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발레 하는 쿠크다씨

꽁꽁 싸매라 레오타드 보일라

by 쿠크다

발레에 발을 담가보고 싶다면, 개인적으로 날씨가 쌀쌀해지는 가을이나 겨울을 추천한다. 보통 내가 발레를 해야겠다!!라고 마음을 먹고 바로 접는 이유는 대부분 비슷하다. 왠지 발레를 배우면 이렇게 입어야 할 것 같기 때문이다.

사진으로 보기에는 매우 아름답지만 저 사람들은 육성된 인재들이니까 아름다운 거지, 막상 내가 입으면 전혀 그렇지 않다. 예전에 개그콘서트에서 '발레리노'가 왜 개그의 소재로 쓰였는지 생각할 필요도 없다. 거울에 비친 모습만 봐도 바로 납득이 가능하다.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발레를 배우기 시작하면 레오타드 입은 자기 자신이 꼴 보기 싫어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 (많은 친구들이 그랬다.) 나 또한 처음에 그랬다. 맨날 집에서 아기 토 냄새 가득 밴 면 티랑 수면바지로 살다가 가랑이 훤히 보이는 옷을 입은 나를 마주하면 "와...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아이를 낳고 키워본 인간은 알겠지만, 그 당시 인간의 형태는 '나올 데는 나오고 들어갈 데는 들어간다.'는 인간의 몸을 역행한다. 나올 곳은 들어가고 들어갈 곳은 나온다. 아기 낳기 전에 딱히 괜찮은 몸도 아니었지만 상대적 박탈감이 세게 온다. 인류의 퇴행이란 이런 걸까 싶고 이러다 유인원 되는 거 아닌가 싶다. 어깨와 목은 굽을 대로 굽고 엉덩이 근육도 다 죽어서 엉덩이는 판판한데 흐물거리고 골반은 또 이상하게 넓어져서 살이 빠져도 바지가 기이하게 안 맞는다. 지금 내가 표현한 모습을 거울로 적나라하게 확인하면 저절로 발레 하기 싫어진다.


처음 발레를 배울 때 내 몸뚱이와 훤이 드러나는 가랑이를 마주하기 싫어서 가기 전 나름 궁리를 했었다. "아하! 모든 패션의 법칙!! 검은색은 좀 더 날씬해 보이고 모든 걸 감추겠지??" 하고 검은색으로 무장한 채 학원으로 향한다. 그럼 바로 명탐정 코난의 범인이 된다.



보통 사람들은 발레리나의 사진이나 공연하는 모습만 봤지, 발레단의 연습실을 볼 기회가 없다. 연습실의 발레리나들은 공연할 때처럼 입고 있지 않는다. 연습실 자체가 넓고 따뜻한 계절에도 싸늘하기도 하지만, 당연하게 다들 겹겹이 껴입고 팔다리를 칭칭 감싸고 발레를 한다. Warm up. 몸을 스스로 데우기 위해서다. 내 근육들을 스트링 치즈라고 생각하면 쉽다.


냉장고에 있는 스트링 치즈를 바로 꺼내서 늘리려고 잡아당기면 뚝 끊어진다. 스트링 치즈의 냉기가 사라지게 하려면 손으로 비비거나 레인지에 살짝 돌린다. 따뜻해진 치즈를 늘리려고 잡아당기면 끊어지지 않고 주욱 늘어난다. 몸뚱이를 레인지에 돌릴 수 없으니까 마찬가지로 근육을 끊어지지 않고 쭉 늘려서 잘 쓰기 위해 겹겹이 껴입는 것이다. 내면의 열을 끌어올려 잘 데워지면 부상의 위험도 줄어든다. 무용수들에게 부상은 정말 치명적이기 때문에 웜업은 더더욱 중요하다.


웜업의 중요성을 여러 군데 다치면서 안전한 발레를 하기 위한 최적의 몸을 만들기 위한 방법을 찾다가 알게 되었다. 나는 상체보다 하체를 많이 다치는 편이다. 파열되었던 햄스트링에는 허벅지까지 오는 긴 토시를, 욱신거리고 반대편 약한 무릎에는 관절 보호대를 한다. 다쳤던 발목에는 수면양말을 신거나 발목 토시를 덧대기도 한다. 다칠 때마다 한 겹씩 더해졌다. 추워지니 어김없이 추가할 부위가 생겼다. 기온이 점점 떨어져 추운 겨울이 오면 상의 또한 겹겹이 입는다.


레오타드 위에 티셔츠, 얇은 집업 그 위에 플리스나 경량 패딩까지.. 전체적으로 뚠뚠 한 누더기 꼴이 되어 수업을 시작한다. 다른 사람들도 각자 자신의 약한 부위를 보호하기 위해 꽁꽁 싸매고, 어떤 사람들은 집에서 잘 입지 않는 니트, 조끼, 트레이닝 바지 등을 겨울에 웜업 할 때 입고 나타난다. 흡사 각설이 모임이 된 것 같아서 재밌기도 했다.


