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베스크
애정을 듬뿍 쏟은 학원이라 수업을 끝으로 발레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게 원장님에 대한 의리이자 예의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타의적으로 발레를 그만두는 건 아무래도 억울했다. 의리와 억울함이 엎치락뒤치락하다 결국 학원을 찾기 시작했다. 시간이 많이 흘러서 그런지 발레학원이 정말 많이 생겼더라. 지난날의 시행착오 덕인지 이제는 검색만으로도 대충 학원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선뜻 문의전화를 하지 못하고 고민하고 또다시 검색하고 반복했다. 원장님을 배신하는 것 같은 불편한 마음과 다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이 암담한 상황이 더더욱 날 주저하게 만들었다.
그 당시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어 한창 적응에 우여곡절을 겪었다. 적응을 못한 건 나다. 아이는 잘 적응해 신나게 다녔지만 엄마가 변화된 아이의 삶을 적응하지 못하는 웃픈 상황이었다. 긴장과 불안도가 많이 높아져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꾸준히 병원 다니며 한 달에 두 번 안부만 나눌 정도로 컨디션이 좋아졌는데…. 이런 일이 닥친 것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발레가 삶을 100으로 치면 어느 정도로 차지하는 거 같냐고 물어보셨다. 크게 고민도 안 하고 60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발레를 왜 시작하게 되었는지, 인생에서 중요해졌는지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선생님은 생각보다 인생에서 발레가 크게 자리 잡고 있다며 선뜻 다른 걸 해보라는 제안도 조심스러워하셨다. 만약 다음 달에 가본 새 학원이 안 맞으면 다시 불안이 높아질 수 있고 맞는다 해도 또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니까 걱정이 된다고 하셨다. 선생님께 내 마음을 말하다 보니, '어? 잠깐만..' 하며 나를 되짚어보게 되었다. 그리고 애정을 넘어 발레에 집착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사실 취미도 어느 수준에서 매달려야 하는데 이 정도로 중요해진 거 보면 말이 취미지 사실 중독이다. 지금 당장의 삶에서 회피하려는 선택으로 발레를 하는 것은 아닐까.
계란을 여러 바구니에 나누어 담듯이 인생에 발레에 대한 비중을 조금씩 줄여나가거나 분배할 무언가를 찾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레라는 바구니에 내가 가진 계란들을 다 올인하다 그 바구니가 사라져 깨질 위기가 왔으니 말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그럼 새 바구니를 찾으면 되지!' 하며 간단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새 바구니를 찾는다 해도 정작 내 계란을 잘 담아내지 못하거나 생각보다 바구니가 별로라면 그 실망감 또한 무시 못 한다. 몇 번을 발레학원을 바꾸면서 겪었기 때문이다. 다시 방황의 길에서 헤매기 싫었다. 어떻게 찾게 된 발레인데… 놓치고 싶지 않았다. 소중하다. 근데 분명 발레에 대한 비중을 줄이는 게 좋을 거 같다고 하지 않았나.. 오락가락한다.
그 와중에 코로나 후유증이 우르르 찾아왔다. 나약한 몸뚱이가 원망스러웠다. 한 달 정도 쉬면서 컨디션을 회복하면 딱 좋으련만... 남은 수업이 얼마 안 남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발레 하면 안 될 거 같은 컨디션이지만 포기 못하고 포도당 캔디를 입에 넣은 채 학원으로 향했다. 텅 빈 연습실이 유독 더 슬펐다.
스트레칭을 하는데 원장님이 오셨다. 원장님과 나 딱 둘 뿐이었다. 수업이 간절한 건 사실이었지만 나 혼자 수업을 듣는 건 원하지 않았다. '제발 아무나 한 명만 와라.' 하며 기도했지만 짤 없이 수업이 시작되었다. 매트 운동을 하며 슬쩍 후유증으로 몸이 별로 좋지 않다고 밑밥을 깔아보았다. 원장님은 내게 컨디션 조절하며 무리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지만 그 말이 형식적인 멘트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열정 버튼이 눌리면 컨디션 조절은 그저 딴 세상 이야기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 같은(?) 개인 레슨이 시작되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순간을 함께하며 자세를 잡아주셨다. 어깨 방향이나, 목선, 손톱의 방향까지 사소한 모든 것을 교정해 주셨다. 미세한 교정들이 모이니 몸 선을 이렇게 다루는 법을 느낄 수 있었다. 컨디션이 안 좋은 상황에 이런 좋은 배움의 기회가 찾아와 속상했다. 내가 쪼금만 더 힘을 줘서 근육을 뻗으면 더 선이 예쁘게 나올 것 같은데 바들바들 떨고 뻗어주질 않으니 그저 답답한 노릇이었다. 그럴수록 절박함이 차올라서 애꿎은 어금니만 꽉 깨물었다. 안 되겠다 싶었는지 원장님은 보라색과 핑크색 그 중간쯤 되는 색깔의 세라밴드를 들고 다가왔다. (세라밴드는 스트레칭 밴드로 다양한 운동에 많이 쓰인다.) 그 예쁜 스트레칭 밴드를 다리에 감고 쭉 늘어뜨려 어깨에 묶었다.
