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토슈즈(Toe shoes)
토슈즈
발레 공연에서 주로 여성 무용수가 착용하는 무용화로, '토슈즈(toe shoes)' 또는 '포인트 슈즈(point shoes)'라고도 부른다. 발레화는 수제로 제작되며 가죽, 공단 등의 재료로 만들어진다.
무용수가 쉽게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지지대의 역할을 하는 '박스(Box)와 안창(Shank)'은 단단한 판지, 플라스틱, 접착제로 붙인 여러 겹의 천 등으로 이뤄져 있다. 박스는 발 앞쪽에서, 안창은 바닥 면에서 발을 지지한다. 출처- 두산 백과사전-
토슈즈는 슈즈이지만 신발처럼 사자마자 신고 발레를 할 수 없다. 자신의 발 모양에 맞게 스스로 작업을 해야 한다. 이걸(길들인다), (부순다)라고 표현한다. 위 그림에 나오는 뱀프와 생크를 자신의 발 아치에 맞춰야 토슈즈를 신고 균형 있게 서고, 발레를 할 수 있기 때문에 꼭 이 작업을 해야만 한다. 위 그림에 나오는 뱀프 부분을 쾅쾅 때려서 부드럽게 만들고, 생크 꺾어 내 발 모양에 맞춰야 한다. 부드럽게 만들겠다는 욕심에 너무 세게 두드리거나 과도하게 꺾어버리면 토 박스와 아치가 무너져 신어 보지도 못하고 버려야 하는 경우도 생기기에 입문자는 전문가와 신중을 기해 토를 부숴야 한다. 무용수들은 토슈즈를 자신의 발에 맞추기 위해 칼로 토슈즈 안쪽을 뜯고, 망치질을 하기도 한다. 탄탄하게 서기 위해 플랫폼 부분을 빙 둘러가면서 바느질도 한다. (이건 선택사항인 것 같다.) 부순 토슈즈는 길들이는 데는 며칠이 걸린다. 직접 신고 동작을 해나가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무조건 본인이 해야 한다.
길들이는 방법이 험난해도 토슈즈를 신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토슈즈를 신으려면 발바닥에 구멍이 난 타이즈를 신어야 한다. 발바닥에 난 구멍으로 맨발을 꺼내고 토싱이라 부르는 발 보호장비(위 그림의 파란색 부분)를 발가락에 착용하고 타이즈를 다시 신는다. 토슈즈를 신고 발목을 리본으로 감싸면 된다. 무용수들의 발과 발가락에 맞게 천, 실리콘 등 다양한 종류의 토싱이 있고, 토싱을 신지 않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슈즈를 신는 무용수도 있다. 토슈즈는 한번 구매한 것으로 평생 쓰는 것도 아니다. 많이 연습할수록 토박스가 무너져 하루에 몇 켤레씩 버리는 무용수들도 있다. 발레단 영상을 보면 연습실 한편에 앉아 바느질을 하는 사람들이 나오는 이유가 토슈즈 때문이다.
내가 처음 토슈즈를 신게 된 첫 발레학원에서였다. 그 당시 레벨이 높은 수강생들이 토슈즈 클래스를 열어달라고 했었지만, 원장님은 다칠 위험이 많기 때문에 신중하게 결정하겠다 하셨다. 원장님은 기본기를 다지는데 총력을 기울였고, 수강생들은 본의 아니게 하드 트레이닝을 하였다. 내가 중급반에 올라가 익숙해질 무렵 원장님도 이 정도의 수준이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하셨는지 토슈즈 클래스를 여셨다. 그때 당시 나에겐 토슈즈를 신은 무용수 자체가 선망의 대상이었기에 고민도 없이 수업을 듣겠다고 했다. 수업 일주일 전, 원장님이 호출한 토슈즈 업체에서 발 실측을 하고 토슈즈 사이즈를 확인하기로 했는데, 하필 그날 난 친정에 행사가 있어서 실측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신발 사이즈를 알려드리고 신어보지 못한 채 토슈즈를 골랐다. 첫 단추를 잘 못 끼웠다. 첫 수업 날은 원장님이 토슈즈 다루는 법, 부수는 법을 가르쳐주시고 집에서 일주일 내내 토를 꿰매고 부쉈다. 그다음 수업부터 토슈즈를 신고 발레 동작을 배우기 시작했다.
