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발레 하는 쿠크다씨

호흡

by 쿠크다




근육의 쓰임에 따라 호흡을 정확하게 하는 것은 어느 운동이나 중요한 것 같다. 스트레칭을 할 때에도 숨을 참거나 잘못된 방법으로 숨을 쉬면 부상의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햄스트링이 다쳤던 날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숨 쉬는 법을 몰라서 냅다 다리 가동범위를 늘리려 안간힘을 쓰는데, 허벅지에서 엄청 크게 "빡" 소리가 났다. 듣도 보도 못한 소리라 내 허벅지에서 난 소리인 줄도 몰랐다. 일어서려니 딛고 설 수 없을만큼 통증이 심했다. 호되게 고생하고 회복하는데 거의 5년은 족히 걸린 것 같다. 아직도 다쳤던 다리는 삐걱거린다. 그런 고통은 나 하나로 족하기에 누군가 스트레칭하며 얼굴이 빨개지면 괜히 주변을 얼쩡거리며 “숨을 후 내쉬세요.” 하고 속삭인다.


발레는 관객과 무용수의 호흡도 중요한 예술이기도 하다. 무용수가 한껏 숨차하거나, 숨을 가득 들이마시고 있으면 관객 또한 긴장하고 숨이 찬 기분이 든다고 원장님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늘 얘기하셨다. 사실 무대에 서는 무용수가 아니니 별개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귀담아듣지 않았다. (귀담아 듣는 것은 무엇일까.) 동작으로 수행하고 거울에 비친 그 모습을 내가 보고 있다면… 관객인 나와 호흡을 맞춰 움직여야 하는 것 아닐까.


바 클래스 때 호흡을 중점적으로 배운 날이 있었다. 동작 하나하나 해낼 때 원장님이 명령어 입력하듯 "지금 들이마시고, 몸이 내려가면서 천천히 숨을 내쉬어 보세요." 하면서 옆에 붙어계셨다. 가르쳐주시는 타이밍에 맞춰서 숨을 들이쉬고 내쉬면 확실히 전보다 부드럽고 수월했다. 하지만 원장님이 곁을 떠나면 다시 나는 언제 숨을 쉬어야 하나 혼란에 빠져 숨을 훕 참았다. 호흡을 배우다 보니 습관적으로 집중하느라 숨을 꾹 참다 한 번에 몰아쉰다는 걸 알았다. 어떤 날은 수업 내내 원장님한테 붙잡혀서 숨 쉬는 걸 티칭 받았다. 숨을 제때 쉬지 않으면 백날 자세를 올바르게 바로잡으려 노력해도, 힘을 빼야 하는 부분에서 숨 참느라 힘이 들어가기 때문에 교정이 쉽지 않다 하셨다.


호흡에도 공식이 있는 걸까? 음악 박자에 맞춰서 호흡을 해야 하는가? 박자가 느린 음악에서는 심호흡처럼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고 하면서 동작을 하면 되지만, 박자가 빠른 음악에선 동작이 훨씬 빨리 움직이는데, 심장박동처럼 숨을 할딱거리며 쉴 수는 없지 않은가? 궁금증이 연달아 생겼다.

이 질문에 원장님은 호흡에 정답이나 규칙이 없다고 하셨다. 템포가 빠른 음악에서는 스스로 박자를 쪼개서 호흡의 타이밍을 정한다고 하셨다. 사람마다, 음악에 따라, 내가 할 동작에 따라 언제 숨 쉬고 언제 내뱉을지는 몸을 쓰는 건 본인이 결정해야 하는 얘기다. 또 움직임에 따라 호흡도 함께 움직여야 한다는 사실은 잊지 말아야 한다 답하셨다. 들으니까 더 어려웠다. 이제 하다 하다 숨쉬는 법까지 기술을 터득해야 한다니.. 정말이지 발레는 할 수록 미지의 숲이라는걸 새삼 느꼈다. 그리고 이 기회에 숨 참다 몰아쉬는 버릇을 고쳐봐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다 문득, 지금의 나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몇년 전 나는 주기적으로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보고 있었다. 음.. 어디서부터 적어야 할지 모르니 그냥 써야겠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아이와 나의 생활리듬이 바뀌고 함께하는 있는 시간이 월등히 많아졌다. 오후 늦게 유치원 버스를 타고 하교하던 지난날과 달리, 하교 시간이 점심시간 직후로 앞당겨졌다. 학교가 멀리 떨어져 있어서 매일 등하교 시간 맞춰서 차로 움직였다. 학교 갔다가 학원 등하원 함께하고.. 표면적으로 바뀐 건 어찌 보면 단순했지만, 각자의 입장에선 달랐다. 내 입장에선 생활 루틴에 쫓기듯 제한 시간이 걸리기 시작다. 발레를 가는 날이면 체력이 0으로 소진된 채 차에서 점심을 때우고 학교와 학원 끝나는 아이를 기다리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아이는 초등학교라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새로운 학원에 적응해야 했다. 아무 일 없이 무탈히 적응했으면 좋으련만 아이와 나 둘 다 잔뜩 신경이 곤두선 상황이라 쉽지 않았다.