묵은 채로 다리를 움직이라는데 몸에 감긴 세라밴드는 내게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다리가 들어 올려지지도 않았다. "으윽 안 되는데요.." 하면 원장님이 바로 밴드를 풀어주실 줄 알았다. 하지만 원장님은 "아 안 돼요? 그럼 열 번 하세요." 하셨다. 나는 속으로 '이봐 이봐 컨디션 조절하라는 거 다 뻥이지... ㅠ.ㅠ' 하면서 열 번을 채웠다. 숫자 열을 채울수록 다리는 사시나무 떨듯 달달거렸다. 그런데 밴드를 풀고 다리를 올리자 확실히 전보다 쉽게 느껴졌다. "처음보다 수월하죠?" 하는 원장님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바워크를 할 때도 동작이 안된다 싶으면 후다닥 밴드를 두 다리에 감아주셨다. 밴드에 감겨 움직이는 내 근육이 너덜너덜 쪼개지는 거 같았다. 또 밴드를 감을까 봐 이를 악물고 원장님이 하라는 대로 몸을 움직였다. 이렇게 훈련을 해서 발레리나들이 무대에서 새처럼 가볍게 동작을 수행해 내는 것이라는 걸 몸소 체험했다.
그 와중에 이렇게 처절하게 발레를 하는 모습을 보면 원장님도 마음이 바뀌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수업 중 틈틈이 "이런 제 모습을 보니 더 가르치고 싶지 않으신가요? 자라나는 새싹을 외면하실 작정인가요." 하며 연민 작전을 펼쳤지만, 원장님은 단호했다.
수업이 끝나고 괜스레 기념사진을 찍고 싶어서 거울 속에 서 있는 내 모습을 후다닥 찍었다. 원장님이 보시더니 왜 그렇게 멀뚱하게 서 있는 걸 찍냐고, 멋진 포즈로 찍으라고 하셨다. 원장님... 나라고 예쁜 포즈 안 하고 싶겠나요. 안되니까 그냥 서있는 것 중에 제일 사람다운 자세로 찍는 것이라 대답했다. 원장님이 직접 찍어주신다며 하고 싶은 자세를 잡아보라고 하셨다. 예전에 버킷리스트로 [완벽한 아라베스크 해보기]를 적었던 게 생각났다. “저 아라베스크 해볼래요!” 하고 자세를 잡았다. (아라베스크는 한쪽 다리로 서서 밸런스를 잡고 다른 한쪽 발을 뒤로 높게 뻗어 들어올린 자세다.)
카메라를 들던 원장님의 미간이 좁아지며 다시 수업 모드로 바뀌어 자세를 매만져주셨다. 열심히 매만진 팔다리는 손을 떼니 힘없이 원래 위치로 돌아갔다. "원장님 좀 빨리 찍... 너무 힘들어요!!!!" 하는 사이에 몸이 풀리고 원장님은 "쿠크다 씨 한 번만 더 쭉 뻗어봐요. 유지!! 제발!!" 하며 사진을 찍어주셨다.
학원을 나서면서 원장님을 배신하고 싶지 않은데 학원을 옮겨 발레를 계속해야 할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지금이라도 마음을 바꿔주셨음 하는 바람으로 조심스럽게 말했는데, 괜찮은 학원이 있다며 다른 학원을 추천해 주셨다. "원장님, 그럼 쉬다가 몸이 근질근질하거나 막 어른을 가르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바로 저한테 전화 주세요. 제가 바로 튀어올게요!!" 했다. 원장님은 '이제 제발 그만 가줄래..' 하는 눈빛으로 알겠다고 하셨다. 원장님이 찍어주신 사진을 보며 학원 밖을 나섰다. 지금까지 배웠던 수업들의 결실이 사진에 꽉 채워져 담긴 거 같아 괜히 마음이 찡했다. 둘만의 수업과 이 사진이 원장님이 내게 주신 선물 같아 사진을 보고 또 봤다. 이젠 다 추억이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