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발레 하는 쿠크다씨

발바닥에서 코어 찾기.

by 쿠크다


발레를 할 때 제일 답답하고 환장하는 점은 머리와 몸이 따로 논다는 것이다. 원장님은 우리를 이해시키려고 의자, 고무줄, 대걸레, 옷걸이 온갖 물건을 총 동원하여 설명해 주신다. 그 설명을 듣는 순간엔 모두 초롱초롱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듣고 나면 "아 저런 거였어??" 하며 정말 완벽하게 머리에서 시뮬레이션이 돌아간다. 그런데 막상 음악에 맞춰 동작을 시작하면 내 눈동자도 흔들리고 원장님의 '어...? 이게 아닌데...?' 하는 표정이 읽힌다. 바로 이런 모습처럼.


티칭.jpg 출처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20302500140

발레 학원의 거울을 또 왜 이렇게 크고 자빠졌는지... 거울 속 내가 점점 더 거대하게 나에게 다가오는 느낌이다. 예전엔 거대한 나에게 잠식당하여 '왜 이렇게 못하지.' '이거 내가 할 수는 있는 건가.' 하는 생각에 거울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매번 자괴감에 빠져서 그런가, 더 이상 빠질 자괴감이 없어서 그런가. 그런 순간이 다가오면 고민, 생각, 사고, 여하튼 뇌가 하는 모든 행동을 중지하고 들리면 들리는 대로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속 편하다. 그렇게 무작정 해본 것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발 포지션과 호흡이었다.


이전 글에서 언급한 적도 있지만, 이건 내가 원장님께 처음 배울 때부터 의문이었다. 보통 성인들이 발레를 배울 때 굳이 발 포지션을 억지로 하지 말라고 배운다. 하지만 원장님은 1번-5번까지 정확한 발포지션이 준비되지 않으면 발밑에서 억지로 발 모양을 잡아주셨다. 이게 맞다, 저게 맞다 단언할 수 없다. 가르치는 사람마다 스타일과 의도가 다르고, 배우는 사람마다 습득하는 방식도 다 다르기 때문이다.


발포지션을 정확히 잡고 서려면 발바닥부터 허벅지 안쪽까지 타고 올라가는 근육에 힘이 들어간다. 이렇게 하면 골반 턴아웃을 하는 엉덩이 힘과 사용해야 할 정확한 다리 근육에 집중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하지만 하체에 근력이 약한 상태에서 이 원리를 인지하지 못한 채, 마냥 발 포지션에만 집중한다? 써야 할 근육은 못 쓰고 발목과 무릎 관절이 버티게 된다. 그래서 정확한 발 포지션을 잡기 전 먼저 찾아야 할 것이 있었다. 바로 발 아치의 호흡이었다.


아치의 호흡을 처음으로 인지하게 된 건 매트 운동할 때 하는 레그레이즈 할 때였다. 레그레이즈는 누운 상태에서 다리를 올렸다 내렸다 하는 복근 운동 동작이다. 복근에 자극을 주는 것이 목적이라 보통은 다리에 힘을 빼고 움직였는데, 원장님은 발끝까지 힘을 쭉 뻗어보라고 하시고 발을 매만져주셨다. 발의 호흡을 느끼려면 복근부터 발 끝까지 힘을 쭉 뻗어내서 아치에 호흡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고 하셨다. 처음엔 무슨 말인지 몰라 마냥 다리를 쭉 뻗었는데, 매번 레그레이즈를 반복하다 보니 발 아치 사이에 조금씩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쉽게 표현해 보자면 폭신한 작은 공기주머니를 발 아치에 넣고 모양을 망가뜨리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하면 된다. (원장님은 달걀이라고 상상하라고 가르치셨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백퍼 깨질 것 같다.) 그 생각으로 바닥에 발을 디디면 발가락 전체에 힘이 들어가면서 발바닥, 발목을 지나 마지막으로 허벅지 안쪽까지 힘이 타고 올라오는 게 조금씩 느껴졌다.


원장님은 이걸 왜 아치의 힘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호흡이라고 표현했는지도 궁금했다. 바로 바를 잡고 순서를 시작하면서 깨달았다. 우리 몸의 힘은 '힘줘야지!!' 하며 의식을 해야 나온다. 하지만 호흡은 무의식적이다. 서있는 동작에서만 아치의 힘을 살리는 게 아니라, 모든 동작에서 숨 쉬듯 호흡을 유지해야 보다 부드러운 동작의 표현이 가능해진다. 마치 발바닥에 아가미가 달린 것처럼 말이다.

근육 쓰는 법을 잘 알거나, 발레를 이미 해본 사람들은 바른 발 포지션을 위해 자세를 바로 잡고 시작하면 보다 정확한 근육을 쓸 수 있고, 발레에 입문하는 사람들은 정확한 발 포지션보다는 근육 쓰는 법을 먼저 배우고 그다음에 발 포지션을 정확하게 하는데 집중하면 될 것 같다.


내가 발레라는 셔츠를 입는다고 가정하면 아치의 호흡은 셔츠의 첫 단추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마치 마지막 단추부터 채워 올라가며 수 없는 시행착오 끝에 거꾸로 첫 단추를 꿰게 되었달까... "발의 호흡을 제일 먼저 찾고 시작하는 게 이상적이잖아요!!!" 하며 아쉬워하는 나에게 원장님은 처음 배우는 사람은 백날 설명해 줘도 모를 거라고 하셨다. 처음 수영을 배우기 시작하면 음파 음파 숨쉬기 연습부터 하는 것처럼, 발레를 처음 배울 때 포인-플랙스를 가장 먼저 배운다. 그 이유가 단순히 발등의 힘을 키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발의 호흡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가장 기초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처음 발레를 배울 때 이론부터 배우며 발 호흡을 찾으라는 설명을 들었다면 아마 '제겐 너무 낯선 세상이네요. 이만 거리를 둘게요.'하고 멀어졌을지도 모르겠다. 포인 플렉스부터 냅다 배운 게 얼마나 다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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