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발레 하는 쿠크다씨

플랭크

by 쿠크다

몇 년 전으로 거슬러 코로나가 한창이라 출입명단 수기로 작성하던 그런 시절이었다. 발목 부상으로 발레를 쉬다가 오랜만에 등록하고 학원에 갔다. 원장님은 5월의 시작과 함께 ‘플랭크 5분 챌린지’를 제안했다.

나무판자라는 뜻의 ‘플랭크’는 마치 널빤지처럼 몸을 평평하게 만든 후 팔과 다리로만 버티는 동작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코어근육 단련하는데 이만한 게 없다며 매트 마지막으로 꼭 끼워 넣는 운동이었다.



1분 플랭크하고 1분 쉬는 것을 다섯 세트 하면 끝. 이번에 시작하는 챌린지 규칙은 이렇다. 원장님을 포함하여 수강생 모두가 수업날에 같이 5분 플랭크를 하고, 수업이 없는 날엔 집에서 플랭크 후 인증샷을 찍는다. (주말엔 쉬어야지!) 1주일 동안 찍은 인증샷은 모아서 원장님께 검사받는다. 중간에 포기하는 사람이 밥을 사고 수강생 모두가 성공하면 원장님이 수강생에게 밥을 사기로 했다. 다친 발목이 플랭크 하는데 지장이 없었고, 그렇게 나를 포함한 모두가 동의했다. 운동 안 하고 통으로 쉬다가 갑자기 플랭크 5분이라니.... 그래도 1분씩 다섯 번이니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다.


매트 운동을 하고 원장님이 자세를 잡아주신 뒤, 타이머를 맞추셨다. 시작! 과 동시에 플랭크가 시작되었다. 생각보다 버틸만한데?라는 생각과 함께 시간이 멈춰버렸다. 1분 경과와 동시에 몸이 바닥에 붙어버렸다. 이걸 어떻게 다섯 번을 하지? 생각하는데 원장님이 다시 시작! 을 외치셨다. 쉬는 시간 1분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하늘이 노래졌다. 다섯 세트가 끝나자마자 벌떡 일어나 꼴 보기 싫은 매트를 멀리 훠이훠이 치워버렸다.


플랭크 5분으로 체력을 다 써버려서 이제 바와 센터는 망했구나 하면서 자세를 잡고 순서를 해 나갔다. 온몸에 힘이 빠져서 팔다리가 바들거려도 쥐어짜 낸 복근이 중심축을 잡아주는 건지, 처음 느껴 본 안정적인 힘이 느껴졌다. 센터에서도 바들거려도 단단히 버티는 힘이 조금씩 느껴졌고, 예전보다 좀 더 버티는 힘이 강해진 걸 느낄 수 있었다. 오랜만에 하는 발레라 엉망진창일 줄 알았는데 플랭크 덕분인지 코어의 힘을 제대로 느끼는 첫날이었다.


학원을 가지 않는 숙제 첫날, 일과를 마치고 매트를 펼친 뒤 휴대폰 타이머를 켰다. 남편이 인증샷을 찍어주고 챌린지를 했다. 한 세트가 끝날 때마다 눈앞에 보이는 별이 많아졌다. 이러다 죽겠는데 싶었다. 플랭크 사망률을 검색했지만 아쉽게도 나오지 않았다. 수업 없는 날 분주한 하루를 보내고 플랭크를 안 했다는 걸 늦게라도 알아채면, 울며 겨자 먹기로 매트를 폈다. 플랭크 하기 싫어서 우는 나를 보고 남편은 한심하다는 듯 그렇게 하기 싫음 하지 말라고 말렸다. 말리면 또 하고 싶은 인간이라 땀과 눈물을 동시에 흘리며 숙제를 했다.


사정이 생겨서 수업을 한 주 빠져도 어김없이 플랭크를 했다. 그리고 다음 수업 때 숙제 검사를 받으려는데, 뭔가 이상한 기류가 흐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한 주 결석했을 때 원장님이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먼저 포기선언을 했다는 것이다. 아니 이런.. 나만 하고 있던 거였다니?? 참 허무맹랑했다. 나만 혼자 한 달 꽉 채웠다는 이야기를 듣고 남편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겼다고 박수를 쳐줬다. 어쨌든 이제 집에서 플랭크 안 해도 되니 홀가분했다. 이건 비밀인데 나는 그 이후로 쭉 밤마다 플랭크를 했다. 거뜬히 버티면 10초씩 늘려가다 나중엔 세트 수를 줄이고 한 세트에 2분 40초-3분까지 버텼었다.


몸 안에 굵은 심지가 생긴 걸까. 확실히 기초 체력이 늘었다. 예전엔 아이 하원시간만 돼도 피곤에 잡아먹혀 눈이 퀭한 게 일상이었다. 피곤해서 예민해지고 결국엔 남편이나 아이에게 뾰족함으로 돌아갔다. '기분이 태도가 되지 말자.'는 명언을 되새겨도 기분이 태도가 되었다. 체력이 늘어 몸이 덜 힘드니 기분이랑 태도가 각자 갈 길을 가기 시작했다. 플랭크 1분 이상 하면 효과 없다는 콘텐츠를 본 이후로 2-3분씩 열정적으로 불태우지 않는다. 이제는 남편이랑 플랭크를 같이 하기도 하고 가끔 아이랑 셋이 하기도 한다.(아이는 시늉만 한다.) 이젠 놓을 수 없는 삶의 일부가 된 플랭크. 시간의 흐름을 온몸으로 느껴보고 싶은 분들께 추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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