첫 수업날, 토슈즈를 신고 올라서보니 그냥 신고 있을 때와 달리 발가락이 많이 불편했다. 적응하는 기간이라 생각하고 통증을 참았는데 수업이 진행될수록 발이 너무 고통스러웠다. 발 끝을 맞지 않는 틀에 욱여넣고 체중을 가득 싣는 느낌이었다. 토를 딛고 설 때마다 뜨끔 거리는 아픔이 심해졌다. 난 수업에 방해가 되고 싶지 않아 꾹 참고 수업을 듣다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수업을 마치고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다른 분들을 아프긴 했지만 그 정도로 아프지 않았다고 의아해했다. 실측을 하지 않고 슈즈를 신어서 벌어진 일이었다. 이미 수업을 하겠다고 한 상황이라, 참고 수업을 듣다가 도저히 참지 못하겠다 싶으면 수업 중간에 토를 벗고 수업을 들었다. 첫 토슈즈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고통과 눈물뿐이다. 아팠다 너무 아팠다. 이후 세 번 정도 더 수업을 듣고 제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제주로 이사하고 땅콩 발레 학원에 다닐 때, 원장님이 나를 발레영재(?)로 육성하겠다며 토슈즈 수업을 제안했었다. 전에 토슈즈 신고 고생했던 이야기를 했더니, 토슈즈를 새로 사면 된다는 아주 간단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당장 발레에 목말라 있었기에 제안에 응했고 전공생들과 함께 토슈즈 수업을 들었다. 전공생들 틈에서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떨리고 두려웠다. 그리고 첫 수업날의 경악을 금치 못했다. 원장님은 토슈즈 길들이는 것에 대한 인지자체가 없는 듯했다. 자기 발에 맞게 부셔도 제대로 동작을 해내기가 힘든데, 부시지도 않은 토를 신고 아이들은 동작을 배우고 있었다. 넘어지기라도 하면 크게 다칠 상황임에도 익숙하다는 듯 수업이 진행되었다. 내가 이전 발레 학원에서 배운 대로 워밍업을 하면 원장님은 그걸 보고 "그래 저렇게 해야지!" 하며 아이들을 다그치는 상황도 종종 있었다. 토슈즈 수업 한 달 반 들었던 내가 배우고 있는 건지, 교본이 되고 있는 건지 현타가 왔었다. 결정적으로 수업을 잘 안 하셨다. 학생들 시험기간, 공연연습 등등 이런저런 핑계로 수업은 미뤄졌고 간신히 수업 일 수만 채운 채 마무리되었다. 토슈즈를 신게 되면 더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모든 것이 마음처럼 되지 않고 실망의 연속이었다. 토슈즈를 내 인생에 다시는 들이지 않겠다고 단단히 다짐했었다.
발레를 쉬다 캐슈넛 발레학원을 다시 다니기 시작하고 몇 달이 지났을 때쯤, 오래 다닌 것으로 추측되는 수강생 세 명이 원장님께 토슈즈 수업을 열어달라 요청했다. 처음 다녔던 학원 원장님처럼 원장님은 기본기가 다져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부상의 위험이 있어 안된다고 단호하게 거절하셨다. 인간은 거절을 당하면 욕망이 강해지는 건가. 수강생들은 원장님에게 토슈즈를 신을 수 있도록 기본기에 중점을 둔 수업을 원하였고, 원장님도 그 요청에 응했다. 데자뷔인가. 난 앞으로 고행길이 펼쳐질 것을 예상했고, 그 예상은 적중했다. 전공생 수업처럼 강도 높은 수업이 진행되었고 저절로 수업의 난이도는 올라갔다. 나쁜 마음이지만 클래스가 열리지 않길 바랐다. 행여나 클래스가 열려도 수강하지 말자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계절이 바뀌고 수강생들이 수업방향에 잘 따라간 덕분인지, 원장님은 토슈즈 수업을 열겠다고 하셨다. 대신 수강생이 4명 미만이면 열 수 없다는 전제 조건이 있었다. 토슈즈 수업을 원했던 수강생 세 명은 나머지 한 명을 채우기 위해 다른 수강생들을 설득했다. 다들 거절을 하였고 설득의 화살은 나에게로 향했다. 겪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토슈즈가 내키지 않다고 의사를 표했지만, 내 상황이 설득의 키가 되어 돌아왔다. 한 분은 쿠크다 씨 발에 맞는 토슈즈도 있겠다 다시 시작해도 늦지 않다고 희망을 불어넣었다. 다른 한분은 원장님 수업 들어봐서 알지 않겠나 이렇게 기본부터 탄탄히 배울 기회가 흔치 않다며 나를 설득했다. 나머지 한 분은 전화로 인원이 모자라니 제발 수업을 함께하자 전화를 하셨다. 구구절절 맞는 말이라 반박할 틈이 없었다. 좀 더 고민을 해보겠다고 말했지만, 지금이 아니면 차근차근 하나씩 배울 기회는 거의 없을 것 같았다. 내가 자진해서 토를 배울 의지는 없었기 때문이다. 딱딱거리는 토슈즈 한 켤레가 미련처럼 따라다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작하지도 않은 것을 후회하기보다는 하고 후회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결국 나는 그렇게 다시 토슈즈를 신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