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발레 하는 쿠크다씨

발란세 [ balancé ] 그리고 꿍짝짝

by 쿠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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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하다 발을 다치고 난 뒤 오랜만에 발레학원에 갔다. 탈의실에서 나는 땀 냄새가 참 반가웠다. 연습실 한켠에서 스트레칭하는 전공 학생들도 참 반가웠다. 앞 클래스 수업이 끝나는 소리가 들려서 슈즈와 매트를 챙겨서 연습실로 갔다. 같이 수업을 듣는 사람들과 늘 데면데면했는데, 나에게 다친 데는 좀 어떠냐고 물어준다. 좀 더 가까워진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매트에서 몸을 풀고 있는데 선생님도 안부를 물어주셨다. 선생님은 내가 다치고 회복에 전념을 다하긴커녕 등산을 다닌 걸 알고 계셔서 매우 탐탁지 않은 눈치였다. "운동하는 사람은 등산 다니면 안 됩니다. 큰일 나요." 하셨다. 아.. 내가 운동하는 사람이었구나.. 늘 엄마, 여보, 며느리야, 저기요 등 이렇게만 불리다가 운동하는 사람이라고 칭해지니까 괜히 마음이 뿌듯하니 기분이 좋았다.


여름이라 그런지 수강생들이 더 많아졌다. 바 시간에 자리가 없어서 그런가 전공 학생 한 명이 내게 와서 내 뒤에 서도 되겠냐고 물어봤다. 아무렴 뭐 어떤가. 내가 그 학생을 완전히 가릴까 봐 바를 약간 앞으로 잡아 그 친구가 조금이라도 거울에 비치게 움직였다. 바 앞에 선 사람이 너무 뒷사람을 딱!! 가리게 되면 뒷사람은 자기 자세를 보지 못해 수업에 집중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본인이 키가 작다면 바 앞으로, 키가 크다면 바 뒤에 서는 게 정해진 건 아니지만.. 느낌적인 느낌 같은 에티켓 같다.


바 수업을 시작하는데 쉬는 동안 바뀐 순서가 너무 어려웠다. 설명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아서 "에?? 뭐라고요?" 하고 싶었는데 나 빼고 다 알아듣는 분위기인지라 끄덕끄덕 나도 알아들은 척했다. 음악이 시작됨과 동시에 머릿속이 하얘졌다. 선생님도 "에이, 다시 다시." 하고 음악을 처음으로 돌리셨다. '거봐 나만 못 알아들은 거 아니었어.' 하고 안도했다. 다시 설명해 주시고 음악 박자도 느리게 늘려주셨다. 다음 동작도 또 그다음 동작도 어려웠다. 바에 혼자 섰을 때는 몰랐던 문제를 알아챘다. 혼자만 못하면 되는데 뒤에 학생이 나에게 말리고 있는 게 훤이 보였다. PT 체조 마지막 구령 계속 외치는 사람이 된 기분이라 미안했다. '다양한 상황에서 집중하는 훈련이라 생각해.. 학생.. 미안해.. '를 말하고 싶었지만 주책인 것 같아 눈빛으로만 보냈다.


왈츠 리듬으로 흔드는 스텝이다. 무용수는 오른발로 서서 왼발의 앞바닥을 뒤쪽 지면에 가볍게 놓는다. 왼발로 옆으로 가며 스텝을 밟고, 이때 왼발 뒤로 오른발의 앞바닥을 지면에 놓는다. 그리고 잠시 동안 무게를 오른발에 둔다. 이로 인한 포지션 변화는 없다. 그다음 무게를 확실하게 왼쪽 다리로 옮기는데, 이 포지션으로부터 다른 쪽으로 스텝을 반복할 수 있다. 또한, 이 스텝은 오른발을 왼발 뒤로 두는 대신 왼발 앞으로 교차하면서 할 수도 있고, 좌우 양쪽에서 다른 쪽으로 하는 대신 앞에서 뒤로 실행할 수도 있다. - 출처 네이버 발레용어사전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발랑세.jpg 발랑쎄 Balancé

https://youtu.be/4KvZ4qqU1NA?si=MKzk0hWP7ByUVasa


쿵짝짝하면서 좌우로 왔다 갔다 하는 동작이다. 나도 좌우로 왔다리 갔다리 하면서 배운 동작인데 이거 이거... 95%의 확률로 각설이가 된다. 선생님이 반응은 두 가지로 나뉜다. 오은영 박사님처럼 '그럴 수 있어.' 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가르쳐 주시거나, 이게 왜 저렇게 되는 거지? 하는 혼란스러워한다. 하는 당사자들도 좌우로 쿵짝짝 움직이면서 거울로 '이거 맞아?' 하는 눈치게임이 시작된다. 나의 발란세 진화 속도는 아주 미미하다. 마치 초보 각설이에서 왕초 각설이로 성장하는 모양새와 비슷하달까.


