다. 그 사람들보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그렇게 어리지도 않다.) 스스럼없이 반말을 하며 “어려서 잘 몰라.”라는 말과 “외지인이라 잘 몰라.”라는 말을 생각보다 자주 들었다. 육지에서 온 사람만 보면 사사건건 태클을 거는 사람도 있었다. ‘외지인이 땅값을 다 올려놨다.’며 땅도 없는 나에게 노발대발하는 일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을 겪으며 도대체 내가 뭘 모른다는 건지, 본인보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상대에게 함부로 해도 되는 건지 의문이었다.

내가 처음에 이사 와서 겪었던 일을 이야기하면서 '외지인'인 나에게 거부감이 들지 않냐고 물어본 적도 있다. 그녀는 여기에 자리 잡으려고 온 사람들에게 반겨주는 게 당연한 것이 아니냐며 오히려 그런 사람들 때문에 내가 색안경을 낄까 봐 걱정을 하였다.


동갑내기 내 친구들에게 그녀와 친구라고 말하니 “그분이 나이가 많아서 마냥 널 이해하는 걸 꺼야.”라고 말한 적이 있다. 혹시나 정말 그런 마음일까 걱정했던 찰나에 그녀도 또래 친구들한테 “그 엄마가 어려서 어른 같으니 다 들어주는 거야.”라는 말을 들었다고 하더라. 둘이 그렇게 되묻곤 전혀 그렇지 않다며 깔깔거리며 웃었다. 둘 중 한 명이라도 그런 생각을 했다면 아마 우린 이렇게 계속 친구로 지내진 못했을 것 같다. 우리는 여전히 서로에게 존댓말을 쓰며 대화한다. 서로의 생각을 ‘그랬구나.’ 하며 들어주고 있는 그대로 바라봐준다. 각자의 삶을 존중하며 의견을 포용하는 관계를 그녀를 통해 배워나가고 있다.


8년 전 여름, 내가 그 티셔츠를 입지 않았다면 그냥 스쳐 지나간 동네 사람이었겠지. 그녀를 만나게 해 준 티셔츠에게 감사하다. 낯간지러워 그녀에게 직접 표현은 못하지만 이렇게 내 고마운 마음을 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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