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발레 하는 쿠크다씨

개미는 뚠뚠

by 쿠크다

새로 다니기 시작한 캐슈넛 발레학원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발레의 정석’이다. 수학의 정석은 어떻게든 수포자(수학포기자)들을 현혹시키려는 문제집들과 달리 ‘수학 배울 인간들은 펴보겠지.’ 하는 뚝심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비록 수학의 정석 첫 단원인 집합만 풀다 말았지만, 발레의 정석은 끝을 보겠다는 마음가짐이었다. 수학의 정석도 그런 마음으로 샀던 것 같은데, 책상 책꽂이 감성템이 되어버렸…. 엄마 미안해.


동작을 수행할 때 잘못된 자세를 손으로 바로잡아주는 티칭을 ‘핸즈온’이라 부른다. 원장님은 커다란 흙덩이를 예쁘게 빚는 도공처럼 근육부터 관절 하나하나 빚어주신다. 흙덩이는 도공의 손을 거치면 모양이 원하는 대로 바뀌지만 강인한 취미발레 수강생은 고무덩어리 같아서 쉽게 바뀌지 않는 차이가 있다.


나는 전형적인 거미형 체형이다. 팔다리는 가늘고 숨겨둔 무기처럼 배에 집중적으로 지방을 축적해 왔다. 복근 어디다 써먹을지도 모르겠고 일단 먹는 게 제일 좋은 사람이었다. 이게 내게 고난과 시련을 주게 될 줄은 몰랐다. 매트에서 복근 운동을 하고 나면 배탈 난 사람처럼 데굴데굴 굴렀다. 기능을 거의 하지 않는 얇은 복근이 겨우겨우 일을 하는데 얼마나 힘들겠나. 복근 포기자가 되기 일보직전이었다. 그런 불룩 나온 배를 못마땅하게 여긴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원장님이었다. 원장님도 처음엔 지나가는 목소리로 ‘배에 힘주세요.’ 반복하며 얘기했다. 내가 또 말을 잘 듣는 편이라 바로 배에 힘을 줘 고쳤다. 복근에 힘주는데 몰입하여 순서를 틀리고, 순서를 외우느라 배가 뽈록 나오는 도돌이표가 시작된다. 다른 수강생을 티칭 하다 다시 돌아와 이번엔 배를 만져주셨다. 보통 핸즈온은 어깨나 팔다리를 많이 하는데 나는 배를 중점적으로 당하는 편이었다.

바뜨망 턴듀 Battement Tendu

쁠리에가 끝난 후 다음 순서는 바뜨망 턴듀다. 바뜨망은 불어로 두드리기 부딪히기라는 뜻이고 턴듀는 뻗다 '펼치다'라는 뜻이다. 뻗어 나갔던 한쪽 다리가 들어오면서 두 다리가 부딪혀서 바뜨망 턴듀다. 꼿꼿하게 서서 한쪽 발바닥을 껌 밟은 찐득한 느낌으로 쓸어내듯 뻗어 움직여야 한다. 발가락 끝이 바닥에 닿아있는 게 포인트.

바뜨망 제떼 Battement Jete

제떼는 불어로 ‘던지다’라는 뜻으로 턴듀랑 움직임이 같지만 발을 25도 정도? 던지듯 들어 올리는 게 차이점이다. 보통 턴듀가 끝나고 제떼를 하기도 하지만 한 번에 턴듀 제떼를 섞어서 한 번에 순서를 나가기도 한다.


이 두 가지 동작은 쁠리에에 비해서 리듬감 있다. 박자감 있는 음악에 앞, 옆, 뒤로 동작이 마구 섞여서 진행되기 때문에 이때부터 나만의 두뇌 싸움이 시작된다. ‘복근 힘 빡!!!’ 구호처럼 속으로 외쳐주고 시작해도 순서 생각하느라 점점 힘이 풀린다. 후반부에는 다리 흔드는 곰돌이 푸가 된다. 원장님의 손이 다가오면 숨을 훕 들이마시고 다른 수강생쪽으로 떠나면 내 뱃살에게 자유를 줬다. 뱃살 완급조절 내공이 쌓여 살만해졌다고 생각할 때쯤 탄듀와 제떼사이 짧은 텀에 원장님이 정체불명의 노끈을 들고 나에게 다가왔다. 배에 힘주라며 허리에 칭칭 묶었다. 다른 사람들 티칭 하며 자유분방하게 울룩불룩 거리는 배가 많이 거슬렸던 모양이었다. 핸즈온으론 끝도 없으니 아예 묶어버리셨다. 일명 블루투스 핸즈온이었다. 꽁꽁 잘도 묶어놓아서 배에 힘을 풀면 마치 개미 같았다. 블루투스 핸즈온은 효과가 확실했다. 힘을 슬쩍 풀면 묶인 끈 때문에 저절로 배에 힘이 들어갔다. 덕분에 순서와 동작에 좀 더 집중할 수 있었고, 다음 수업엔 그 노끈을 자진해서 배에 감아 묶었다.


정체불명의 노끈은 엮인 보리굴비 같아 시각적으로 탐탁지 않았다. 좀 더 예쁜 개미가 될 수는 없을까 고민하던 중 발레용품 쇼핑몰에서 얇은 허리벨트를 발견했다. 아카데미 클래스 사진 속 학생들이 단체로 허리에 두르고 있던 게 생각났다.

https://arcdance.org/arc-school-of-ballet/student-program/

역시 나 같은 개미들이 한둘이 아니구나!!! 하며 동질감을 느꼈지만 상세 설명을 보고 생각보다 전문적인 용도여서 당황스러웠다.

- 클래스에서 착용 시 허리에 착용하여 골반의 기울어짐을 확인할 수 있으며, 갈비뼈 끝 쪽에 착용하면 호흡할 때 횡격막의 열고 닫음을 체크하게 도와줄 수 있습니다.- http://www.toptoe.kr/

골반이나 횡격막을 체크는 모르겠고... 일단 개미탈출이나 하자는 마음으로 구매했다.

거울 속 허리벨트를 착용한 내 모습. 그럴싸한 개미 발레리나가 된 것 같아 뿌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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