바 옮기고 센터 시간이 되었다. 선생님이 "저번에 배웠던 발란세에 순서를 좀 더 섞을 거예요." 하셨다. 쉬는 사이에 발란세를 배웠구나! 발란세 알지 알지~하면서 내가 상상했던 발란세를 떠올렸다. 그리고 선생님이 시범을 보이셨다. 난생처음 배우는 스텝이었다. 다양한 방식으로 스텝이 응용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너무나 훅 들어왔다. 배울 스텝은 발란세와 동시에 몸을 돌리며 앞으로 전진하는 심화과정이었다. 스텝을 계속 쿵짝짝 쿵짝짝 짜잔 짜잔으로 설명해 주셔서 더 혼란스러웠다. 사실 쿵짝짝 말고는 대체할 언어가 없는 스텝이긴 했다. 내가 맨 앞에 서면 음악 다시 틀 것이란 확신이 세게 몰려와서 최대한 벽에 보호색처럼 붙어있었다. 쿵짝짝이 시작되었고 첫 주자들이 스텝을 능숙히 해내서 얼른 눈으로 스텝을 외우려고 애썼다. 눈으로만 외우니 저절로 입에서 쿵짝짝 쿵짝짝 짜잔 짜잔이 나오더라. 이제 내 순서가 돌아와 포즈를 잡고 서고 선생님의 출발 박수와 함께 쿵짝짝을 시작했다. 첫발 내딛자마자 망했다는 걸 온 세포가 느낄 수 있었다. 발은 안 움직이고 입만 쿵짝짝거리고 있었다. 다른 사람 할 때 몸으로 연습했어야 하는데 눈과 입으로 연습했더니 주둥이로 발레를 하고 있었다. 누가 나에게 마이크를 쥐어준 것처럼 쿵짝짝을 외치고 있었다.


쿵짝짝.gif 발란세를 하는 나의 모습


선생님은 그래도 내가 오랜만에 했다는 사실을 떠올리셨는지 다시 동작을 잘 설명해 주셨다. 아 그래도 모르겠다고....... 내가 해야 할 몫은 쿵짝짝 쿵짝짝 짜잔 짜잔인데 짜잔 근처도 못 갔다. 빨리 다른 동작으로 넘어갔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그런데 망할 이번 수업 모든 동작에 발란세가 들어있는 게 아닌가.. "꿍짝짝 그만하고 싶다." 조용히 속삭이다가 다른 분과 눈이 마주쳤다. 그 분이 도와주시겠다고 따로 알려주셨다. 분명 잘하는 분이었는데 나한테 설명하면서 헷갈리기 시작하셨다. "어어 이상하네.." 하시길래 "저 신경 쓰지 마셔요." 하고 보내드렸다. 나에게 말리는 건 학생 한 명으로 충분했다.


머릿속이 쿵 짝짝으로 가득할 때쯤 점프 시간이 돌아왔다. 발이 아프건 말건 머리를 비우려면 뛰어야 했다. 선생님의 "쿠크다 씨 뛰면 안 되잖아~"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날아가라 꿍짝짝아~ 하면서 최대한 높고 멀리 뛰었다. 속이 시원했다. 발레를 하면 날개 없이 아주 잠시동안 파닥 날 수 있다. 잠깐의 공중에 뜬 기분 너무 오랜만이라 짜릿하고 시원했다. 이 맛에 발레 하는 거 아닙니까. 좀 전의 엉망진창은 다 날아가 버리고 후련함만 남았다. 왠지 이번 달 내내 꿍짝짝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꿍짝짝 산을 너머 짜잔까지 갈 길이 멀다. 배우고 또 배우고 하다 보면 오늘의 나보다는 쪼금 나아지더라. 힘내보자 꿍짝짝아!!

몸에 붙어서 이제 좀 알겠다 싶으면 선생님은 또 순서를 바꾸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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