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와 나의 거리
가수 샤이니 노래 중에 ‘너와 나의 거리’라는 곡이 있다. 아무리 손을 뻗어도 닿을 수 없는 슬픔을 표현한 나의 눈물버튼인 노래다. 반대로 내겐 늘 손에 닿아 있어도 놓지 못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연습실에 놓여있는 ‘바’다. 발레를 자전거에 비유하자면, 바는 보조바퀴다. 보조바퀴 역할을 하는 바를 잡고 몸의 중심과 움직임을 배운다. 센터 클래스는 보조 바퀴를 뗀 두 발 자전거다. 보조바퀴 떼고 자전거 균형을 맞추듯이 센터에서 응용된 동작을 소화한다. 발레를 배우기 시작한 사람부터 평생 발레를 해 온 사람까지 늘 바 클래스를 시작으로 센터 클래스까지 차근차근 몸을 예열해 자신의 기량을 연마한다.
보통 발레를 배우기 시작하면 두 손 바로 시작해 숙련되면 한 손 바로 넘어간다.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은 바를 마주 보고 두 손으로 잡아 기본동작들을 배운다. 쎄쎄쎄하며 바와 친해지는 기간이라 생각하면 된다. 내 팔꿈치 길이만큼 바와 떨어져서 두 손으로 바를 잡으면, 힘이 균형 있게 분산되어 정확하게 다리 근육을 쓰고 뒤꿈치를 들어 올린 업을 서는 연습을 할 수 있다. 두 손에서 한 손으로 넘어가면서 친해진 바와 슬슬 거리 두기를 실패했다.
한 손 바는 바 옆으로 서서 손을 어깨 옆으로 팔꿈치 너비 정도 띄워 잡으면 된다. 선생님이 종종 이렇게 말씀하신다. 바는 내 몸을 대신해 주는 게 아니다. 곧은 자세를 유지하기 위한 도구일 뿐 너무 의지해서는 안된다. 들을 때마다 머리에 입력하지만 클래스가 시작되면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다. 음악이 시작되면 순서 신경 쓰랴 몸 정렬 잡느라 온 신경이 곤두선다. 마음이 절박해져 손에 힘이 점점 세게 들어간다. 동작의 난이도가 높아질수록 바를 놓치면 죽는 사람처럼 온 힘을 손에 싣는다.
어떻게 잡아야 할까. 다섯 손가락과 손바닥이 바를 감싸듯 살포시 잡는다. '살포시'가 제일 중요한 포인트이다. 음악의 시작되고 비장한 마음에 바를 너무 꽉 잡으면, 손을 타고 손목과 어깨에 힘이 빡 들어간다. 정작 써야 할 근육보다 힘을 빼야 하는 근육에 에너지를 낭비하는 셈이다. 센터에서 동작을 능숙하게 하려면 최대한 살포시 바를 잡는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 바에 너무 바짝 붙게 되면 바 쪽 어깨가 위로 솟으며 몸의 균형이 무너진다. 한쪽으로 힘이 쏠려 정확한 동작이 나오기 어렵다. 바 할 때 움직임은 봐줄 만했는데 센터에서 답이 없는 상황이라면 바에 너무 의존하고 있는 것 아닌지 의심해봐야 한다. 난 클래스 할 때마다 하도 움켜잡아서 가끔 바가 나무로 만들어졌다면 아작 나는 거 아닌가 생각할 때도 있다. 묵직한 쇳덩이로 만들어진 이유가 나 같은 사람 때문 아닐까.
안정감 있게 바를 잡으려면 내가 바에 다가선다는 느낌보다 내 몸에 바를 곁들인다 생각해야 한다. 내가 추천하는 팁은 무도회 공주님 이미지 트레이닝이다. 자의식 과잉 같지만 효과가 좋다. 무도회에 입장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저절로 어깨가 펴지고 손에도 적당하게 힘이 분포되어 바를 살포시 잡을 수 있다.
이렇게 바를 잡고 나면 확실히 주체성을 찾을 수 있다. 예전엔 바를 손으로 꽉 잡고 몸이 끌려다녔다면, 지금은 내가 바를 다루고 있는 느낌이 든다. 익숙해지면 동작이 바뀌며 몸의 중심점이 옮겨질 때 자연스럽게 바 잡는 위치가 바뀌는 것도 느낄 수 있다.
가끔 바에 너무 가까이 붙어있다가 부딪히기도 한다. 꽉 붙잡고 치고 집착하고…. 바에게 감정이 있다면 얼마나 내가 넌덜머리 날까 싶기도 하다. 가끔 선생님이 바 놓치면 어디 떨어지냐고 묻기도 한다. 그럴 때 내 손을 보면 핏줄이 바짝바짝 서있다. 의식적으로 고치고 클래스를 마치는 날이면 살면서 누군가를 맹목적으로 의지하거나 집착하지 않았는지 돌이켜보고 반성하게 된다. 바와 나 사이의 거리처럼 사람사이에도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감 유지가 중요하다는 걸 다시 마음에 새긴다. 바와 거리 두기를 실천하면서 인생에서 꽉 움켜잡고 있던 것을 슬쩍 놓을 줄도 알게 되었다.
연습실의 길고 소중한 반려 쇳덩이! 오늘도 잘 부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