발레용품점 가을 겨울 시즌에 각종 웜업 용품이 쏟아져 나온다. 다리를 감싸는 워머는 길이 별, 색깔별로 다양하게 나온다. 몸을 통째로 따뜻하게 하고 싶다면 웜업 수트를 입으면 된다. 전신 수트의 모양도 워낙 가지각색이어서 자신이 몸에 열을 내고 싶은 부분의 길이로 고를 수 있고, 통째로 긴 거 사서 수업하다 더우면 벗으면 된다. 검색만 해도 웜업수트 종류가 정말 많다.

똑같은 가위여도 '의료용 가위'가 되면 비싸지듯이, 똑같은 티셔츠여도 '발레 티셔츠'가 되면 가격이 올라간다. 그래서 난 굳이 발레용품점에서 웜업 용품을 따로 사지 않았다. 앞서 말했듯 입고 나가기 애매한 니트나 반팔들을 잘라서 쓰거나, 내복(히트텍)도 몸에 딱 붙고 따뜻해서 레오타드 위에 종종 입는다.


유일하게 산 발레용 웜업 용품은 웜업 부츠다. 따지고 보면 실내용 패딩 슈즈 같은 느낌인데, 가격이 쎄다. 수족냉증이 심해서 그런지 아무리 껴입어도 발이 차가워서 구매했었다. 발목까지 올라오는 부츠에 고정 버클이나 스트랩이 있어 벗겨지지 않게 고정도 된다. 정말 땀이 날 정도로 발이 따뜻해지고 땀이 식으며 발이 차가워지지도 않는다. 이래서 전문용품을 사는 거구나 했다. 그러나 발레 할 때 정작 오래 신지 못했다. 웜업 부츠가 따뜻하고 좋긴만 내 발이 제대로 움직이는지 확인이 안 되어서 결국 다시 일반 슈즈로 돌아갔다. 대신 무용지물이 될 뻔한 웜업 부츠는 집에서 뽕 뽑으며 신고 있다. 집안 공기가 서늘할 때 신으면 딱이고, 발이 따뜻해지니 몸에 열이 올라서 정말 잘 신고 있다.


지금까지 한 이야기가 발레 입문하는 거랑 무슨 상관이냐 하면, 겨울에 발레를 시작하여 웜업을 빙자해 나의 몸을 꽁꽁 감싸고 발레를 배우면 된다는 말이다. 간혹 초보일수록 몸 쓰는 것을 정확하게 배워야 하니까 자신의 몸을 보고 교정하라고 몸선이 드러나는 레오타드를 권장하는 학원들도 있다. 하지만 추위 앞에 장사 없지 않나. 자신의 팔다리에 약한 곳이 있다면 발레를 시작하기 전에 알아두고 워머나 잘 안 쓰는 양말 끝에 잘라서 워머처럼 보호하고 따숩게 입으면 된다.


예쁜 거 좋아하면 구매해도 좋지만, 금방 그만둘지도 모르니 이렇게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웜업은 나름 고수의 스킬이기 때문에 외관상 입문자 티도 덜하다. 나만 초보자인 거 같아 부끄러워!!!를 내적으로 외치며 적응하기 딱이다. 부상도 방지하고 몸도 따뜻하고 발레도 배우고 일석삼조다.


그렇게 배워나가면서 별로다 싶으면 그만두면 된다. 재미를 느끼고 스스로 몸을 좀 또렷이 보고 싶으면 그때 벗으면 된다. 벗기 싫어도 몸을 쓰다 보면 몸에 열이 올라 벗게 되다가 나중엔 '아이고 못 참겠다.' 하고 레오타드 입은 나와 마주한다. 내가 그 정도로 덥고 힘들다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그 뜻은 다른 사람들도 나를 쳐다볼 겨를도 없이 힘들다는 이야기다.


꽁꽁 싸매고 열심히 발레를 하다 보면 따뜻한 봄이 찾아온다. 겨울 내내 열심히 한 만큼 겹겹이 입은 옷 안에선 바른 자세와 탄탄한 몸이 자라고 있을 것이다. 그럼 자연스럽게 마주하기 힘들던 적나라한 나의 몸과도 친해질 수 있다. 동화 개미와 베짱이에서 농번기 열심히 일한 개미가 겨울에 그동안 모아둔 일용할 양식으로 따듯하게 지낸다. 반대로 발레는 따뜻한 겨울에 꽁꽁 싸매고 열심히 발레를 하면 포근한 봄 건강하고 곧은 몸과 당당히 내 몸과 마주할 수 있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다. 글을 쓰다 보니 웜업 하는 발레리나가 마치 땅속에서 추위를 견디는 씨앗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글을 읽고 많은 사람들이 발레라는 씨앗을 심어 꽃을 피워보길 바라본다.


우리 집 초딩이의 방학이 시작되었습니다... 여름방학 시작은 엄마의 개학인지라 혼자만의 시간이 확보되지 못해 그림을 그릴 수가 없다는 점.. 읽어주시는 분들께 그냥 말해보고 싶었습니다. 감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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