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발레 하는 쿠크다씨

이성과 감성 사이

by 쿠크다

발표회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학원을 그만두었다. 바람 잘날 없는 제주를 적응하기엔 아이가 너무 어렸다. 잦았던 병치레는 결국 폐렴으로 입원까지 했고 병실생활로 되려 남편과 발레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발표회 처음부터 끝까지 본 그는 ‘굳이 거길 계속 다녀야 할까?’ 생각했다고 한다. 무대에 서는 사람과 관객이 같은 생각이었다니… 다닐 이유가 없다는 확신이 생겼다. 아이의 퇴원과 함께 학원에 더 이상 나갈 수 없다고 알렸다. 알겠다고 대답한 원장님은 그 이후로도 몇 번이나 수업에 오라며 전화와 문자를 보냈다. 완곡히 거절을 반복하다 결국 다이렉트 차단버튼을 눌렀다. 성인발레 불모지에 학원이 하나둘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상가 창문에 ‘발레’ 글자만 봐도 심장이 나댔다. 적당히 포기하고 다른 거 하면 좋으련만.. 발레에 대한 욕망을 놓지 못해 방랑자처럼 헤매었다. 정착하기까지 2년은 걸렸으니... 길게는 몇 달 적어도 한 달은 다니며 방황했다. 이곳저곳 다녀보니 발레학원도 인간의 성격유형처럼 이성과 감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성중심 발레학원은 대체로 이랬다. 건물 외관과 내부 인테리어가 ‘치링치링 샤랄라 발레월드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이런 느낌이다. 발레학원이니까 당연하다. 고개를 조금만 돌리면 발레리나 사진, 소품들이 놓여있어 발레 감성이 충만해져 기분이 좋아진다. 발레 감성만큼 당연하게 있어야 할 것이 없어 당황스러울 때도 있었다. 보통은 점프할 때 관절에 오는 충격 감소를 위해 바닥과 마루 사이에 탄성 고무가 있는 ‘댄스플로어’라고 불리는 탄성마루가 깔려있다. 감성에 치중한 나머지 탄성마루가 아닌 카페 바닥이었던 학원도 있었다. 점프를 많이 안 해서 얼마나 다행이었던지... 맨땅에 발레하고 관절 아작 나는 신선한 경험이었다.

탄성고무가 몸에 받는 충격을 흡수한다.

또 수업시간 대비 실질적 발레 시간이 적은 편이었다. 열띤 매트 운동 후 인사만 발레식으로 한다거나, 스트레칭 8할에 발레동작 2할 정도로 끝났다. 전자는 땀이라도 많이 나서 보람차기라도 한데, 후자는 열심히 늘린 근육을 써먹지 못해 허탈하다. 끝날 때까지 땀 한 방울 안 나고 세상 뽀송한 처음 모습 그대로인 수업도 있었다. 하루는 수업하다가 수강생이 “선생님~ 나 오늘은 좀 힘들다.”하면 선생님은 바로 마무리를 했다. 누군가 “선생님, 지금 땀나려고 해요. 저 땀나는 거 싫어하잖아요.” 하자 바로 수업이 끝났던 날도 있다. 땀샘 열리면 수업 종 치는 특이한 학원이었다. 내가 알던 수업은 너무 힘들어서 끝나면 도망치듯 학원을 벗어났는데, 힘들지 않아서 그런지 다 같이 간식 먹고 노는 시간이 잦았다. 기분만 내는 느낌이라 진입장벽이 높다고 느껴지는 사람들에게 입문용으로 좋을 것 같았다.

수업은 각자도생이었다. 호흡법을 배운다거나 잘못된 자세를 바로잡는 시간보다는 선생님이 먼저 앞서 나가서 그 동작들을 따라가느라 벅찼다. 이런 분위기는 수강생의 집중력을 타인에게 돌리게 만들었다. 당장 내 몸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니까 다른 사람들을 보게 되고 그러다 비교하는 흐름이랄까. 그래서 타인에게 관심이 너무 많았던 학원도 있었다. 수업 끝나고 “그렇게 열심히 해서 뭐 하게?” “뭐 하러 그렇게 부들부들 떨면서까지 해.” 하는 말을 빈번하게 들었다. 사시나무 떨듯 떨며 하던, 물구나무를 서서 발박수를 치든 무슨 상관인지… 자주 들으니 피곤했다. 과도한 관심은 끄면 되지만 이런 상황은 바르게 몸을 사용하는 법을 숙지하지 못해 부상으로 직결될 수 있다. 실제로 이런 스타일 수업에서 나도 햄스트링이 파열되었고, 부상당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성중심 학원은 대체로 인테리어가 심플하고 꾸안꾸(꾸민 듯 안 꾸민듯한) 스타일이었다. ‘여기? 발레 배우는 곳.’ 간결한 분위기가 입구에 들어간 순간부터 느껴졌다. 곳곳에 발레학원이라는 걸 알리기 위한 표식 정도의 발레 아이템이 있고 기능에 충실하듯 폼롤러나 몸 푸는 도구들이 더 눈에 들어온다. 매트+바+센터 3종은 기본 한 세트다. 수준에 맞게 매트, 바, 센터의 비율이 약간씩 다르고, 레벨이 높아질수록 바 센터 수업에 비중을 조절하는 편이었다. 몸 움직일 때 호흡이나 주의사항 설명이 많고 다친 부위 무리하지 말라는 선생님의 외침을 주기적으로 들리는 곳도 있었다. 수강생들 템포에 맞춰서 뒤에서 받쳐주듯 수업이 진행되는 편이었다. 그럼 자연스럽게 내 움직임에 집중하게 되고, 올바르게 쓰기 위해 애쓰느라 다른 사람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정신이 없이 진행되는 수업이 끝나면 다들 불가마에 있다 나온 사람들처럼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 누가 붙잡고 더 시킬까 황급하게 뿔뿔이 흩어져서 서로에 대한 관심이 적은 편이었다.

대체적으로 잘한다 포용하기보단 잘못된 동작에 대한 피드백 시간이 많아서 예민하거나 칭찬받고 싶은 사람들은 상처를 받을지도 모르겠다. 바쁜 현대사회 발레 빠르고 간결하게 입문하고 싶거나 팩트 몽둥이에 단단한 사람들에게 적합할 것 같다.

글을 적어 내려가면서 회상해 보니 그때가 이곳의 성인발레 과도기였던 것 같다. 그 이후 새로 생긴 학원도, 사라진 학원도 많다. 내가 자리 잡고 발레를 다시 시작하듯 학원들도 자리 잡는 시기였던 것 같다. 시간이 많이 흘렀고 세상이 많이 변해서 얼마나 달라졌을지도 궁금하기도 하다. 모든 학원들을 다 경험해 본 것이 아니니 내 시선이 편협할지도 모르겠다. 전적으로 나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분석이니 경험담으로 가볍게 읽어주셨음 하는 바람으로 글을 마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11 발레 하는 쿠크다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