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토슈즈(Toe shoes)
수업 시작 전 주에 원장님께 토슈즈 길들이는 법을 다시 배웠다. 땅콩발레학원 다닐 때 샀던 사이즈가 토슈즈는 박스를 더 부숴셔 부드럽게 만들어야 한다고 하셨다. 수업 전까지 틈틈이 토슈즈를 길들였다. 토슈즈를 쾅쾅 두드릴 때마다 '그래. 이렇게 판이 깔렸을 때 제대로 배워야지.' 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발에 잘 맞는 토슈즈, 차근차근 가르쳐주실 선생님, 부상이 없는 튼튼한 몸. 지금 배우기에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같이 배우기로 한 수강생들과 원장님의 상의 하에 월, 수, 금 세 번 바와 센터를 끝내고 20분 토슈즈 수업을 하기로 했다. 나 또한 20분 정도면 힘들지 않게 꾸준히 배울 수 있겠다 싶어 부담 없이 OK 하였다. 하지만 첫 수업 후 이전에 나의 생각이 대단한 착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평소에 바와 센터만 해도, 아니 솔직히 매트 끝나면 집에 가고 싶다. 매트 끝나면 내 체력으론 이게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집에 가기도 힘든 다리로 토슈즈를 신어야 한다는 걸 완전히 간과하고 있었다. 첫 수업 날. 후들거리며 바닥에 앉아 토슈즈를 신으면서 '20분이야. 딱 20분만 버티자.'하고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부상의 위험이 있으니 발이 슈즈를 잘 버텨낼 수 있도록 충분히 스트레칭을 해주었다.
처음 발레를 배우 듯 토슈즈를 신고 한걸음 한걸음 거울 앞에 섰다. 확실히 일반 슈즈를 신을 때와 달리 다리도 훨씬 길어 보이고 예뻤다. 진짜 발레리나가 된 기분이 들었다. 설레는 그 마음이 지친 몸뚱아리를 버티게 만들었다. 먼저 토슈즈를 신고 서는 법을 배웠다. 토를 신고 서면 천 슈즈를 신을 때와 근육을 쓰는 방법이 약간 달라진다. 그래서 근육을 잘 쓰는 사람이라면 '이 근육에도 힘이 들어가는구나.' 하는 걸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근육도 없고, 체력도 없는 비루한 몸뚱이라, 원장님이 '자 거기에 힘을 주세요!' 하면 내가 지금 쓰는 힘이 맞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딱 토박스에 바른 자세로 올라서려면 발등-뒷무릎-안쪽 허벅지-엉덩이-복근-등-가슴- 그리고 곧게 편 뒷목까지. 온몸 구석구석 근육에 있는 힘을 다 끌어모아야 했다. 바를 잡지 않은 상태에서 힘이 풀리게 되면 넘어지거나 다칠 수 있기 때문에 이 기본자세가 정말 중요했다. 서서 플랭크를 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처음이라 자세가 완벽하지 않았지만 바른 자세를 위해 버티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이렇게 서있기도 힘든데 발레리나들은 어떻게 뛰고 돌고 하는 걸까. 짧게 기본 바 동작을 배우고 수업을 마쳤다.
마무리 인사를 하고 나니 발가락에 욱신욱신 통증이 몰려왔다. 온몸에 힘을 주느라 토박스 안에서 절규를 하던 발가락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 토슈즈를 신고 동작을 하려면 몸의 다른 근육들이 그만큼 버텨내야 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발이 아프다는 걸 잊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통을 또 다른 고통으로 이겨내는 내는 것. 토슈즈를 벗는 순간 해방감과 함께 내 발가락들이 나에게 "야 양심이 있는 거냐? 없는 거냐? 그 몸뚱이를 나보고 버티라는 거야??" 하고 항의하는 것 같았다. 이걸 내가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만 가득한 채 수업을 마쳤다.
그 이후, 쭉 20분씩 토슈즈로 수업을 마무리했다. 하다 보면 익숙해지고 나아지겠지라는 희망이 있었지만 그냥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센터 수업을 마친 원장님이 '토 할 준비 하세요~' 하면 토슈즈가 아니라 그냥 구토를 할 준비 하라는 소리로 들릴 정도였다. 그래도 나를 포함한 수강생 모두가 지친 몸을 이끌고 토 리본을 묶으며 마음을 다잡고 바 앞에 섰다. 부들부들 떨며 버티고, 멱살 잡혀 끌려가듯 동작을 배우고 외웠다. 원장님은 해내는 수강생들을 보고 뿌듯하신지 수업마다 새로운 퀘스트를 주셨다. 바를 잡고 서기도 힘들었던 나는 바들거리지만 바 없이도 기본 동작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뚝딱이와 바들이를 동시에 갖춘 내 모습이 애잔했다. 여전히 발가락들을 절규를 하였고, 슈즈를 벗고 난 뒤 밀려오는 통증 덕에 여전히 토슈즈를 미워할 수밖에 없었다. 아오 씨 이거 도대체 누가 만든 거야. 이 생각으로 토슈즈를 만든 사람을 인터넷에서 찾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