렛츠'고' 포인 플렉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발레의 처음은 포인 플렉스다. 포인은 발목, 발등, 그리고 발가락을 몸 바깥쪽으로 곧게 뻗어내는 것이다. 플렉스는 반대로 발뒤꿈치를 몸의 바깥쪽으로 뻗는 것이다. 이유도 모른 채 음악에 맞춰 따라 했다.
레벨이 올라갈수록 바 순서 나갈 때 한 발로 업을 선 채 다른 발로 동작을 하는 순간이 많다. 한 발로 버티고 버티다 힘이 빠져서 종종 “따흑” “악”같은 괴상한 비명을 질렀다. 원장님은 발끝으로만 서려는 것이 문제라고 하셨다. 앞꿈치를 지탱하는 발등을 시작으로 무릎의 힘과 골반의 중립이 세트로 몸을 지지해 끌어올려야 안정감 있게 서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원장님의 말씀이었다. 살아가면서 손등에 힘을 줘 본 적도 없는데 살면서 발등에 힘을 줘본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언제부터인지 원장님은 내가 포인 플랙스를 할 때마다 스멀스멀 다가와 발등을 만져주셨다. 처음에는 사랑으로 주물러 주시는 건가 했는데, 어느 순간 발등을 있는 힘을 다해 꺾으셨다. 정말 이러다 발등뼈가 부러지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아파 막 비명을 질렀다. 그렇게 꺾일 정도로 발등에 힘을 줘야 한다고 하셨다. 평소에 쓰지 않았던 근육들이 움직인 건지, 쥐가 날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고’를 만들어야 업을 설 때 버틸 수 있다고 하셨다.
발레리나들의 발등을 보면 일반사람들은 기이하다 생각될 정도로 튀어나와 있다. 이걸 ‘고’라고 부른다. 발등이 많이 튀어나올수록 고가 높다고 표현하고 더 아름답다고도 여긴다. 웨이트 운동을 할 때 중량을 더하듯 발등의 힘을 키우기 위해 스트레치 밴드(세라 밴드)를 발 끝에 감고 포인, 플랙스를 한다. 보조도구로 발을 꺾어서 고를 만들어주는 Footstrecher (포인기라고도 불린다.)를 쓰기도 한다. 고가 높은 발처럼 보이게 하는 발등에 붙이는 뽕(?) 같은 보정용품도 봤다.
확실히 수업 전에 열심히 포인 플렉스를 하고 업을 서면 요상한 비명을 지르는 일이 줄어들었다. 토슈즈를 신거나 업을 설 때, 발등에 힘이 없으면 발목이 꺾여 다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고’는 단순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안전장치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실제로 원장님 발등도 단단히 근육이 잡힌 것처럼 튀어나와 있었다. 만져보면서도 정말 신기했던 게 기억 속에 오래 남아있다.
얼마 전 인터넷으로 주문한 딸아이 운동화가 도착해 아이에게 신겨봤다. 손가락이 넉넉히 들어가야 하는데 약간 미묘하게 뻑뻑하게 들어갔다. 신을만하다는 아이의 말에 과감히 가격표를 뗐다. 신고 나가보니 발가락이 좀 아프다는 아이의 말에 “으이그!!”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딸아이보다 체구가 작은 친구에게 저렴히 넘기기로 하고 놀이터에서 신겨보기로 했다. 엄마가 “근데 우리 애 발이 좀 뚱뚱해…” 하며 아이가 운동화를 신어보려 발을 꺼냈다. “뚱뚱하다뇨! 고가 이렇게 예쁜데!” 타고난 ‘고’가 이런 거구나 싶어서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다. 포인 플렉스 몇백 번을 해도 안 나오는 발등을 가진 사람이라 그런지 참으로 탐나는 발이었다.
슬프게도 운동화는 맞지 않았다… 졸지에 신데렐라의 운동화가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