사람 대 사람으로 아이와 나는 성향이 극과 극으로 다르다. 내가 N 극을 좋아하면 아이는 본능적으로 S 극을 선택한달까. 또 양말 발목 높이까지 하나하나 꼼꼼히 짚고 넘어가야 하는 꼼꼼한 아이와 달리 나는 양말을 짝짝이로 신어도 하루가 다 지나서 알아채는 성격이다. 사소한 것 하나하나 집요한 아이의 매일매일이 나로선 숨이 조여왔다. 아이 입장에서도 뭐든 그러려니 좋은게 좋은거다~ 하고 넘어가는 엄마가 얼마나 답답할까 싶지만, 그 요구사항들을 다 맞춰주는 세상도 없을뿐더러 엄마인 나도 벅찼다. 급기야 언젠가부터 밤마다 심박수가 오르고 마음이 불안하여 불면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발레 끝나고 돌아오는 길이 제일 후련하고 좋았던 지난날과 달리 발레가 끝나면 펼쳐질 아이와의 갈등 상황이 시작되는 게 불안하여 더 기분이 우울해지고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메마른 땅에 단비 같았던 발레도 오히려 짐처럼 느껴졌다. 발레를 쉬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도 했다. 주변 사람들도 힘들어하는 나를 보고 발레를 관두라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여기서 발레까지 놓으면 잡을 동아줄이 하나도 없다는 말이 턱 끝까지 올라오다 삼키길 반복했다


고민하다 털어놓으면 '남들 다 그러고 산다.' '너만 힘든거 아니다.' 라는 답들이 돌아왔다. 답답함이 쌓이다 무너져내리기 직전에 치료가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고 병원에 가기로 결정했다. 병원 앞까지 참 발걸음이 무거웠다. 자기 아이도 감당 못하는 엄마라고 생각하면 어쩌나 많이 무서웠다. 다시 돌아갈까 고민도 참 많이 했다. 차선책이 없어 눈을 질끈 감고 들어가서 조심스럽게 진료를 보고 싶다고 했다. 접수처에서 초진은 두 달 뒤에 받는다는 말에 마음이 곤두박질치는 것 같았다. 치료를 하고 싶어도 못하는 현실에 마음을 접고 뒤돌아서는데 접수처 직원이 다음날 시간 하나가 비는데 혹시 올 수 있겠냐고 물었다. 그렇게 다음날 검사도 하고 진료를 볼 수 있었다. 검사를 끝내고 의사선생님과 면담을 했다. 내 얘기를 다 듣고 "엄마도 존중받아야 하는데... 그렇죠?" 하는 선생님의 말에 눈물을 뚝뚝 흘렸다. 우울과 불안이 높은 편이라 상담과 약물치료를 병행하기로 했다.


주기적으로 진료를 보며 약물에 적응하는 내 상태와 아이와의 일상을 공유하는 시간을 보냈다. 의사선생님은 내가 보내왔던 일상에 대해 끝까지 다 들어주시고, '아이가 왜 그랬을까?'하며 같이 의견을 나눠주셨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아이 입장이 좀 더 명확하게 이해되었다. 가끔은 선생님과 아이의 말이 다 맞아 할 말이 없다며 깔깔 웃기도 했다. 다음엔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가이드라인을 잡아주셨다. 아이의 행동에 대해 솟구쳐 오르는 감정은 잠깐 누르고, '아이가 지금 원하는 게 뭘까?'를 먼저 생각는 연습을 하라고 하셨다. 느껴지는 감정을 누르는 것이 처음엔 쉽지 않았다. 점점 아이의 요구사항을 생각하고 분석하다 보면 감정이 진정이 되었다. 아이에게 지금 해줄 수 있는 일들을 차분하게 설명했다. 스트레칭 하듯 계속 반복했다. 약물의 도움도 컸다. 아이도 엄마의 행동에 처음엔 격한 반응을 보였지만, 아이 또한 마음을 다듬는 방법을 알아갔다.


발레를 할 때, 동작에 몰입하느라 숨 쉬는 걸 꾹 참다 한 번에 몰아쉬었던 것처럼 엄마라는 정체성에 몰입하느라 아이와의 호흡 또한 꾹 참고 있다 터진것 같다. 꾸준히 연습하면서 수월한 포인트를 찾아나가는 것 또한 내 몫이었거늘. 어디서나 적절한 호흡이 중요하다는걸 이렇게 또 배운다. 숨 크게 코로 들이마시고 입으로 내쉬어보자. 무작정 참지 말자. 숨 참다 골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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